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여, 이 詩만 남았다_고형렬(1954 ~ )
졸짱붕알을 달고 명태들 먼 샛바다 밖으로 휘파람 불며 빠져
나간다 덕장 밑 잔설에 새파란 나생이¹ 솟아나올 때 바람 불면
아들이랑 하늘 쳐다보며 황태 두 코다리 잡아당겨 망치로 머리
허리 꼬리 퍽퍽 두드려 울타리 밑에 짚불 놓아 연기 피우며 두
마리 불에 구워 먹던 2월 어느 날
개학날도 다가오고 나는 오늘을 안 듯 눈구덩이 설악으로 끌
려가는 해를 무연히² 바라보다 오만 데 바다로 눈길 준 지 잠시
인 걸 엊그제 속초 설 쇠고 오다 미시령 삼거리서 사온 누렁이
두 마리 돌로 두드려 혼자 뜯어 먹자니, 내 나이보다 아래가
되신 선친이 불현듯 생각나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
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
설수³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
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
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
워 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
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새 2월은 그렇게 왔
다 가서 이 시詩만 이렇게 남았다
[2006년 발표 시집 「밤 미시령」에 수록]
¹나생이: 냉이 방언(강원, 경북)
²무연憮然히: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하게.
³납설수臘雪水: 납일(臘日⁴)에 내린 눈이 녹은 물. 살충과 해독약으로 씀.
⁴臘日: 민간이나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
동지 뒤 셋째 미일(未日).
"이것도 노래라고 발표하나..."
1952년 초연 당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던 曲였습니다만. ㅎ
《명태, 明太》
양명문(1913-1985) 詩, 변훈(1926-2000) 1951년(25세) 작곡,
바리톤 오현명(1924-2009) 노래입니다.
https://youtu.be/txMl5JZlDQY
첫댓글 ㅎㅎ
안녕하세요
멋진 시와
'명태'
잘 감상했습니다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요 詩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명태, 요 曲을 오현명 님보다 찰지게 부르는
가수는 없는 듯하고요. ㅎ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