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광주 무등산은 차가운 바람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올라서는 중에 화순 쪽에서 불어오는 드센 바람과 맞서야 한다. 서석대 위에 꼿꼿이 서 있으려면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할 정도다.
그런데 1월 중순 산행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사로운 무등산을 다녀왔다. 예보로는 낮 최고 기온이 영상 13도로 예보된 지난 24일 다녀왔다. 그 전날은 광주 누님이 우울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날씨가 우중충했다던데 이날 광주 소촌동 누님 아파트 창문에 날아든 햇살은 말갛기만 했다.
광주 지하철 송정공원역에서 출발해 학동 무등산입구역에서 하차, 버스로 환승해 증심사입구 종점에서 하차하니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서였다. 종점 맞은 편 앤젤리너스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휴대전화와 블루투스 이어폰 충전을 마저 하면서 책을 읽었다. 아 볼일도 해결했다. 아침 햇살이 포근하고 나른한 아침을 만들어냈다.
오전 11시 5분에 산행 첫 발을 뗐다. 증심사 들머리를 지날 때 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연유를 알 수도 없지만, 그 시절에는 기생집이 있어 어머니 손을 잡고 지나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따금 기생들과 눈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 반 안쓰러움 반 감정을 느끼곤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증심사 바로 위에 오방선교회 건물이 있는 것, 또 그 바로 위에 당산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야릇하기만 하다. 겹겹이 다른 종교들이 터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무등의 넉넉한 품을 짐작할 수 있다.
서석대 표지판 근처 갈림길에서 중봉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날이 너무 따듯해 전반적으로 산에 눈이 귀했지만 입석대 근처부터 응달에는 어김없이 눈밭과 얼음밭이 펼쳐져 있었다. 입석대 아래도 상당히 미끄러울 것이라 걱정되기도 하거니와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도 그래 중봉 내려가는 길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한 분이 올라오길래 여쭈니 '뭐 말리고 싶을 정도로 위험한 지경은 아니다' 싶은 답이 돌아왔다. 그래 한 500m 조심해서 내려가면 되잖아. 실제로 상당히 위험한 곳이 있긴 했지만 아이젠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뭇가지와 난간 줄 잡고 내려올 만했다. 임도 만난 곳에서는 샛길을 피하고 임도를 타고 중봉 쪽까지 내려왔다.
토끼등 거쳐 증심교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발길을 서둘렀다. 4시 30분쯤 버스를 타고 왔던 루트를 되돌아 송정역 지하철역에 내리니 5시 32분이었다. 누님과 만나기로 한 광산곰탕 집에서 국밥으로 맛있는 점심 겸 저녁을 먹고 6시 26분 용산행 ktx로 귀경했다. 난 항상 이 집의 유채김치를 좋아하는데 이날은 국밥도 기막히게 맛있었다. 유채를 가랏이라고도 한다고, 누님은 유채와 가랏은 종류가 또 다르다고 주장했는데 진위를 알 길이 없다.
전날은 어머님 요양병원 면회를 마친 뒤 입사 동기 최모를 만나 화정식육식당에서 생고기를 먹었다. 600g 한 근에 5만 9000원인데 번데기, 간, 천엽에다 해장국까지 기본안주가 충실했다. 소주 두 병을 시켜 다 먹지 못해 싸달라고 해 누님 내외와 소줏잔을 기울였다. 누님은 오리탕을 끓여 놓아 실컷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귀한 물메기(물텀벙) 지리탕을 끓여줬다.
이번 일박이일 광주 여행에 생고기, 오리탕, 물메기탕, 나주곰탕을 맛봤다. 무등산 오르는 재미로 맛 여정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오전 11시 5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발톱이 무척 아파왔다. 올라오는 ktx 안에서 등산화를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옆 손님이 불편해 할까봐 꾹 참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마저 읽는데 행복한 나른함이 찾아왔다.
첫댓글 멋져요 오 무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