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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100% 가짜라고 주장하는 노우호 목사 반박
헤세드 | 2016.08.16 13:13 | 조회 1470
오늘의 교회에서 하는 방언은 100% 가짜일까? 그리고 이 중에는 귀신방언도 있는 것일까? 경남산청의 샤론교회 담임이자, 에스라하우스의 대표 노우호 목사는 최근 몇 년간 이러한 문제를 들고 나왔다. 2014년 12월 부터는 아예 공개적으로 방언문제를 거론하면서 페이스북이나 유투브를 장식한다. 크리스챤 투데이에 올려진 글에 따르면
“에스라 성경강좌로 유명한 노우호 목사가 한국교회의 방언은 100% 거짓방언이며 악령운동이고 방언을 부추기는 목회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며 ‘방언을 검증하자’는 도전장을 당차게 내밀었다. 노우호 목사가 최근 출판한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에서 ‘분명한 것은 현대 교회의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방언과 다르다는 것이다. 분별력이 없는 목회자들이 현대교회에 침투한 방언을 맹목적으로 성령의 은사로만 알고 본인들이 사모하고 있고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선동을 하고 있다.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에서는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고 주장한 것. 노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교회의 신비주의는 오순절 운동이 아니라 고린도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악령의 기만이었다. 방언운동은 성령의 운동이 아니라 악령운동이며 방언기도는 자기의 영의 기도가 아니라 악령이 성령을 가장하여 사람들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의 기도를 훼방하여 온 것이었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러한 방언 문제로 노 목사는 장로회 통합측에 사과를 하고 극단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일단락되어 보이지만 이미 그의 주장은 SNS와 TV를 통해서 알려질대로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곳곳에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노 목사는 1977년부터 초교파적으로 성경통독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적어도 성경통독을 280독 이상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 성경통독세미나를 다녀가신 사람들도 적어도 5천명 이상은 되고,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로 가입된 목사들만 해도 5천명이 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러한 주장은 한국교회에서 매우 심각한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노우호 목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방언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고전14:2)이라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것은 다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에 대해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을 증언할만한 성경구절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거나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방언 즉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A.D.55년 이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짜였으니까 바울이 그것을 교정해줌으로써 그후 가짜방언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에 들어와 갑자기 나타난 방언은 다 가짜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 가운데 약 1,500~1,700년 동안 방언이 없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언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갑자기 등장하는 방언은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욱더 방언은 믿을 수 없고 틀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그분의 여러 편의 동영상을 보면, 그분의 주장은 확고하기만 하다. 이단소리를 들어도 괜찮고,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변론하겠다는 마음 같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주장을 살펴보며 반론을 펴 보자. 그는
첫째, 성경에서 방언이 실제적으로 교회 가운데 나타났던 것은 네 가지 경우 밖에 없다. 예루살렘교회(행2장)와 고넬료가정(행10-11장). 그리고 에베소교회(행19장)와 고린도교회(고전12-14장). 그런데 이 교회들 중에서 앞의 3개 교회는 진짜 방언을 했지만, 고린도교회는 가짜방언을 했다는 것이다. 즉 앞의 3개 교회의 방언은 사람이 분명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서 지방 언어 즉 외국어 방언를 말했지만, 고린도교회에서 나타난 방언은 가짜방언이었기에 바울의 교정편지를 받고 또한 디도의 방문을 통해서 방언을 그쳐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의 의미의 방언은 외국어 방언으로서 예루살렘교회, 고넬료 가정, 에베소 교회 뿐이었고 그 뒤로 방언의 역사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말, 방언의 역사가 초대교회를 끝으로 그쳐버린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방언의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고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성경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둘째는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먼저 성경적인 고찰부터 해 보자.
무엇보다도 사도바울은 방언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고전13:8-12]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먼저 8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예언들도 폐할 날이 있을 것이고 방언들과 지식들도 폐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때는 언제인가? 그 때는 12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 대하여 보게 될 날이다. 그때는 바로 주님의 재림의 때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방언도 그치지 아니할 것이고, 예언도 그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방언에 대해 역사적인 고찰을 해 보자. 노 목사는 A.D.55년 이후에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쳤다고 주장하시는데, 그 명확한 근거가 과연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방언으로 기도 안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노 목사는 A.D.55년경 고린도에 와서 기록한 로마서를 보면, 거기에는 방언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헛소리 방언은 고린도교회를 끝으로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언급을 안 했다고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실 로마서 12장을 보면,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은사들 대부분이 빠져 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들, 능력들 행함들, 영들 분별함들, 방언들, 방언들 통역함이 빠져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9가지 은사들 중에서 오직 예언의 은사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이런 은사들을 거기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러한 은사는 다 중지되었고 없어진 것인가?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역사상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아 그것을 숨긴 채 개인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없는가?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때가 있지 않았는가? 한 때 장로교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지만,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교회가 허락하지 않았기에, 혼자서 방언으로 기도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니 문서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고 방언이 없었다고 단정하거나 방언이 그쳐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처럼 말세에는 모든 육체(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줄 터인데, 그때에는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성령을 부어줄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말세지말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더 은사를 많이 부어주시는 것은 아닐까?
둘째, 무엇보다도 방언이라고 번역된 단어 단수명사 '글로싸(tongue=혀)'는 오직 고린도전서 14장에서만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도 하나님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기에 그 방언은 가짜방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과 14장에 복수로 등장하는 '방언들(글로싸이스=혀들)'은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예루살렘교회와 고넬료가정과 에베소교회에 나타난 방언들도 다 '방언들'이라는 복수이기에, 그 방언은 다 사람이 듣고 알아들을 있는 지방언어 즉 외국어였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도행전과 복수로 등장하는 방언이라는 단어는 전부 다 외국어방언을 가리키는 것일까?
결론부터 적는다면, 방언이 단수(글로싸)로 쓰이거나 복수(글로싸이스)로 쓰인 것은 그 방언을 말하는 주체가 단수일 때에는 단수로 쓰였고, 복수일 때에는 복수로 쓰인 것인 것 뿐이다. 방언이라는 단어가 복수로 나온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외국어라고 결코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방언(글로싸)이라는 단어의 뜻은 그냥 '혀'라는 뜻으로서, 혀가 행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방언(글로싸)이 꼭 어떤 언어이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혀로 말하는 것이면 된다.
성경에 나온 용례를 살펴보자. 먼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의 방언은 어떠했을까?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글로싸'의 복수형, tongues)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디아레크토', speech)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디아레크토)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행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글로싸'의 복수형)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예루살렘교회의 방언은 외국어방언인 것 같다. 왜냐하면 적어도 15개 나라의 언어로 들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 누가는 이때 터진 방언을 일반적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으로 사용하는 헬라어 단어 '글로싸(GLOSSA)'의 복수형(글로싸이스)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냥 언어나 말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즉 '디아레크토( =speech)'를 의도적으로 쓴 것 같다. (아니면 각 나라 언어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방언을 했는데, 듣는 입장에서 나라 언어로 성령께서 기적적으로 들려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11장에 나오는 고넬료가정에 모인 사람들이 행한 방언이나 19장의 에베소교회가 행한 방언 그리고 고전12,13,14장에 나오는 방언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디아레크토'라는 단어가 쓰인 적이 없다. 여기를 보면, 전부 다 '글로싸( =tongue, 혀)'로써 단수 형태이든지 혹은 '글로싸이스( =tongues, 혀들)'의 복수 형태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예루살렘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교회에서는 전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10:46] 이는 (그들이) 방언('글로싸'의 복수형)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에베소교회의 방언은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방언('글로싸'의 복수형)도 하고 (그들이) 예언도 하니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고전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글로싸'의 복수형)을 말하는 것이라
[고전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글로싸'의 복수형)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글로싸'의 복수형)과 천사의 말( '글로싸'의 복수형)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글로싸'의 복수형)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14:2] 방언(글로싸, 단수)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14:4] 방언(글로싸, 단수)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글로싸'의 복수형)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전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글로싸'의 복수형)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글로싸, 단수)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글로싸, 단수)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원문은 '방언' 안에서, 단수구문)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14:22] 그러므로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고전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글로싸, 단수)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14:27] 만일 누가 방언(글로싸, 단수)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글로싸'의 복수형)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만약 여기서 노 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복수형태의 방언(글로싸이스)이라는 단어를 전부 '외국어들'이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번역해보자. 얼마나 우스운 번역이 되는지를 보라.
[고전14:22] 그러므로 외국어들('글로싸'의 복수형)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이 문장을 보라. 외국어들을 말하게 되면, 그 사람은 무조건 성령의 표적을 가진 사람이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세상에는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아도 외국어 2개 3개쯤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외국어들을 말하면, 그 사람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또 한 문장을 보자.
[고전14:5] 나는 너희가 다 외국어('글로싸'의 복수형)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외국어('글로싸'의 복수형)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지금, 고전13장과 14장은 고전12장에 나오는 성령의 나타나심 9가지들 가운데 예언과 방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장들이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외국어를 말하기를 원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가서 외국어들을 공부하라는 말인가? 지금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논하고 있다. 여기에 어디 외국어가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부분도 다만 주어가 복수이기 때문에, 바울은 '글로싸'의 복수형태인 방언들(글로싸이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더욱이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은 일본어성경과 더불어, 보는 이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는 오역된 부분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방언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문장에서 오역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고전14장 2절과 4절과 14절이 분명한 오역이라고 말한다.
정말, 방언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이 오역일까?
결론부터 적는다면 한글성경에 다소 미흡한 번역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번역하고 있다. 오히려 노 목사의 새롭게 번역하는 성경본문이 더 성경의 뜻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먼저 개역개정판이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는 이 본문은 원어로 이렇게 직역하면서, 문제는 개역개정한글성경에 나오는 "하나니"가 오역이라고 했다. 그것은 "하나니"라고 번역할 것이 아니라 "한다고 하지만"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고전14:2은 부정적인 본문으로 번역해야 했어야 했는데 그만 번역하는 사람들이 긍정문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방언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역접접속사(그러나)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번역해야 할 본문에 그것을 빼버려서 오역이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그의 해설을 따라서 다시 직역해보자.
[고전14:2]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말을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한다고 하지만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해석하면 사람들을 오히려 혼란케 만들고 속이게 된다
첫댓글 수능 국어 시험볼때 난이도 높은 문제를 풀때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표면의 글귀만 보고 답을 하면 틀린답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시대상황 ,교회상황, 주변정황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현대의 상황으로 글귀만 보고 답을 하면 랄러라라 가 방언이다라는 답이 나오는데 해석능력 부족이거나 무대포로 라랄ㄹ라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지요
악령이 속임에 넘어가면 지옥행입니다
영어 토플시험이나 알츠(IELTS)시험의 Reading 시험을 보면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영어단어만 보고 답을 하면 100% 틀린답을 고르죠
내생각엔 이게 딱 맞는 답 같은데 틀렸단 말이죠
왜 내가 고른 답이 틀리고 다른답이 정답인지도 이해가 안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찰자 앞에서 말한것 체험도 없고 이해도 못하고
외국어.통역 공부한것이.은사라는 분이 참 말은 많이 하시네요.
@관찰자 그리고 전 룰루랄라 옹호 안함니다.
시람이 그냥 말을 소리내서 할 수 있으면 소리 안내고 혀만 움직여 말할 수 있듯이 방언도 소리내어 방언할 수 있고 또 소리 안내고 혼자 혀만 움직여 방언할 수 있습니다. 이말을 체험한적없고 이해 못하면 당신은 방언에 대해 바울이 말한 영적인 무식자입니다. 이댓글 계속 달아 드릴게요
@진실은이것 고전 14: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아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방언의 목적)
@관찰자 방언의 진짜 목적..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14:3,4
영적으로 무식하면 조용히 사세요
@진실은이것 시람이 그냥 말을 소리내서 할 수 있으면 소리 안내고 혀만 움직여 말할 수 있듯이 방언도 소리내어 방언할 수 있고 또 소리 안내고 혼자 혀만 움직여 방언할 수 있습니다. 이말을 체험한적없고 이해 못하면 당신은 방언에 대해 바울이 말한 영적인 무식자입니다. 이댓글 계속 달아 드릴게요
@진실은이것 헬라어 원문에는 덕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고
예언(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나니
자신을 세우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교회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글성경의 번역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기본은 문맥을 따라 문자적 해석이 기본이며 또한 그 문맥 속에서 상징과 비유를 해석해야됩니다.
문맥을 무시한채 구절만 따서 하면 엉터리 성경해석이 나옵니다.
@harpazo 방언은 자기를 세운다 이렇게 번역한들 무슨 문제입니까 자신도 바로세우지 못하면서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진실은이것 자신을 성장시킨다. 현대어성경 번역..새번역은 자신에게 덕을 끼친다...동일 번역 뭐가 문제입니까 덕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의역이 된거죠
@진실은이것 자기를 바로 세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방언의 목적은 믿는 자를 위함이 아니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함 입니다.
로마의 박해속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빨리 전파되어야 하는데 외국어를 모르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그 때 당시 각족속의 언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전파를 위한 확실한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서 방언(각각의 외국어)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방언이 없었다면 각족속의 언어를 배우는데만 최소 2년이상 시간을 허비했을 것입니다.
솔직히 외국어 배우기 정말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harpazo 자기를 세운다는 말이.자신을 잘못세운다는 말인가요. 방언과 예언 두단어가 쓰인 문맥을 보세요. 아무튼 딴지 열심히 거시네
@harpazo 그리고 외국인 목사님중에 방언으로 한국말 한마디 한분이 계시더군요. 그런데 이분역시 지금 한국에 왔지만 한국어 잘못합니다.
정말 무식하시네 영으로 한말을 혼이 아무때나
한국말을 사용가능하냐 전혀 불가능 합니다.
볶음전파위해 외국말을 주신거다 이건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진실은이것 성경어디에 방언을 받아서 자유롭게 복음전파했다는 말이 있습니까. 사도행전2장에 잠깐 나온것 말고는 전혀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외국에서 살아서 외국어 알고 선교사를 할수 있었던 겁니다.
@진실은이것 성경은 고사하고 디다케문서에도 없는말 하지 마세요
@진실은이것 전 댓글 논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논쟁이나 딴지를 걸 목적으로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전 제가 아는 사실을 전했을 뿐 이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우리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논쟁하겠습니까
암튼 전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보시겠죠.
암튼 그 분들도 댓글을 보시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harpazo 시람이 그냥 말을 소리내서 할 수 있으면 소리 안내고 혀만 움직여 말할 수 있듯이 방언도 소리내어 방언할 수 있고 또 소리 안내고 혼자 혀만 움직여 방언할 수 있습니다. 이말을 체험한적없고 이해 못하면 당신은 방언에 대해 바울이 말한 영적인 무식자입니다. 이댓글 계속 달아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