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뼈다귀해장국집
정 미
뼈다귀해장국집 앞을 지날 때
무쇠가마솥에서 노파의 손짓이 솟아올랐다
처음엔 그것이 어떤 신호인 줄 몰랐다 그저 찾아오는
허기거나 노파의 빗자루에 쓸리던 푸념이려니 생각했다
골목길 가로등을 지나면 떠 있는 붉은 글씨
할머니뼈다귀해장국 간판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키 작고 깡마른 할머니가 거기에 서 있었다
시간을 잡아 틀고 역사를 각 뜨고 있었다
핢너니의 비트는 힘이 허연 뼈다귀로 버둥거렸다
달려가 말리려 하면 할머니는 간데없고
커다란 가마솥에 김만 무성했다 그런 저녁이면
해장국집 앞에서 내 팔다리를 만져보곤 했는데
기침하는 할머니의 뼈들이 욱신거렸다
불현듯 해장국집 노파가 나와 가마솥 뚜껑을 닫으면
멀리 평화비 늙은 소녀의 맨발이 통점으로 깜박거리곤 했다
시집 『우리가 우리를 스쳐갈 때』 상상인시선 019
초록의 은유
정 미
시멘트길 갈라진 틈새의 키 작은 초록을 보면, 쏟아지는 빗물로 몸을 씻고 있는 등 굽은 노숙을 보면, 문득 발길 멈추고 우산을 씌워주고 싶다 발길에 연신 짓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믿기지 않아 그의 이름 모르는 게 마냥 미안해진다 초록은 생활력이 저리 강할까 민초는 가혹하거나 안전하거나 힘껏 푸르게 살아가는 등이 있다 지붕이 없는 집에 가까스로 세든 세입자들 초록은 시멘트길이 제 배를 갈라 기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은유이다
시집 『우리가 우리를 스쳐갈 때』 상상인시선 019
정 미 시인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예창작 전공
200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9년 아테나 아동문학상 대상 수상
2013년 경기도문학상 아동소설 부문 수상,양평예술대상
시집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장편동화 『이대로 괜찮아』 『공룡 때문이야』 『까불이 걸스』
청소년 장편소설 『사랑을 싸랑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