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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 13-14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종이 되자. 마 24: 15. 멸망의 가증한 것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종이 되자
성경말씀 : 마 24: 13-14, 딤후 2: 20-21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1. 주인의 뜻을 깨닫는 종
* 눅 19: 11-27 -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주인의 뜻을 바로 알고 달란트를 더 남긴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하였으나 주인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여 달란트를 땅에 그대로 묻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고 바깥 어두움에 내어 쫓겼다.
지금은 환난 시대이므로 환난 시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다하여도 은혜시대 차원이라면 의미가 없으니 시대에 맞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는 종이 되자.
은혜시대 하나님의 뜻은 예수를 믿지 않은 자를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이었으나 환난 시대의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 이룬 뜻이 땅에 이루어져 천년 왕국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 일천 년 동안 이루는 것이다.
* 마 6: 10 -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계 11: 15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그러므로 전에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 믿도록 전하였다면 이제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주인의 뜻을 모르는 종은 도리어 주인을 어렵고 난처하게 만들게 된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바로 아는 종으로 이 시대에 올바르게 적용하는 합당한 종이 되자.
2. 재능을 따라 충성하는 종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맡겼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한 달란트만 더 남겼다면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같은 칭찬을 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였을 것이다.
그가 그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 주었다면 더 남기는 유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종은 기어이 자신이 가지고 있음으로 인하여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음은 상업적으로 볼 때 폭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주의 일에 월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의 일에는 반드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들이 갑절 이상으로 더 남겼다면 주인은 고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더 남기기 위하여 무리하게 폭리하여, 이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그들이 남겨야 할 선이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으면서 재능대로 받은 달란트로 죽도록 충성하는 종이 되자.
* 계 2: 10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3.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종
딤후 2: 20-21은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종이‘금이나 은 그릇’이 아닌 깨끗하느냐?가 문제라고 하였다.
* 딤후 2: 20-21 –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는 깨끗하게 씻어진 성결 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는 금이나 은그릇이 아닌 질그릇에 담겨져야 제 맛을 낸다.
또한 간장 그릇은 상 복판에 놓여야 하며, 국그릇이나 밥그릇이 상 중앙에 놓이지 않음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합당한 그릇, 성결된 그릇으로 그 용도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여야 하겠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말씀을 받아 금 그릇 또는 은 그릇으로 변화되었다면 그 속에 값진 보화를 담은 최상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 받도록 하자.
4. 결말이 아름다운 종
결말이 아름다운 종은 주인이 인정하는 종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 마지막 복음도 기회가 여러 번 오지 않는다.
* 계 10: 2, 7-11 –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은 종이 되자.
결론 :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종이 되자!
3. 가장 큰 환난 ( 24: 15-28. 막 13: 14-23. 눅 21: 20-24 )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16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마 24: 15. 멸망의 가증한 것 -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
다니엘 11: 31은,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주전 167년 수리아 왕 안티오커스 4세(일명 ‘에피파네스’)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고 제사를 폐지하고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울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
1]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본문은 단 9: 27. 11: 31. 12: 11의 70인 역(LXX)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로운 인용이다.
* 단 9: 27 -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단 11: 31 -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 단 12: 11 -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이것은 역사상 성취되었다고 보이나, 예루살렘 멸망과 주의 재림의 징조로 제시되었다.
로마 군대는 주후 66년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주후 70년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였다. 주의 재림 직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 것이다.
* 살후 2: 3-4 –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2] 멸망의 가증한 것이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니엘 11장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세력이 꺾이고 그 나라가 나뉠 때 일어날 남방왕(애굽의 프톨레미 왕국)과 북방왕(수리아의 실루커스 왕국)의 전쟁에 관한 예언이라고 본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우상을 가리키고,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이 예언은 주전 168년 수리아 왕 안티오커스 4세(일명 에피파네스)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고 제사를 폐지하고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울 것을 가리켰다.
그 내용은 여호와 경배와 관련된 것으로 제사를 폐하고 우상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즉 성전을 더럽히겠다는 말이다.
구약적인 관점에서 '가증한 것'은 여호와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신성 모독과 연관된다. '가증하다'는 헬라어 '브델뤼쏘마이'(*)는 '악취로 인해 구토를 일으키다', '혐오스럽다'이다.
하나님께 우상과 거짓 사술 등은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멸망의'란 '멸망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이란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니엘서는 B. C. 168년에 수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의 상을 세우고 그 제단에 부정하게 취급되는 돼지를 제물로 바쳤던 사실을 의미한다(마카비서 1:54-64, Josephus, Antiq., 5:4).
예수께서는 이러한 예언을 통해 위와 비슷한 모습으로 거룩한 곳이 황폐되고 치욕당할 것이라 하셨다. 이것은 역사상 그림자로 성취되었으나, 예표적으로 예루살렘 멸망과 주의 재림의 징조로 제시되었다고 본다.
이런 사실로 인해
Ⓐ 혹자는 로마의 통치자 가이우스 갈리굴라(Caligula) 황제(A. D.37-41년)가 그의 상(像)과 기(旗)를 성전에 세우려 했던 계획을 본 예언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과 예수가 말씀하신 내용과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
Ⓑ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 군대와 연관시켜 이해하고 있다(Bengel, Bruce).
* 눅 21: 21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로마 황제의 가슴 위에는 은이나 청동으로 된 한 마리의 독수리가 새겨져 있으며, 로마 군대는 독수리 깃발을 앞세우고 전선에 나갔다. 그의 경배와 동일한 차원의 경의를 그 기에 표해야 했다.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Josephus, B.F.Ⅵ. 6) A. D. 70년. 예루살렘을 훼파(毁破)한 로마 장군 디도(Titus)가 로마 군기를 성전 동편 문 쪽을 향해 세우고 거기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수년간 로마 군대의 기를 보아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일말(一抹)의 새로운 징조가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예언과 본 견해를 연관시키기에는 부적절한 점이 있다.
Ⓒ A. D. 70년 이전 열심 당원들(Zealots)이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사건과 관련시키고 있다(Alford).
열심 당원들은 대제사장을 살해하고 매일의 제사를 훼방했으며,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제사장을 임명하였다(Josephus, Wars, 147-57, 162-92, 334-44).
요세푸스는 그들의 만행(蠻行)이 바로 예루살렘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당시 그들의 만행 동안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곳을 달아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Lane, Gaston).
그러나 이 견해 역시 확정적으로 인정할 정도는 아니다.
믿을만한 한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남으로써 처참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쨌든 예수의 예언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가증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명확히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적어도 이 내용이 갖는 의미는 앞에서 언급한(9-12절) 교회 분열의 혼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신앙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전(殿)인 인간의 내면을 공격하며 파괴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활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살후 2: 4, 8 –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주의 재림 직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 3-4,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처럼]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3] 거룩한 곳(*, 토포하기오)에 선 것을 보거든
앞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Macc 1:29; 2:18). 그러나 본문에는 정관사가 없는 관계로 단순히 한 성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 회당까지도 포함한 신앙의 중심지들로 보기도 한다.
* 사 60: 13 -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都城)인 예루살렘으로 볼 수도 있으며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재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신앙인의 마음속이 될 수도 있다.
그곳에 우상을 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될 것이다. 평행구를 이루는 눅 21: 20에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표현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대신 거룩한 성전에 대한 유린을 멸망과 연결한다.
4]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다니엘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예수께서는 다니엘의 예언과 역사에 대한 당신의 자의적 해석을 조화시키고자 하셨다.
즉 당신이 예언한 바를 영적 긴장과 분별력이 없이는 도무지 감지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계신다.
본문은 후대 편집자들이 첨가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나 그 보다는 다니엘을 향한 천사의 고지, 즉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단 9: 25. 12: 10)는 말처럼 예수께서 친히 경고적, 교훈적 메시지로서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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