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산행
남해 19번 도로 95.1 수준점 두무계곡 입구-부소암-헬기장-상사바위 왕복-금산(704.9)-보리암-쌍홍문-도선바위-금산탐방지원센터(19번 도로)-차량 이동-가천마을-x342.6-응봉산(△471.5)-x365.7(무직재 분기점)-고개뭉댕이산(378.1)-설흘산(481.7-가천마을 제2주차장)
실거리 : 금산 6.06km 응봉산 설흘산5.64km
소재지 : 경암 남해군 상주면 남면
도엽명 : 남해 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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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2022년 11월 16일 (토) 맑고 더움
캐이 본인2명
캐이님이 某산악회 남해 금산과 응봉산 설흘산을 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하며 나름대로 산행계획을 세우는 것은 산악회를 이용해서 산행을 거의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금산가는 팀과 응봉산 설흘산 가는 팀을 나눠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못 가본 설흘산과 응봉산을 엮어서 북쪽 무직재를 거쳐서 장등산(354.4) 기동산(359.6) 망기산(△340.4)를 거쳐서 남면 소재지 인근으로 하산한다는 코스를 지도에 금을 그어놓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무박으로 04시쯤 도착한 버스는 09시까지 금산을 오르고 09시까지 하산하면 다시 버스로 이동해서 설흘산을 오른다는 것이니 내 계산은 그냥 계산일뿐이 되었다
그런데 오르고 하산하는 시간까지 3시간 정도면 충분한 시간인데 날이 밝으려면 3시간 후 정도인데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뭐 산악회 산행을 잘 모르지만 올라서 날이 밝으려면 바람 불고 추위가 느낄텐데... 우리 둘은 느긋하게 오르다가 어둠 속에서 막걸리도 마시며 일부러 시간을 보내며 여유롭게 오른다
▽ 뭐가 급한지 모두들 출발하고 난 후 천천히 움직인다
▽ 해발 약225m 지점 서불과차(徐巾過此) 마애석각 선사 철기시대 암각화 석각화 라고 하는데 어 둠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 해발 500m가 넘어서면서 암벽지대 나선형 철계단을 밟고 오르니 금산34경 부소암이며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
▽ 해발 약645m 헬기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쪽 상사바위를 다녀오기로 한다
▽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로 상사병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돌쇠라는 머슴이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여 애를 태우다 죽어 구렁이가 되었고 이 구렁이가 주인집 딸을 휘감고 풀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주인의 꿈에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나타나 금산에 있는 높은 바위에서 굿을 해보라고 한 뒤 사라졌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구렁이가 된 돌쇠는 마침내 딸을 풀어주고 자신은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하며 절벽이 아찔하다 금산27경
▽ 남쪽 상주면소재지 상주만
▽ 이 능선의 암릉과 우측능선 끝 바다의 노도(櫓島)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며 앵상만 건너 바다 끝 쪽이 설흘산과 망산이 겹치고 우측이 도성산(305.2) 장등산(354.4) 멀리 여수항 쪽이다
▽ 남해지맥의 끝자락 망운산(△287.3) 미조항 앞은 떼섬 사도 큰섬 작은섬 죽암도 목과도 등이고 그 좌측 멀리 x470.5m 천황산의 두미도
▽ 아직도 어두운 상태에서 금산 정상 일대를 본다
금산의 원래 산 이름은 보광산 이었는데 원효스님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보광산 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과 함께 이성계가 바꾸는데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에서 1백일간 기도를 올렸는데 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되자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가 3곳이니 금산(錦山)은 남해도 동쪽에 있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에서 동쪽 23리에 목장이 있다"라고 나와 있다하고「조선지지자료」에는 금산이 이동면 상주리후산(尙州里後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상주포보와 비자산 사이에 금산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읍치의 동쪽 25리에 있다"라고 수록된다
「대동여지도」에는 읍치의 동쪽에 묘사되어 있다
산줄기가 북에서 남서쪽으로 달리고 있으며 읍치를 지나 중간 지점에 봉수 지명으로 묘사되어 있다
▽ 돌아본 상사바위
▽ 20경 신라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3사가 앉아 수도했다는 자리가 뚜렷이 패여 있다는 좌선대 인가?
▽ 단군성전 볼 품이 없어서
▽ 봉수대가 자리한 금산 정상 사람이 많아 봉수대는 한 쪽에 보인다
▽ 남동쪽 미조항 쪽 남해지맥 끝자락과 그 앞의 호도 큰섬 작은섬 등
▽ 일출
▽ 동쪽 남해지맥 시설물의 △666.4와 그 좌측 순천바위의 x615.1m다
▽ 북동쪽 우측 비죽한 호구산(남산621.7) 좌측 뒤 괴음산(604.9) 좌측 앞 송등산(616.8) 멀리 망운산(784.9)이다
▽ 사진 우측 호구산 송등산 귀비산과 뚝 떨어진 남면소재지 좌측은 도성산(305.2) 장등산(354.4) 망기산(341.3) 기동산(359.6)이 겹치고 중앙 멀리 희미한 여수의 진례산 영취산 등
▽ 나뭇가지 뒤 설흘산 응봉산 우측은 장등산 기동산 망기산 등
▽ 금산 정상을 뒤로 하고 보리암으로 내려서며 매점 뒤로 금산 정상을 본다
▽ 2017년 남해지맥을 종주하며 바라본 설흘산 응봉산
망운산 괴음산 솜등산 보기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유명한 보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며 683년(신문왕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이라 하였고 1660년(현종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 이라 개액(改額)하였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4년 2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보리암으로 내려서며
▽ 보리암
▽ 아침햇살에 비친 바위 들
▽ 해수관음상
▽ 천황산(287.0) 산불암산(219.8)으로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
▽ 상주면과 木島
▽ 돌아보고
▽ 쌍홍문으로 내려서면서
▽ 15경 쌍홍문 옛날 부처님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의 오른쪽 굴로 나가면서 멀리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다고 한다
▽ 장군바위
▽ 편안한 숲 길 하산
▽ 도선바위 라지만 ...
▽ 하산한 도로 주차장에서 올려본다
▽ 2017년 남해지맥을 종주하며 가까이서 바라본 금산과 보리암
-응봉산 설흘산-
천천히 올라가서 천천히 내려와도 남는 시간이 많아서 막초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로 이동하니 10시가 살짝 넘었다
맑은 하늘 쏟아지는 햇볕에 주줄 흐르는 땀을 씻으며 본래 생각했던 코스와 어긋나니 응봉산을 먼저 오르고 설흘산으로 진행 후 가천마을로 하산하기로 하고 해발 약105m 도로에서 북서쪽 시멘트 임도를 오르면서 다시 산행시작이다
▽ 시멘트 임도에서 우측 설흘산을 바라본다
▽ 올라갈 응봉산 쪽 능선
▽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좌측사면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해발 약215m 능선 B-1 표시에서 좌측으로 틀어 오른다
▽ 암릉지대가 시작되고
▽ 바다 저 편 여수항 쪽에서 좌측으로 돌산지맥의 시작점 그리고 돌산도가 희미하다
▽ 가파른 바위능선에는 시설이 좋다 저 아래 다랭이 논들
▽ 산행시작 25분후 x342.6m
▽ 설흘산을 다시 보고
▽ 올라갈 응봉산이다
▽ 여수항 쪽
▽ 예전 남해지맥 때도 그랬지만 이 섬의 산에는 석축이 자주 보인다
▽ 해발 약410m 지점 무덤이 있고 이곳에서 막초 마시며 천천히
▽ 설흘산과 다랭이논들
▽ 설흘산 뒤로 금산과 그 좌측 신전리 △582.4m 중앙의 낮은 봉우리는 도성산(305.2)
▽ 응봉산 정상
▽ 임포리 골자기 너머 능선 좌측 제일 끝자락 호두산(125.9) 그 우측 바위의 기동산(359.6) 그 뒤 망기산(341.3) 우측 나뭇가지 뒤 장등산(354.4) 바다 저 편은 여수의 진례산 영취산 들이다
▽ 2019년 여수 진례산 영취산 호랑산 7개 종주 때 바라본 응봉산 설흘산(사진 우측)
진례산 영취산 호랑산 보기
매鷹의 응봉산 전국의 응봉 매봉 수리봉과 비슷한 뜻 일거다
응봉산 정상에서 잠시 돌아보고 북동쪽 능선을 내려서면 편안한 숲길이 펼쳐진다
편안한 능선 응봉산 정상출발 10분후 우측사면으로 진행하며 좌측 머리 위로 밋밋한 x365.7m인데 이 곳 북쪽 무직재로 내려선 후 x282.3m로 올라서면 우측능선 도성산 좌측 능선 장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당초 이 산악회의 산행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 쪽 능선으로 이어갈 계획을 세웠던 곳이다
▽ x365.7m
▽ 편안한 능선
▽ 좌측(남) 가천마을로 내려서는 임도를 만나는 분기점
▽ 누군가 만들어 놓은 隨處作主 ... 대체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데 ^^
▽ 좋은 등산로를 따르다보니 x378.1m 고개뭉댕이산 사면으로 지나온 안부는 좌측(북) 홍현2리0.65km 우측(남) 가천마을0.9km 갈림길이다
어차피 계획한 산행을 못한 것이라 설흘산 정상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는 것보다 편안하게 내려서기 위해서 홍현2리↔가천마을 갈림길 안부에서 막초 마시고 배낭을 두고 설흘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하는데 계획대로 하지 못한 산행 때문이었나! 워낙 마음이 풀어져서 그랬던 것일까! 설흘산 정상은 올랐지만 바로 옆 △460.8m의 망산은 생략하고 하산한 것이 아쉽다
▽ 봉수대 위가 설흘산 정상
▽ 북쪽 앵강만 저 편 산들이고 대방산은 창선도의 산이며 망운산 앞 학등산(539.2)과 겹친다
▽ 조금 전 올랐던 응봉산 우측 바위는 기동산 그 좌측 끝 호두산 바다 건너 멀리 여수항 인근 우측으로 봉화산 호랑산 영취산 진례산 등
▽ 응봉산 좌측 바다 멀리 여수 돌산도 돌산지맥
▽ 바로 옆 망산도 가지 않고 사진만 남았다
▽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와 금산
▽ 다시 응봉산과 우측 뒤 여수항 진례 영취산 좌측 돌산도
설흘산 정상 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있어 원래 봉수대라는 것은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되는데 설흘산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금산 봉수대와 사천 전남 등지에 연락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네모꼴로 축조되었고 중앙에는 지름 2m의 움푹한 홈을 만들어 봉수 불을 피울 수 있게 했다
이 봉수대의 둘레는 25m 높이 6m 폭 7m이다
▽ 하산 길 석축도 있고
▽ 시금치 밭이 많이 있는데 남해 시금치가 유명한가!
▽ 아까 올라갔던 응봉산 능선과 다랭이밭 가천마을
▽ 올려본 설흘산
가천마을의 문화자산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최고의 예술품인 계단식 다랭이 논 주민들은 바다로 내리 지르는 소울산 응봉산 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하여 삿갓배미라 부르는 달갱이로부터 봇물이 실한 세마지기 가 웃 논까지 100층이 넘는 논배미들이 층계를 이룬 모습은 참말로 장관이다
천수답이 아니더라도 위에서부터 물을 대야 고루 물을 댈 수 있다는 슬기로 척박한 비탈에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고 그 석축은 한 뼘이라도 더 땅을 넓히려는 주민들의 집념으로 안으로 기운 것 없이 바짝 곧추 섰으며 그 석축을 따라 농군의 심성을 닮은 듯 유연한 곡선을 그린 논두렁이 이룬 장관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의 꿈에 백발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 꿈에 본 것과 똑 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남자의 성기를 닮은 형상인 높이 5.8m 둘레1.5m인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 둘레2.5m인 암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미륵불이 발견된 음력 10월23일 자정이면 생선이나 육고기 없이 과일만 차려 불교식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암수바위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나갈 때 예를 올리는 용왕신이며 불임여성 병자가족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기도하기 위해 찾는 민간신앙처라고 전한다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이 나은 성기숭배의 대상물에서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 탄압받던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기원하던 미륵불인 가천 암수바위는 남해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아직도 참게가 살고 있는 맑은 개울이 마을을 가로 질러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에 태고부터 파도에 씻겨 하얘진 화강암 바위들이 눈부신 가천해안의 절경 또한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장관이다.
첫댓글 올 봄 식구들과 보리암 갔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