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워치
나는 예언가는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안에 지구의 멸종이 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최소 50년 안에
누구에게나 데스워치가 주어질 것이다. 이 말이 있는지 모르 겠지만 내가 이 글에서 멋대로 합성한 것은 사실이다.
죽음이 주어지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모든 생명은 죽음의 시간이 있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그 죽음의 시간이 자꾸 유보되기에, 인류의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사가 시작 된 이래 이렇게나 인류가 장수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환갑에 돌아갔는데, 문상객들이 그래도 환갑을 잡수고 가셨으니 원이 없다고 말한 것이 불과 사십여년 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80세에 돌아가도 아깝다고 다들 말한다. 무병장수하고 100세가 되어도 생활력을 가지고 일하며, 스스로 를 돌볼 수 있다면 장수는 축복이다.
그러나 벌써, 2025년인 오늘에도 유병장수가 재앙이 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노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인데, 여기에 병이 겹치면 처참한 말로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재산이 수조원이 있어도 병실에 갇혀 다른 이의 뜻에 의해,필요 에 의해 목숨이 연명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고독사는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었고,요양원의 노인 학대는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숨만 붙어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큰 고통이 된다.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나는 그 제목을 기억 못 해서 데스워치라고 말했지만 그런 예언을 글로 쓴 작가가 아주 예전에 이미 있었다. 작가도 제목도 잊었으나 내용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몇 년 도인지는 모르 지만 인류는 포화 상태가 되어, 살아있는 한 타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전 세계의 법률로 정해져 있다는 내용이다.
70세가 되는 생일에 눈을 뜨면 그 신분이 무엇이든지, 그 날 하루는 왕의 대접을 받으며 온종일을 가족과 이웃들과 지인들
의 사랑속에서 보낸다. 아무도 울지않고 모두 기뻐하며, 최후의 만찬을 마지막으로 당사자는 죽음의 전당으로 옮겨진다.
천국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곳에 호화로운 관이 안치되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은 당사자는 모두의 환호속에 그 안에 들어가 눕는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노래하고, 그 어떤 고통도 없이 축복속에서 당사자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사십여 년 전에 읽은 내용이다. 미래환상단편소설모음집 이었는데 별별 기이한 내용들이 다 있었다. 이 내용을 읽으며 나는 몹시 울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단편집 안에 실린 내용들이 다 기괴하고 무섭고 가혹했으 나...놀랍게도 불과 사십여년이 지난 오늘날 너무나 소름돋는 것은, 대부분이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타인보다 섬세한 감수성에 의한 일종의 예지력 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인류의 첨단의 과학이며 생활 가전들 과 실용되는 기계들은, 이미 한 세 기 이전에 공상과학소설이란 이름으로 책으로 쓰여졌고 읽는 사람들은 에이! 그럴리가! 했으나 홀로그램과 결혼하는 것까지도 벌써 아주 예전에 나왔었 다. 내가 오늘 쓰는 데스워치도 더 빠른 시간내에, 우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현될지도 모른다. 이미 안락사가 허용되는 나라가 있고, 우리나라도 벌써 연명 치료는 거부한다는 서약서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지, 연명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나이들고 노쇠하면 무조건 죽음앞에 고개 숙여야만 할까?
그렇게 안 되도록 나 자신을 운영해 나가는 삶이, 어떤 데스워치 앞에서도 당당한 인간으로 서게 할 것이다. 언젠가 티비에서
다큐를 보았는데 진정 위대한 삶을 마주했다. 7명의 자식이 있으나 본인의 의지로 다 내보내고, 하반신을 못 쓰는 몸으로
농사에서 음식까지 못 하는 것이 없었다. 혼자서 두 대의 휠체어와 세 개의 각기 다른 운송 수단을 사용하며, 팔순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 노년의 불편 과 병과 점차 불구가 되어가는 어딘가를 내 몫으로 받아들이며, 나를 살게 하는 삶은 신이 주는 데스위치 앞에서도 왕처럼 당당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은 반드시, 다가오 는 노년의 프레임을, 자신에게 맞게 짜고 운영해야 한다. 의지가 아니라 서로 도우며 서로가 서로를 일으키는 삶...그것만이 우리 에게 주어지는 데스워치를 거부할 수 있는 자격이 될 것이다.
권영심 ( 2025,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