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벚나무와 다른 우리 고유종… "상징적인 곳부터 바꿔 심자" 주장 나와
제주왕벚나무
▲ 제주 지역에 자생하는 제주왕벚나무. /제주도
남녘을 시작으로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심에 흔한 화려한 벚나무는 대부분 왕벚나무입니다. 왕벚나무는 다른 벚나무보다 꽃이 크고 꽃자루와 암술대에 털이 있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 왕벚나무 원산지를 놓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100년 이상 논쟁을 벌였습니다. 일본은 왕벚나무 원조가 당연히 일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901년 왕벚나무에 처음 학명을 붙인 것도 일본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1908년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됐습니다. 그 후 한국 학자들은 왕벚나무가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학자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일본에서 자생하고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두 나무는 외관상으로는 겨울눈에 털이 많고 적은 차이가 있을 뿐 매우 비슷합니다.
그런데 2018년 국립수목원 주도로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제주도와 일본의 왕벚나무는 다른 종으로 밝혀졌습니다. 제주도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母系)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가 부계(父系)인 자연 교잡종인 반면, 일본 왕벚나무는 모계가 올벚나무임은 같지만 부계가 일본 고유종인 오오시마벚나무로 밝혀진 것입니다. 한일 간 110년 왕벚나무 원조 논쟁은 이렇게 좀 싱겁게 끝났습니다.
두 나무가 다른 나무임이 밝혀졌으니 어느 것을 '왕벚나무'로 부를 것이냐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심은 왕벚나무 대부분이 일본 원산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국립수목원은 일본 왕벚나무 이름은 그대로 두고, 제주도 왕벚나무에 '제주왕벚나무'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본 왕벚나무를 '일본왕벚나무', 제주 왕벚나무를 그냥 '왕벚나무'라고 부르고 싶지만 전국 150만그루가 넘는 왕벚나무 가로수를 일본왕벚나무로 불러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제주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도조차 가로수로 심은 나무가 대부분 그냥 왕벚나무입니다. 제주도는 2020년부터 점진적으로 기존 왕벚나무를 제주왕벚나무로 바꿔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주왕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만큼 키우는 데 적어도 7~10년이 걸리기 때문에 제주왕벚나무 가로수길을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국회나 현충원 같은 상징적인 곳부터 제주왕벚나무로 교체하자는 운동도 진행 중입니다. 왕벚나무 자연 수명이 50년 정도이므로 교체할 때 서서히 제주왕벚나무를 심자는 것입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므로 앞으로 제주왕벚나무가 점차 늘어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도 제주왕벚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마곡 서울식물원은 제주왕벚나무를 100여 그루 심어 자생왕벚나무원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아직 나무들이 어리긴 하지만 벚꽃이 필 때에 맞추어 가면 토종 왕벚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