짧고 굵은 흑산도 마을 자랑
태도
지형이 타래처럼 둥굴게 틀어진 섬으로 태사도 혹은 태도라고 부르고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세 마을이 있다. 해초류가 많은 중에 특히 바윗김은 태도김을 알아준다.
또한 섬 둘레에 물고기들이 많아서 늘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오고 있어서 곧 이름 있는 바다 낚시터로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홍도
이미 유명관광지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섬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다 박혀 있는 홍도는 흑산면이 자랑하는 섬이다. 더구나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우리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가 되는 섬이기도 하다.
다물도
그 어느 섬보다도 해산물도 많고 물고기도 많이 잡혀 다물도라고 했다. 홍어잡이로 옛날부터 이름이 높았는데 요즈음은 해상가두리 양식업으로 주민소득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곤촌
우리 흑산면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큰 마을과 같이 부자마을이 될 수 있다고 곤촌이라 했다. 가두리 양식업이 늘어나서 주민소득도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마을이다.
도목리
마을 산세가 복숭아를 닮아서 도목이라 했다. 흑산면 지역에서 최초로 가두리 양식업을 시작한 마을로 지금은 모든 주민들이 대규모 양식업 덕분에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가장 부촌으로 알려짐은 물론 인심 좋고 단결심 높은 마을로 다른 마을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마리
예부터 마을 뒤에 있는 천마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곳이라고 해서 마리라고 불려졌다. 이십여 가구 주민들이 가두리 양식업을 하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만재
옛날에는 진도군 조도면이었으나 1983년 흑산면으로 들어 온 섬이다. 바다 한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재도라고 했다. 오십여 세대가 사는 마을이지만 섬 둘레에 물고기들이 많아서 낚시꾼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유명낚시터로 발돋음하고 있고 주민소득 또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디미
뛰어난 둘레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마을로 비리란 딴 이름도 있다. 사십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며 마을 사람들은 거의 해상 가두리 양식업 일을 하고 있다. 아울러 민박을 겨냥해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주거환경개선사업에 힘쓰고 있다.
수촌
마을 앞뒤로 금방 바다에 나갈 수 있는 너른 갯가를 품은 마을로 물도 맑고 많다 해서 수촌이라 했다. 딴 이름으로 수리라고 불린다. 섬이 둘러싼 모양으로 옴팡지게 들어온 마을 앞바다가 마치 바다목장 같아서 해상 가두리 양식업은 하늘이 돕는 듯하다. 이런 가두리양식업의 영향으로 마을사람 소득이 높은 편이고 도회지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와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에 힘쓰고 있다. 장래가 밝은 마을이다.
가거도
소흑산도라고 딴 이름을 쓰지만 이것은 대 소 구분을 해서 섬을 업신여긴 제국주의 일본사람들의 탓이다. 대흑산도도 실은 그냥 흑산도 하면 될 것이다. 가거도는 진기하고 아름다운 바위와 돌이 많으며 특히 후박나무숲이 섬을 통째로 덮고 있다. 또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이 자리 잡은 곳이다. 예부터 중국 땅 상해까지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한다.
사촌
마을 앞 갯가에 모래가 많아서 사리라고 불렀다. 둘레 아름답고 뛰어난 산세를 자랑한다. 정약전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유배되어 이 마을에다 복성재(復性齋)를 짓고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저술활동을 하다가 16년 만에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약전이 유배되어 있을 때 지은〈자산어보 玆山魚譜>는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제로 조사·채집·분류하여 각 종류별로 명칭·분포·형태·습성과 그 이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한 것인데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으로서 실제조사에 의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실학의 표증이 되고 있다.
심촌
딴 이름으로는 지피미, 심리라고 한다. 바다가 마을 깊숙이 들어와 굽어져 있고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 생긴 마을이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흑산도 일주도로 중간에 자리 잡아 관광 손님들이 민박하기 좋은 곳으로 자주 찾는 마을이다.
영산리
영산화가 많이 핀다 해서 영산도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 거의 낭장망과 해상 가두리 양식업 일을 하고 있다.
예리
예부터 입에 익은 마을 이름은 예미이다. 예촌이라고도 불렀다. 흑산도 마을 중에 가장 크고 도시 같은 마을이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큰 뭍에 나가기 전에는 여기를 도시로 여겼을 만큼 이미 도시다운 풍모를 다 갖추고 있었다. 흑산도 파시가 유명할 때 중심이 된 마을이 바로 이 곳이다. 파시란 해상에서 열리는 어시장이다. 파시에서는 고기잡이배와 상선 사이에 또는 고기 파는 사람과 어부들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진다. 옛날 파시가 형성되는 곳으로 유명했던 곳들은 모두 조기의 산란장이었기 때문인데 흑산도는 위도·칠산도·개야도·녹도·고군산군도·어청도·연평도와 같이 이름이 자자했다. 파시가 열리게 되면 근방 어촌은 바깥으로부터 어부와 상인들이 모여들어 호황을 누렸다. 그 명성답게 지금도 지역 경제의 기둥이 된 마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정리
아주 먼 옛날이야기로 마을 한 가운데 샘이 있어서 불행한 일과 질병이 많이 생긴다고 해서 샘을 밖으로 옮겼을 때 생긴 이름이 외정리라고 한다. 거기다 마을 앞에 크게 자란 오동나무를 보고 오리라고도 불렀는데 두 이름을 합쳐 오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읍동
흑산면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섬치고는 그 만큼 밭농사 지을 땅 떼기라도 눈에 띄는 곳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가두리 양식업과 전복 양식업으로 잘 사는 마을이다.
장도
섬이 길쭉하게 생겨서 장도라고 부른다. 수산자원 풍부하고 전복도 많이 난다. 해녀들이 많아서 해녀마을로 이름이 높다.
죽항리
대밭이 우거지고 목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대목이라고 불려졌다. 옛날에는 예미와 같은 마을이었지만 70년 초에 떨어져 나왔다. 흑산도 일주도로 시작과 끝이 만나고 이어지는 곳이어서 흑산도 관문처럼 여겨지는 마을이다.
청촌, 천촌, 소사리
마을 둘레 나무들이 울창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푸르러서 청촌.
산이 높고 마을이 길게 뻗어 있다 해서 천촌.
마을 앞으로 모래등성이가 있어서 흑산도에서 오로지 이곳만 마을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지 않는 소사리.
진리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흑산도 행정의 중심지요 교육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널찍하고 평평해서 저녁 밥 짓는 집마다 굴뚝 타고 피어오르는 연기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곳인데, 저녁 먹은 다음 마을 사잇길을 걸어걸어 마을 넓이만큼 길게 누운 백사장까지 배꺼짐 산책을 다녀오기 딱 맞는 마을이다. 섬 마을치고 농촌 풍경을 물씬 담은 곳이다.
첫댓글 유부장, 다 가보지도 못한 곳일 텐데 어디서 얻은 정보인가? 아무튼 고향 사랑이 대단하군. 겸하여, 13일은 흑산향우회 신임집행진의 임명장 수여식이 있게 되어 준비 관계로 수고가 많을 줄 아네. 아무튼 고향과 향우들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화이팅!
과거 10대 임원진이 만든 주소록을 보고 다음 메일 주소록에 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거기에 쓰여진 글들이더군요. 그저 소득 수준이나 관에서 쓰는 말버릇으로 쓴 글을 제가 좀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글을 다듬으면서 뭉클 고향을 다 둘러보고 기록을 남기는 여행을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