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삼천(一念三千)도
신(信)의 일자(一字)에서 일어나며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성도(成道)도
신(信)의 일자(一字)에서 일어나느니라.
이 신(信)의 자(字)는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자르는 이검(利劍)이로다,
그 까닭은
신(信)은 무의왈신(無疑曰信)이라 해서
의혹(疑惑)을 단파(斷破)하는 이검(利劍)이고,
해(解)란 지혜(智慧)의 이명(異名)이며
신(信)은 가치(價値)와 같고
해(解)는 보배와 같다,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지혜(智慧)를 사는 것은 신(信)의 일자(一字)이며
지혜(智慧)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신(信)은 지혜(智慧)의 인(因)으로서
명자즉(名字卽)이면,
신(信) 외(外)에 해(解)가 없고
해(解) 외(外)에 신(信)이 없으며
신(信)의 일자(一字)를 가지고
묘각(妙覺)의 종자(種子)로 정(定)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신수영납(信受領納)하는 고(故)로
무상보취(無上寶聚) 불구자득(不求自得)의
대보주(大寶珠)를 얻는 것이며
신(信)은 지혜(智慧)의 종자(種子)이고
불신(不信)은 타옥(墮獄)의 인(因)이니라
어의구전권상(御義口傳卷上)
어서 725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2월 11일 (월) 맑음 –22세-
‘인생은 투쟁의 이명(異名)’이라고 외친 철인(哲人)이 있다.
확실히 인생은 전쟁과 같이 엄하고 혼란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 것도 몰랐던 소년 시절이 그립다. 그러나 일보라도 물러선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인생은 투쟁이다.
그러나 투쟁 중에도 휴식은 필요하다.
그 휴식 속에서 다음의 이상(理想)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 중에서, 반드시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대선(大善)이 있다고 하는 이상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그 이상을 실천해 가는 색심(色心)의 힘을 끝까지 불태우는 것이다.
그를 위해 휴식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인생은 구극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최고의 이상인 광선유포 실현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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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11일 (화) 쾌청 –28세-
10년 만에 부모님 댁에서 묵었다. 형제 친척들 10여명과.
역시 집에는 자주 와야만 했다.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다.
오전에 고인이 되신 아버지 옆에서 수호본존님께 3시간 창제. 최고의 효도였다고 생각한다.
2시 입관 ···. 통곡하시는 어머님. 50년 동안 아버지와 한 여행.
어머님의 마음은, 그 심경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로운, 기나긴 여로(旅路)였을 것이다.
영지, 지위, 재산, 허영,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아내의 진실한 사랑의 눈물이리라.
아아, 평범한 속의 위대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여.
애별리고(愛別離苦). 남묘호렌게쿄.
이 영겁의 이별의 고통이여. 이 문제를 절대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법밖에 없음을, 오로지 생각한다.
선생님 2시 50분 하네다발 비행기로 오사카에 가셨다. 틈을 내어 아내와 함께 공항에 가서 배웅.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고 개척하라.”는 무언중의 지도.
강성한 신심. 강하고 힘찬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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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 11일 (수) 쾌청 –29세-
저녁에 이사회.
내년도 행사와 재무에 관한 건 및 제명자 복귀의 건.
돌아오는 길에 이사장, 이사들과 메구로의 꼬치구이 집에 들어갔다. 재미없었다.
마시고 취해서 필요 이상으로 말하는 모습이 나는 싫다.
집에 오니 10시 조금 지났다. Z씨가 오셔서 늦게까지 있었다.
피곤하다. 독서할 시간이 없어 고민이다.
중공(中共)의 전술을 읽었다.
적진아퇴(敵進我退) - 적이 전진하면 후퇴하고
적주아요(敵駐我擾) - 적이 머무르면 소란을 피우고
적피아타(敵避我打) - 적이 지치면 치고
적퇴아추(敵退我追) - 적이 후퇴하면 쫓는다
3시쯤 취침.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마음을 느낄수있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