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서품 15년 뒤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에 주교서품
'교황대사님이 나를 왜 갑자기 보자고 하시지?'
교황대사님(안토니오 델 주디체 대주교)이 나를 찾는 이유를 궁금 해하
면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차창 너머에는 겨울잠에 빠져 있는 들
판을 깨우는 3월 초순의 봄 기운이 완연했다. 성무 일 도서를 펴고 그
날 독서를 읽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
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
났다."(창세 12,1-4)
그 때만 해도 라틴어로 성무일도를 바쳤다. 라틴어 실력이 부족해 평소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이 많았는데 유독 그 날 복음만은 가슴에 콕 박히
듯 와 닿았다. 그 때 불연 듯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대목이 내게 무슨 암시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한동안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교황대사관에 도착했더니 대사님
은 단도 직입으로 말씀을 꺼내셨다.
"김 신부, 부산교구에서 마산지방을 떼어 새 교구를 설립하기로 결정됐
네. 그리고 교황님이 자네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하셨어. 물론 주교로
도 임명하시고."
"예?"
"순명 하겠는가? … 난 자네가 순명 할 거라고 믿네."
"……"
"그럼 순명 하는 걸로 알겠네. 축하하네, 김 주교."
난 뜻밖의 통보에 어리둥절했다. 대구에서 안동이 분할될 것이라는 소문
이 돌기는 했지만 마산이 먼저 분할되고, 더구나 그 교구 책임자로 내가
지목될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안동교구 분할과 새 주교 탄생 소문이 돌 때 신부들 사이에서 한
동안 내 이름이 거명 됐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바람처럼 떠도는
풍문인 데다 신문사 일이 바빠서 그런 풍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당신은 주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듣기
는 들었다. 사제 품을 받고 보름쯤 지났던가, 어떤 할머니가 찾아와 "당
신은 이 다음에 주교가 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언젠가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님을 모시고 독일 뮌헨 교구장님을
방문했을 때도 그 쪽 비서신부가 "당신 얼마 후에 주교됩니까? 그때 내
게 초대장을 보내 주세요"하고 명함을 내민 적이 있다. 주교 임명통보를
받고 나서야 서 주교님이 그 전부터 말씀 중에 몇 번 암시를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주교직을 어떤 마음으로 수락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야훼
의 부르심에 응답한 아브라함처럼 순명 하겠다는 마음 외에 무엇이 또
있었겠는가.?
아무튼 사제품을 받은 지 15년 만에 또 다른 성직의 길로 들어서게 됐
다. 주위에서 주교서품식 날짜를 빨리 잡으라고 재촉했지만 난 최대한
늦춰서 5월31일로 결정했다. 신설 교구라서 아무 준비도 할 수 없을 텐
데 내가 주교 품을 받겠다고 서둘러 가면 신부와 신자들이 적잖이 당황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15)에 사제로 태어났듯이 5월
'성모 성월', 그것도 마지막 날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지금은 1월1
일로 이동)에 주교로 태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모님처럼 예수님이
가신 길을 고통 속에서 묵묵히 뒤따르는 것이 성직자의 길이지 않니
겠는가.
주교직 사목표어는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라고 정했다. 나는 성혈축성 경문에서 인용한 이 문구를 무
척 사랑한다. 그래서 훗날 서울대 교구장 좌에 착좌할 때도 '너희와 모
든 이를 위하여'라고 해석을 조금 고쳐서 그대로 사용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내 몸과 피
를 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
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체성사는 신비로 가득 찬 미사 성제(聖祭)의
핵심이며, 그리스도 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
교회의 영적 전 재산이 거룩한 성체 안에 내포되어 있다"(사제교령 제5
항)고까지 가르치고 있다.
신앙인의 삶이란 게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무시할 때 "저 사람은 우리 밥이야!" 라는 표현을 쓴다.
주님은 그 정도로 당신을 낮추고 비우면서까지 우리 밥이 되어 주셨다.
나 역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이에게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표어대로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표어는 당시 어떤 수녀님이 권해준 것
이다.
외가가 있던 마산은 소년 시절부터 자주 가본 고장이다. 그 때 외가를
오가면서 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누군가가 나한테 살고 싶은
고장을 물으면 마산하고 남해를 꼽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랬
는지 마산으로 이삿짐을 옮기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1966년 5월31일 완월동 성지 여중고 운동장에서 교황대사님 주례로 주
교서품식이 거행됐다.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전날 일기예보와 달리 날
씨가 무척 화창했다. 전국 주교님들이 다 참석하시고, 내외 빈이 운동장
을 가득 메웠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국회의장, 도지사, 군사령관 등이
탄 차량을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인도하는 바람에 마산 시내가
들썩였다고 한다.
난 그 날 취임사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 회 정신을 강조했다.
"우리 교구는 제2차 바티칸 공의 회에서 제시한 쇄신정신과 사목정신을
최선을 다해 신부들과 수도자, 신자들의 협동 하에 구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요청을 우리가 확신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빛
아래 깊이 반성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밖으로부터 도움을 기대
하지 말고 우리 안에서 사도적 인재도, 물질적 면도 스스로 발굴하고
육성시키는 방향으로 완전히 생각부터 바꿔야 할 것입니다."
신자수 3만명,본당 21개의 시골 교구 교구 장 생활이 드디어 시작됐다.
<계 속>
[평화신문, 제736호(2003년 8월 10일),김원철 기자]
[편집 : 원 요아킴]
갈멜 수도회 수도자들의 삶을 노래한/故 최민순 신부님의 아름다운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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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에 쉬어 갑니다.감사합니다.행복으로 가득한 멋진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