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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여행] 오랜만에 찾은 오동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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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동도!. 사랑과 동백꽃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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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몇 년 만인가? 10여년도 훨씬 넘은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오동도다. 3번째 방문인가? 가물가
물할 정도로의 시간이 흘렀다. 오동도는 여수의 중심가에서 약 10분쯤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오동
도 입구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하는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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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만큼 운치가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
다는 점이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꽃피는 5월 봄인데도 불구하고 코로나 때문에 망설이다가 떠났던
여수여행. 그러나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다그침에 2틀만에 돌아왔다가 어느정도 코로나가 진정되고
생활거리두기 방식으로 전환된 시점에 다시 떠난 여수여행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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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약 5일 정도의 일정을 두고 떠난터라 조금은 여유 의 시간이 있었던 터였다. 5월 둘째주 월요
일 서울에서 새벽 5시 30분 출발~ 10시 30분도착 오전나절 인데도 불구하고 남쪽나라 여수의 날씨는
여전히 변함없이 낮선 방문객을 맞이해 주며 따스한 품안에 안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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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한 곳은 오동도!. 오동도 하면 동백꽃이다. 오늘 일정의 1번 코스다.
입구에 도착한 유랑자는 먼저 한가로운 방파제를 맞이한다. 월요일인 만큼 당연한 일, 이래서 유랑자
는 항상 여행을 주말이 아닌 평일을 선택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대신 유랑자는 주말이면 열심히 일을
한다. 남들 놀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떠나는 여행. 이것이 유랑자가 사는 법이자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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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 속한 섬. 오동도는 여수시 동남단에 조성된 신항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1935년에 준공된 연장 1,213m(동쪽 445m, 서쪽 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싱그러운 봄
날씨속에 바다는 잔잔한 파도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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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오가는 장난감 같은 관광동백열차는 객석이 텅 빈채로 활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유랑자는 비
릿한 바다 내음을 잔뜩 머금은 바람 과 봄 내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방파제 길을 걷는다. 방파제 길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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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파제를 길로 만들면서 보행인 의 안전을 위해 벽을 만들었을 터이고 벽면에는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들 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군상들의 삶까지 재미있게 조각으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어떤
것은 벽면에 직접 그림으로 그린 것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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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오동도에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 전설도 소개되어 있었다. 오동도는 멀리서 볼 때 마치 오동
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여 '오동도'라 했다. 하나 지금은 오동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일명 해장죽(海藏竹)이라는 시누대가 섬 전체에 자생하여 죽도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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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청명하다못해 눈이 시립도록 푸르다. 봄인가 싶을 정도
로....남쪽 바닷 바람은 수증기 먹은 바람이라 조금은 끈적함이 묻어있다. 방파제를 따라 양 옆으로
바다가 있고. 정면에는 오동도 후면에는 오동도를 조망할수 있는 일출정이 있어 이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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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에서 바라보는 오동도는 섬 전체가 높이 10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지를 이룬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소라바위·병풍바위·지붕바위·코끼리바위·용굴 등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
고 있다. 온난하고 비가 많은 지역으로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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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있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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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신이대나무·후박나무·예덕나무·광나무·돈나무 등 총 193종의 수목이 자란다. 특히 동백나
무 3,000여 그루가 군락지를 이루어,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붉은 동백꽃이 절정을 이
루며 만개하는데 이 시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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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동백꽃을 이야기하자면 항상 가장 먼저가 여수 오동도다. 특히 이곳은 오동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자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향일암과 더불어 한려수도 서쪽 관광루트의 시작점이 되
고 있음이 여수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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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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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들어서면 방파제 끝에서 중앙광장으로 연결된 큰길 옆 우측으로 오동도 정상으로 오르는 피톤
치드 가득한 산책로 가 나있다. 오동도의 생김새와 겨울이면 붉게 핀 동백꽃에 관한 전설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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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고려 후기 창녕 옥천사에서 심부름하던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신돈(辛
旽)[?~1371]은 공민왕의 사부가 된다. 왕의 신임을 등에 업은 신돈은 진평후라는 봉작까지 받으며
기울어 가는 고려왕조를 재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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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왕권에 도전하는 일에는 가만있지 않았다. 어느날 신돈은 오동나무가 무성한 오동도에 여수
의 봉산, 봉계, 구봉산, 쌍봉, 비봉, 금봉산 등에서 사는 봉황새가 자주 드나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는 불길한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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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임금을 상징하는 새인 터라, 그 새가 오동도에 드나드니 여기에서 새로운 임금이 나올지도 모
르기 때문이었다. 또, 오동도는 전라도에 있고, 전라도의 전(全)자에는 임금 왕(王) 위에 들어 있는 글
자이니 신돈의 뇌리에는 혹시 오동도에서 임금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신돈은 오동도에 다시는 봉황이 들지 못하도록 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 내었더니 봉황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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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던 분수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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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돈의 개혁 정치에도 고려는 허망하게 이성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이때, 고려 유신의 한 부부가
오동도로 귀양을 왔다. 그 부부는 땅을 개간하고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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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도둑이 들었다. 혼자 집안일을 하던 아내는 재물을 빼앗기고
떨고 있었다. 급기야 도둑은 아내의 몸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도둑이 허튼짓을 하는 사이, 어부의
아내는 도둑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방향으로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그러나 끝내 붙잡히려 하자 이내 벼랑 절벽에서 창파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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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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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 무렵,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남편은 피를 흘린 채 물에 떠있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
린 아내를 발견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된 남편은 슬픔에잠겨 있다가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정
성을 다해 오동도의 정상에다 아내의 무덤을 정성껏 만들어 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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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나서 북풍 한설이 내리는 그 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그 무덤에는 여인의 선혈처럼
붉은색의 동백이 피어났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동백꽃은 여인의 마음을 상징하여 눈보라 속에서
도 붉은 꽃을 피우기 때문에 `여심화(女心花)‘ 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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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꽃잎이 벚꽃처럼 날리지도 않고 장미처럼 시들지도 않는다. 마치 절개를 지키는 것처럼 꽃
잎이 지기 전 가장 화려할때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동백꽃 떨어지는 것을 여인의 눈
물과 비유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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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의 꽃말은 : 기다림. 그대만을 사랑해, 애타는 사랑. 매력, 겸손한 마음으로 자랑, 당신은 내
마음의 불꽃, 고결한사랑 등등으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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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죽(海藏竹)이라는 시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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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시누대가 자라났다고 한다. 이 시누대 때문에 죽도(竹島)라 불렀다는 이
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 시누대로 화살촉을 만들었다고 한다. 암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
오동도 하면 사랑의 섬으로도 불리는 이유가 아닌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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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까. 사랑을 속삮이는 젊은 청춘들뿐만 아니라 아베크 족들은 오동도를 방문하면 사랑의 언
약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오동도 전설]은 지형의 생김
새와 현재 오동도에서 자라는 식물 의 군락 때문에 이야기꾼들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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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오동도는 동백나무숲이 빼곡한 야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조성된 광장의 들머리에는 큰 비가 하
나가 서있는데 이는 성웅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다.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있을 수 없다'라는 뜾을가진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말을 새긴 커다란 돌 비석이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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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섬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 연병장으로 이용되었으며, 당시 이순신 장군이 신이대나무로 화살
을 만들어 10만 여 명의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여수시박물관을 비롯하여 동백림·죽림 등의 식물경
관과 기암절벽의 해안경치 및 해돋이 광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1968년 일찍이 한려해상국립공
원의 일부로 지정되었고, 1969년 국유지에서 시유지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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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남단에 오동도 등대가 있으며, 관리사무소와 교통부의 표지기지창이 있다. 면적 0.13㎢, 해안선길
이 14㎞.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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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백꽃의 전설
암튼 동백꽃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나보다. 자존심 강한 꽃이라 하여 유랑자가 좋아하는 꽃중 하나
인 동백꽃!. 겨울이면 생각나는 게 있다. 추운 겨울에도 피는 동백꽃이 있어서다 동백꽃은 버릴게 없
다. 꽃잎은 말려서 차로 마시고 열매는 기름을 짜 가구에 윤기를 내는 데는 물론 아토피 피부병 치료
제로도 쓰이고 식용유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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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것은 동백꽃 곁에는 동박새가 있는데 이들에게도 사연이 있다. 옛날 어느나라에 폭군이 있
었는데 그에게는 착하고 어진 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 폭군은 후사가 없어 동생의 자식들인 조카에
게 대를 이어주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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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조카들을 죽일 계획만 하고 있던 차, 이를 눈치챈 동생이 자기 아들은 감추워 놓
고 다른 두아들을 양자로 키웠는데 어느날 왕은 그 양자를 모두 죽여버렸다, 그런데 이 사실이 탄로나
자 폭군은 동생 과 조카들을 궁으로 잡아 놓고는 "네가 저 아이들을 네손으로 죽여라"고 하자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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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체념하고는 칼로 자결해 버렸고 두 아들은 폭군의 손에 죽어갔다,
동생이 죽은 자리에 자라 꽃을 피운게 동백꽃이고 그래서 꽃잎이 피빛인 붉은 색을 띤다고 한다. 죽은
두 아이는 새가 되어 동백나무곁을 떠나지 않고 동백나무를 지키게 되었는데 그새가 바로 동박새, 원
래 동백꽃은 겨울이나 이른 봄에 핀다. 벌이나 나비가 없는 계절이어서 꽃을 피우기가 어려운 데도
동박새는 수분을 돕고 동백씨를 먹어 널리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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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휴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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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백꽃에 얽힌 전설 2를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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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서해안의 대청도라는 섬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한 청
년이 파도에 휩쓸려 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간호를 해 준 대청도 처녀
덕분에 기력을 차리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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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처녀와 결혼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지내던
중 밤이면 꿈 속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이는지라 걱정이 돼서 고향에 다녀오기로 하고 아내에
게..... "꿈속에 부모님이 자주 보여 몹시 걱정이오! 금방 다녀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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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런데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고향에 동백꽃이 많다는 말을 들
은 아내는 고향에서 돌아올 때 동백꽃 씨앗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동백 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머리를
남편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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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속을 하고 떠난 남편은 날이가고 달이가 해가 바뀌어도 돌아 오지를 않았고 동네 사람들은
그가 고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 거라고 수군거렸답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믿고 기다렸다.
아내는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로 나가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오늘 오는가,
내일 오는가, 오지 못하면 소식이나 오는가, 기별이나 오는가, 꿈에라도 오는가 노래를 부르며 슬픔
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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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결국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이윽고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남
편은 부모님만 두고 떠나 올 수 없어서 하루 이틀 미루다가 2년 만에 동백 꽃씨를 주머니 가득 담아 가
지고 대청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내가 불과 열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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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했다. 남편이 무덤에 엎드리자 주머니에 있던 동백꽃 씨앗이 후두
둑 떨어졌다. 이듬해 아내의 무덤가에는 동백나무가 싹을 틔웠고. 그 나무에서 아내의 그리움을 토
해 내기라도 하듯이 해마다 이른 봄이면 붉디붉은 빨간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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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동백 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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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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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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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보고 있어욤!!
아이구 감사 합니다.
저의 졸필이 님께 어떻게 비춰질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아마추어의 있는그대로 보아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코로나19 조심 하시구요..
완전 자세하네요 잘봤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것이 유랑자만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다른분들 눈에는
성에 차지않는 그런 졸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애교쯤으로 보아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