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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았습니다.
때마침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네요. 대단히 훌륭한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다소 의외의 결과이긴 합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조지 밀러' 영감님이 감독상을 받지 못한 건 매우 아쉽네요.
아무튼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략하게 적어볼려고 새로운 시도도 했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쓸데없이 글이 또 길어졌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미리 감사 인사드립니다.
언론이 해야하는 일은 '사실전달'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가톨릭 교단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집중취재하는
'보스턴 글로브' 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자 '샤샤'는 제보자에게 이렇게 다짐합니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팀의 또 다른 기자인 '마이크'는
'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입니까?'
라고 묻는 판사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대중에게 사실을 알리고 보도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언론과 기자의 역할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말할 뿐인데, 왜 이리 마음이 묵직해지는지요.
언론은 대중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힘을 가집니다.
그리고 대중은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최선 또는 최후의 무기로써 그 힘에 의지하죠.
그러므로 그 힘은 대중이 아닌 권력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힘은 대중에게 향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TV 뉴스만 봐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경쟁의 낭떠러지로 몰리는 모진 시대를 버텨가는 힘없는 구성원 중 한명으로서,
그들도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타협과 굴복을 해왔을지 상상이 가긴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른 일반의 조직과 직업이 아닌
'언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에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좀 더 더 저항해줘야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럴만한 힘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그들에게 진실을 좇는 '본능'이 여전히 잠재해 있을거라는 순진한 믿음도 계속 가져봅니다.
좋은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영화 <스포라이트>에는 '스포트라이트' 팀을 이끄는 세 명의 리더가 나옵니다.
보스턴 글로브 지에 새롭게 임명된 편집장 '베런', 편집부국장 '벤',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가 그들입니다.
가톨릭 교단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집중취재를 제안한 것은 신임 편집장인 '베런'입니다.
이 제안에 대해 보스턴 글로브 지의 편집부국장 '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자율성을 해칠수도 있는 신임 편집장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한 것입니다.
이 '벤' 부국장은 이 영화에서 비중이 크진 않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원과 꾸준히 소통하고,
조직과 지역사회와 '스포트라이트' 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스포트라이트' 팀을 보호합니다.
아무튼 '벤' 부국장의 이 말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 팀은 결국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하게 됩니다.
'베런' 편집장의 이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언론과 기자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 신임 편집장이 다시 인식시켜 준 것이죠.
그리고 '베런'은 이 사건을 무마하려는 가톨릭 교단의 관계자의 만남에서
언론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스포트라이트' 팀을 보호합니다.
또 다른 리더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 '로비'는 그 자신도 현장 기자로써
사건에 대한 집요함과 저돌적인 면모를 보이며 후배 기자들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그는 이 추악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이 도시의 한 구성원으로써의 책임감과
과거 자신이 행한 과오에 대해 성찰하는 훌륭한 시민이기도 하죠.
이 세 리더들의 모습에서 좋은 리더는
팀원들에게 훌륭한 자극제이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덧붙여 조직문화와 권력의 집중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조직의 과업 달성에 효율적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될수록 권력자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더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동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의 지도자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당의 정치적 실세도 간단히 무릎꿇릴 수 있는 힘을 가졌죠.
지도자의 한 마디면 정부의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 차례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그 나라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권력의 집중이 전혀 효율적이지 않아보입니다.
오히려 '스포트라이트' 팀을 보면서 구성원 각자의 주체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조직에 더 효과적인 것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사건을 집중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 '로비'에게 가톨릭 교단의 관계자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연 썩은 사과 몇 알의 문제였을까?
"6%"
이 사건의 제보자는 가톨릭 교단 사제의 6%가 성추행을 실행에 옮긴다고 말합니다.
6%면 100명 중 6명입니다.
6명이라면 그들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교단의 사제는 1,500명입니다.
1500명의 6%면 90명입니다.
보스턴 지역의 사제 90명이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것이죠.
90명이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추행 가해 전적이 있는 사제는 기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만졌는데, 즐기지는 않았다."
이건 즐긴 것만 죄일 뿐, 만진 것은 죄가 아니며,
그 집단에서는 만지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강간을 당한 피해자라고 항변을 하는 모습에서
이 가톨릭 교단 내에서 아동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성추행이
긴 시간동안 고질적이고 구조적으로 행해져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교단의 관계자와 최고 책임자가 모를리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이건 사과 몇 알이 썩은 문제가 아니라 사과 상자 자체가 썩은 문제인 것입니다.
사과 몇 알 버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설사 겨우(?) 6명, 아니 1명의 사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 집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과 몇 알의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와 모든 집단에 해당되는 말이죠.
우리 사회의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가 과연 일개 개인의 문제일까?
설사 그것이 개인에 의해 발생한 문제라도 다음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기자들의 단순한 영웅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성찰을 담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약으로 이 추악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이 사건이 이렇게 방치된 것에는 그들도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열혈 기자 '마이크'는
사람들이 이 추악한 사건이 생길 줄 알고도 방조했다며 분노합니다.
이에 대해 팀장 '로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라고 뭐가 달라?"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만났던 관련자들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들은 그때 어디 있었어?!"
사실 이 사건은 수 년 전에 이미 제보가 들어왔던 사건이었고,
당시에는 이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담당자는 현재 이 사건의 집중취재를 진두지휘했던 팀장 '로비'였구요.
이 사건을 외면해온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그들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죠.
'로비'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자책합니다.
이를 본 편집장 '베런'은 이렇게 말하며, 그를 위로합니다.
벌써 2주기를 맞는 '세월호' 사고가 생각납니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에 갑자기 켜진 불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밝고 크고 슬픈 불이었죠.
우리 사회 곳곳을 뚜렷이 비추며, 못난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민낯을 보며 우리는 많은 것을 탓했습니다.
물론 탓해야 할 것을 탓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나 역시도 '안전불감증'이라는 어둠 속에 살았었고,
어쩌면 감지되는 위험을 보면서도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 적은 없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사고의 위험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베런'의 저 말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 위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런 과오를 범하면서 살아간다는 그런 말이겠죠.
하지만, 불이 켜졌다면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 우리는 어둠 속에 살았습니다.
'세월호' 사고라는 불이 켜지고,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그 후의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다시는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적인,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큰 사고를 겪으면 구조적인 변화가 있기 마련인데,
여전히 우리는 어둠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큰 불이 켜져야 하는 건지...
구조적으로 기대할 게 없다면 저 스스로라도 변화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배우에 대한 짧은 코멘트
1.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배우 중 하나는 신임 편집장 '베런' 역할의 '리브 슈라이버'입니다.
이전까지 '엑스맨: 울버린의 탄생'과 '솔트'에서의 강인하고 잔혹한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체스 황제를 연기한 '세기의 매치'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스마트하고 지적인 역할도 제법 잘 어울리네요.
듬직한 체구 덕분인지 문무를 두루 겸비한 장수를 보는 듯 합니다.
2. 불도저 같은 열혈 기자 '마이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정말 좋은 배우입니다.
'폭스캐쳐'에서 동물과 같은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몸연기는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이런 좋은 배우가 연기하는 '헐크'의 단독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만 기능하기에는 캐릭터와 배우 모두 아깝습니다.
하루빨리 '헐크'의 단독 시리즈를 내놓기를 촉구합니다.
3. '샤샤 파이퍼'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 그녀는...
사랑입니다... +ㅁ+
첫댓글 잘 봤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룸도 그렇고 재연과 감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영화적 태도를 중시하는 작품인데 현재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종류의 작품이죠. 그리고 매드맥스는 워낙에 오스카 취향과 안드로메다 차이라 작품상은 당연히 못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워낙 평이 좋아서 감독상은 살짜기 기대했건만...
댓글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영화적 태도는 참 부러운 부분이죠. 근데 그것도 시장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대중성이 강한 영화가 아님에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관객도 보게끔 하는 폭넓은 시장을 갖췄으니 말이죠. 자본도 성숙한 것 같구요.
저도 매드맥스의 감독상은 기대했었는데 아쉬워요ㅠ
저도 이영화 보고 언론에 대해서 다시.한번 알게된 작품이었습니다^^ 연기도 좋았고 시간이.흐를수록 진실에 대한 묵직함 ㅠ..
아.그런데.정말 리뷰 잘쓰셨네요 ㅎ
칭찬 감사드립니다. 너무 길어져서 후회 중이었거든요ㅠ
우리나라 관객들은 특히 언론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을겁니다.
@풀코트프레스 정말 좋은영화였어요ㅎㅎ 주변분들에게 추천하고 다니고 있습니다ㅎㅎ
다시한번 리뷰 잘 쓰셨어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당 ㅎ
@하룡이~ 추천할만한 영화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__)
레이첼 맥아담스 보면 항상 바지 먹는 거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역시 바지 먹는 장면 나옴 ㅎㅎㅎ 그건 그거고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긴장감 없는데도 보는 내내 몰입감이 좋았어요.
바지 먹...;;; 앞으로 그것만 보게 될것같아요^^;
@풀코트프레스 ㅋ 제가 괜한 코멘트를... 아카데미 작품상인데ㅎ
@J. Valanciunas 뭐... 안 좋은 정보는 아닐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