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 산책에서
이월 중순 화요일이다. 어제는 창원 근교서 제법 높은 축에 드는 용제봉 산행을 다녀왔다. 인적 드문 활엽수 숲을 지나 정상에 서니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라 사위가 탁 트였다. 다대포와 몰운대가 아스라하고 금정산 꼭뒤 고당봉도 보였다. 밀양과 경계를 이룬 한림 들녘과 삼랑진 뒷기미로 낙동강이 흘러갔다. 산등선을 따라 장유사로 내려서서 대청계곡을 빠져나와 창원으로 왔다.
평일이지만 방학이 계속되어 날이 밝기를 기다려 길을 나섰다. 대방동에서 출발해 마산으로 가는 101번 버스를 탔다. 창원대로를 거쳐 마산 시내를 관통해 경남대 앞까지 가는 노선이었다. 나는 마산의료원 앞에서 내렸다. 거기는 구산과 삼진으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나는 진동으로 가는 70번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잡아탔다. 진동 갯가를 산책하려고 나선 길이다.
진동 환승장에서 내려 국도 찻길로 나가 사동교를 앞두고 개울둑으로 나갔다. 서북산이 봉화산으로 나뉘면서 산줄기가 생겨 골짜기를 만들었다. 진동에는 진동천이, 진전에는 덕곡천이 사동마을 앞에서 합류해 광암바다로 흘러들었다. 썰물로 갯벌이 드러난 개울에는 흰뺨검둥오리와 고방오리들이 먹잇감을 찾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아치형 교량을 건너 죽전마을 앞 방조제로 갔다.
아침 해가 솟아올라 호수처럼 잔잔한 광암바다는 윤슬로 반짝거렸다. 저 멀리 다도해 섬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이 엊그제 내가 다녀온 거제도다. 그곳에 올봄 내가 근무지를 옮겨가는 학교가 있어 원룸을 하나 정해 두고 왔다. 광암 앞에는 거제 본섬 말고도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들이 많았다. 잔잔한 수면에는 양식장을 돌보는 어선들이 여러 척 떠 있었다.
죽전방조제를 따라가니 전에 없던 시설물이 나타났다. 간척지에 뭔지 모를 작물을 키울 대형 유리온실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맞은편에 흥겨운 음악을 크게 튼 라디오를 지닌 할머니가 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더 나아간 방조제 끝엔 중년 부부가 산책을 나와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근처 마을이나 내가 버스에서 내렸던 진동에 사는 사람인 듯했다. 진동 생활하수처리장을 돌아갔다.
진동 일대 생활하수를 정화시켜 바다로 내보내고 있었다. 주변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근린공원으로 꾸며졌다. 산책로를 돌아가니 작은 조선소가 나타났다. 목재를 이용한 전통 고깃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공장이었다. 조선소를 넘으니 고현이었다. 예전 진동의 현이 위치했던 어촌이었다. 고현이라는 지명은 거제에도 있고, 남해에도 있다. 세 곳 모두 옛적 관청인 현이 위치한 곳이다.
진동 고현은 우산이라고도 한다. 뒷산이 소처럼 생겼다고 우산이다. 면소지지도 아닌 곳이지만 초등학교까지 있다. 그 이름이 우산초등학교다. 고현 앞바다를 우해라도고 불렀지 싶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정약용 형제가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 갔을 때 같은 사건에 연루된 김려는 고현으로 유배와 ‘우해이어보’를 남겼다. 물고기 특성을 기록한 어류도감으로 ‘자산어보’보다 앞선다.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된 고현이었다. 고현 앞바다는 미더덕 양식으로 유명하였다. 미더덕 사촌쯤 되는 오만둥이도 생산되는 곳이다. 이 둘은 이월 말부터 삼월과 사월에 집중 출하되어 아직 제철이 아니었다. 어촌계 작업장에선 인부들이 생굴을 포장해 택배로 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냉동 창고 저장해두었을 오만둥이를 녹여 선별하기도 했다. 봄은 어촌에서도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고현을 지나니 장기마을이었다. 고현과 마찬가지로 양식업을 주로 하는 어촌이었다. 장기에서 꼬부랑 고래를 넘으니 뒷개였다. 뒷개는 선두마을로 이어졌다. 방파제 서낭당엔 남근석이 세워져 있었다. 갯가를 더 돌아가니 율티공단이었다. 한동안 중단하던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선박의 핵심인 대형 골조를 만들어 납품하는 공장이었다. 바다 건너편 거제 조선소에도 봄이 오려는지. 19.02.12
첫댓글 오랜만에 들어와 주선생님 수필 한편 읽었습니다.
잔잔하고 정감있게 써냐려간 봄 플경과 봄이야기가 수채화같이 펼쳐저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이번에 거제도로 발령나셨다고요.
어쩌면 출세위해 가는 곳 쯤으로 여기며 집에서 장거리를 마다않고 출되근 하는 곳이지만 과감히 원룸을 구하셨다니 세속에 사시면서도 구도자 같은 모습으로 생활하시려는 주선생님의 생활철학과 교육관에 존경심을 보냅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구도의 방편으로 삼아 매일 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연세도 지긋해지고 객지생활에 건강 축나지 않게 섭생과 활동을 잘하십시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좋은 글많이 쓰십시오,
호명 선생님! 반갑습니다.
멀리서 이렇게 회신으로
어쭙잖은 저 글에 과분한 평을 주셔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신 날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