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을 사랑하면 부처님께 칭찬받는 것입니다
혜인스님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송을 읊겠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
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닫는 종교요,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다.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며 내 운명과 팔자도 바뀐다.
아무리 더러운 오물이라도 흙으로 덮어주고 묻어주면
훌륭한 거름으로 탄생하듯이
잘못한 사람을 묻어주고 용서하고 이해하면
훌륭한 복덕이 만들어 지니라.”
이를 듣더라도 실천이 어렵습니다.
미워하는 생각이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실천적 불교를 않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재료가 마음 심(心)으로
시작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더럽고 추하고,
아름답다는 모든 생각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없습니다. 있다면 마음입니다.
제가 한 설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항주(抗州) 낙양사(洛陽寺)에
원택법사(元澤法師)라고 하는
고승(高僧)이 계셨습니다.
마을의 이원거사(李源居士)와 함께
관음보살의 성지 아미산(峨嵋山) 구경을 떠났습니다.
형주 남포 땅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원택법사가 이원거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쪽으로 오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자네가 자꾸 가자고 해서 오긴 왔지만
인연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네.
저 개울가에 빨래하는 여자가 잉태(孕胎)를 해서
벌써 열 달이 넘었는데,
내가 그 태에 들어가야
저 아이가 나올 수 있는 그런 인연을 만났네.
그렇게 되어 나는 오늘 여기서 이 몸을 버리니
자네가 화장을 해서 치워주고 가게.
그리고 화장을 마치고 사흘이 지난 뒤 저 여자 집으로 찾아오게.
자네가 오면 내가 태어난 지 사흘째가 되는 날 나를 안으면
자네를 보고 유난히 방긋 웃을 테니,
원택이의 죽은 영혼이 자네를 알아보고 웃는 줄 알게.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2년이 지나는 그 해 8월 열 사흗날 어디서 만나는고 하니,
천축사(天竺寺) 갈홍정반(葛洪井畔)에서 또 만나세.”
더럽다 추하다 아름답다는 모든 생각은
인간마음이 만들어 낸 작용인 것입니다
이원거사가 원택법사의 유언대로 화장해서
초상을 치르고 사흘이 지난 뒤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의 집엘 찾아갔습니다
어린애 좀 보여 달라고 해서 아기를 안고 바라보니 아기가,
죽을 때 남긴 말처럼 방긋이 웃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는
내가 왔다. 응, 내가 왔어”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 후 12년이 지난 뒤 천축사 갈홍정반으로 찾아가니,
그 때 그 아이가 벌써 12년 동안이나 커서
소를 타고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원택법사가 다시 목동으로 태어나서
소를 타고 소뿔을 두드리며 시조를 읊조립니다.
삼생 돌 위에 옛 넋이여
달을 완상하고 바람에 읊조리고 이 외에 무엇을 말할 것인가
三生石上舊精魂(삼생석상구정혼) 賞月吟風莫要論(상월음풍막요론)
수줍도다 정든이여 먼 데서 왔구료
이 몸이 비록 다르지만 원택이의 성품인 줄 그대는 아는가
慙愧情人相遠方(참괴정인상원방) 此身雖異性常存(차신수이성상존)
이 몸의 앞이나 뒤의 일이 바쁘고 바쁜데 지나간 인연들을
자네에게 말하고자 하니 창자를 끊노나
身前身後事忙忙(신전신후사망망) 欲話因緣恐斷腸(욕화인연공단장)
오나라 월나라 강산은 두루 밟았고
이제 연운 어린 노를 돌려 전당호수로 저어갈까 하네
吳越江山尋已遍(오월강산심이편) 却回烟棹上錢塘(각회연도상전당)
우리가 이 몸으로 인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하지만,
진리 자리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끊어졌고,
전생과 금생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은 있는 가운데 없고 없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원택법사 같은 이도 과거 전생에 이 여자하고
모자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훌륭한 법사가 되었지만,
그 인연을 어쩔 수 없어서 이 몸을 버리고
그 여자의 태중에 들어간 것입니다.
범부(凡夫) 중생 같았으면 지나간 일도 말하고,
현재의 일도 말하고 이런 일 저런 일 감회가 참으로 많았을 텐데,
도인의 경지는 사람의 인정에 초연하였기에
다만 잘을 완상하고 바람에
읊조리는 여기에 모든 할 말과 뜻을 포함시켜
끝냄으로써 자기의 경지만 말하고 간 것입니다.
이원거사는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노래 부르는 소리만 들었을 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후래 사람들도 상월음풍(賞月吟風)이란
말의 뜻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수행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의문되는 점이 있어서
부지런히 수행을 하면 결국에는 이 상월음풍에
무릎을 치고 한 번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복(福)은 마음에서 구해야 합니다.
복도 인연 따라서 오고 가는 것입니다.
중생은 업따라 오고 가는 것입니다.
불보살님은 원력따라 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보살의 원력과 중생의 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불보살의 핵심은 마음을 바로 보고 내 주인공을 찾는 것입니다.
마음에 대해 말씀드렸다면 오늘의 주제처럼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칭찬받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부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선남자여 일체 공양 중에는 법공양이 최고다.
법공양은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며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공양이며
보살이 할 일을 그만 두지 않는 공양이며
보리심을 여이지 않는 공양이며
중생을 편안히 모시는 공양이며
자기 주인공을 찾는 공양이 으뜸이 되는 공양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효(孝)와 순(順)입니다.
부처님이 제일 좋아하는 공양입니다.
여기서 순이란 항순중생(恒順衆生)의 뜻으로
항자는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를 가리키며,
순은 ‘순종하라’의 뜻으로 그 대상이 ‘중생에게’ 입니다.
자식들에게, 남편에게, 부인에게 순종하라입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대접 잘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