菩薩病者 以大悲起. 보살이 병든 것은 大悲 때문!!
時維摩詰言 그 때 유마힐이 말했다.
善來 文殊師利 不來相而來 不見相而見 잘 오셨습니다, 문수사리여. 온다는 상 없이 왔고, 본다는 상 없이 보았습니다.
不來相而來(불래상이래)하고 不見相而見(불견상이견)하도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아주 높은 사람이 오면, 온다는 상을 내고 오지 않습니까? 또 높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보는 데에도 절차가 많이 필요하겠죠.
文殊師利言 그러자 문수사리가 말했다.
如是 居士 若來已 更不來 若去已 更不去 그렇습니다, 거사여. 만약 와 버렸으면 다시 오지 않고, 만약 가 버렸으면 다시 가지 않습니다.
所以者何 來者 無所從來 去者 無所至所 可見者 更不可見 왜냐하면 온다 하지만 온 곳이 없으며, 간다 하지만 가는 곳이 없고, 본다 하지만 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且置是事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문수보살이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居士 是疾寧可忍不 거사여, 그래 이 병은 견딜 만합니까?
療治有損 不至增乎 치료를 받아 병이 좀 나았습니까? 더 심해지지는 않았습니까?
世尊慇懃致問無量 세존께서 매우 걱정하셔서 극진히 문병하도록 저를 보내셨습니다.
居士 是疾何所因起 其生久如 當云何滅 거사여, 이 병은 무슨 까닭에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維摩詰言 유마힐이 말했다.
從癡有愛 則我病生 어리석음 때문에 애욕이 있게 되면 병이 생깁니다.
탐 ‧ 진 ‧ 치의 치(癡)로부터 애(愛), 애욕이 있게 되면, 아병(我病)이 있게끔 되는 것이죠. 그러나 유마거사의 병은 ‘從癡有愛(종치유애)’ 때문에 생긴 병은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병’은 ‘자아라는 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모든 병은 탐 ‧ 진 ‧ 치 때문에 생긴다는 이야기인데, 이 대목은 일반적인 하나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以一切衆生病 是故我病 모든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앓고 있는 것입니다.
若一切衆生病滅 則我病滅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
所以者何 菩薩爲衆生故 入生死 有生死則有病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생사의 길에 들어서고,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죠. 보살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생사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살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중생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죠. 중생을 위해서 태어났고 중생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렇게 살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어머니들은 그렇게 하잖아요. 남자들보다 낫죠. 그러니까 보살이라고 하는 거예요. 누구든 보살이라는 자각을 가진 사람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생사에 들어오고, 일단 생에서 사까지 가는 이 인생 길을 살아가다가 보면 병이 있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若衆生得離病者 則菩薩無復病 만약 중생이 병에서 떠나게 되면 보살도 병이 없게끔 될 것입니다.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게 된다고 했는데, 사실 병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겁니다. 자기의 탐 ‧ 진 ‧ 치 때문에 생기는 병과 보살의 병인데, 보살의 병은 진짜 병이 아니라 방편으로서의 병이죠. 유마거사의 병은 진짜로 아픈 병이 아니라 중생들과 더불어 아파하는, 방편으로서의 병입니다.
譬如 長者唯有一子 其子得病 父母亦病 비유컨대 장자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병에 걸리면 부모도 병을 앓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若子病愈 父母亦愈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의 병도 낫지요.
菩薩如是 於諸衆生 愛之若子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아들 대하는 것처럼 사랑합니다.
衆生病 則菩薩病 衆生病愈 菩薩亦愈 중생이 병에 걸리면 보살도 병에 걸리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습니다.
又言 是疾何所因起 菩薩病者 以大悲起 또 말하기를 이 병이 무슨 원인으로 생겼느냐고 했는데, 보살이 병든 것은 대비(大悲)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어리석음 때문에 애욕이 있으면 병이 생긴다고 했는데,여기서는 병이 생긴 원인이 다르죠. 보살의 병은 대비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유마경 강의: 이기영 전집 제25권》, 이기영 지음, 한국불교연구원, 325~319쪽.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第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