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알파고와는 완전히 다른 '알파고 제로(AlphaGo Zero)'. 알파고 제로가 바둑 입문을 하는 것부터 역대 최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바둑이론의 진화를 한눈에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 | 구글]
인간의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은 알파고 새 버전 '알파고 제로(AlphaGo Zero)'가 베일을 벗고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알파고는 인공신경망 속에서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이라는 인간기보 학습을 거쳤지만 알파고 제로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 대국하면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으로만 실력을 키웠다. 바둑의 기본 규칙을 제외하고, 알파고 제로의 학습에 인간의 개입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독학한' 알파고 제로는 지금까지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왔던 '알파고 마스터(AlphaGo Master)' 버전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준다.
알파고 제로는 각각 같은 연산력(TPU 4대를 갖춘 싱글머신)에 제한시간 2시간의 조건으로 알파고 마스터와 100판을 겨뤄 89승11패 했다. 약 90%의 승률이다. 알파고 마스터는 올 초 인간 고수들을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둔 뒤 5월 세계 최강 커제를 3-0으로 제압했던 버전인데 알파고 제로 앞에서는 상대도 안 되는 셈이다. (알파고 제로는, 이세돌과 겨뤘던 알파고 버전에는 100전 100승을 기록했다.)
알파고 제로 알고리즘과 테스트 결과 등을 담은 논문 '인간 지식 없이 바둑을 마스터하다(Mastering the game of Go without human knowledge)'가 19일(한국시각)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알파고 제작사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 17명이 공동저자다.
#무(無)에서 시작한 알파고의 진화속도는 놀라웠다 알파고 제로는 그야말로 아무데나 두는(완벽한 무작위 착수) 것으로부터 시작한 뒤 바둑의 개념(포석, 맥, 패, 끝내기, 수상전, 선수, 모양, 세력, 집 등)을 정교하게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였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오직 바둑 규칙만 입력된 알파고 제로는 훈련을 시작하면서 18급만도 못한 바둑을 보여줬다. '1의1'에도 거침없이 뒀다.
▲기보를 한번도 보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과 바둑을 두면서 역대 최강의 바둑 실력을 갖출 때까지 알파고 제로에게 필요한 세월은 불과 40일이었다.[이미지 | 구글]
3시간이 지나자 바둑에 갓 입문한 사람의 수준이 되었다. 오직 상대 돌을 잡으러 다니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였다.
19시간이 경과하면서 기본기가 갖춰지고 점차 사활·세력·집과 같은 바둑전략의 요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3일이 지나면서 '알파고 리(AlphaGo Lee,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버전을 지칭)'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1일이 경과하자 알파고 마스터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40일 동안 약 3천만 대국을 훈련한 뒤엔 알파고 마스터를 크게 이겼다. 이 단계가 되자 알파고 제로는 기존 정석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고 사람 수준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참신한 변화가 증가했다.
#인간의 기보를 안 거쳤더니 왜 더 강해졌을까 알파고 제로는 Elo레이팅 5,185점을 기록하고 있다. 알파고 마스터 4,858점, 알파고 리 3,739점, 알파고 판(판후이) 3,144점 순이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의 기보로 학습한 기존 알파고를 압도하는 이유를 놓고 연구진은 "사람이 그간 쌓아온 바둑에 대한 접근법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략을 알파고 제로가 깨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알파고 제로, 그리고 기존 알파고 버전들의 Elo레이팅 비교. [이미지 | 구글]
논문의 공동저자 데이비드 실버(David Siver)는 "인간 지식의 한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정책망(policy network, 다음 수를 선택) 가치망(value network, 승자를 예측)으로 알려진 두 개의 신경망을 하나로 통합하여 훈련과 평가에 효율성을 높인 것도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국가대표팀 "알파고 제로의 기보, 해석 어려워" 알파고 제로의 기보를 접한 국가대표상비군들은 여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인간의 기보를 전혀 보지 않고 훈련했는데도 인간의 바둑처럼 틀이 잡히는 변천 과정이 신기하다."
"신선하다. 하지만 이전 알파고 마스터 버전의 셀프대국 55국이 워낙 파격적이었기에 충격파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알파고 마스터의 바둑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알파고 제로가 더 인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우리가 알파고 제로가 얼마나 강한지 평가하는 것은 마치 18급이 정상급 프로기사들을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며 "알파고 제로의 사고방식이 도움을 주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석조차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