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지에 오줌을 싸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쓰고, 자꾸 동생을 때리는 아이 때문에 한번쯤 속을 태운 적이 있을 터. 아이가 갑자기 이러한 이상 행동을 보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몸은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갑작스런 환경 변화나 외부 요인에 의한 자극에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스트레스라고 통칭한다. 스트레스(Stress)는 오스트리아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 박사가 1936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동식물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동생이 태어나거나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가고 새롭게 단체생활을 하는 등의 환경적 변화부터 부모와의 관계, 과도한 학습 등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도 매우 다양하다. 육아전문가이자 <아이의 스트레스> 저자인 오은영 박사는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봐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속마음을 표현하거나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소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 아이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부모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 이유다.
아이는 언제 스트레스를 받을까?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한다. 분만은 아이가 맨 처음 직면하는 스트레스.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아늑한 환경에 있다가 스스로 산도를 지나 밖으로 나와야 한다. 세상에 나온 뒤에는 낯선 환경과 외부 자극에 수없이 노출된다.
‘성장 발달 과업’으로 인해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도 많다. 돌 무렵 아이는 걸어야 한다는 발달 과업이 있다. 걷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넘어져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다.
아이가 커갈수록 해내야 할 과업은 더욱 늘어난다. 이유식을 먹다가 어른이 먹는 밥을 먹어야 하고 스스로 배변도 해야 한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지만 그 시기를 견뎌야 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환경적인 요인도 매우 크다.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개발된 스트레스 척도 검사지를 보면 부모의 사망이 100점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았고, 부모의 이혼 90점, 동생이 생기는 것 50점, 부모의 취업 26점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처럼 스트레스 요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의 스트레스를 이해하려면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눈높이를 낮추고 아이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에 강한 아이 VS 취약한 아이
우리 몸은 자극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아이의 성격이 모두 다르듯 동일한 자극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있는 반면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다.
외부 자극은 오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예민한 아이들은 그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이 한 번에 받아들이는 외부 자극을 열 번 이상 단계를 나누어 천천히 받아들이게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새 옷을 입지 않으려 한다면 억지로 입히지 말고 눈에 띄는 곳에 며칠 걸어놓고 자연스럽게 오다가다 옷을 한번 만져보게 하는 식으로 단계별로 경험시키라는 것. 또한 이러한 아이인 경우 피부가 맞닿는 스킨십과 다양한 주변의 소리를 들려주는 등 감각놀이를 많이 경험하게 하는 게 좋다.
이때 아이가 새로운 자극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으니 부모도 옆에서 같이 동참할 것.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장 편안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지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아직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기 때문에 대신 행동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갑자기 얼굴을 자주 찡그린다거나 손톱을 물어뜯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볼 것.
아이들은 감정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이나 타인, 물건에 투영시킨다. 정도가 심한 경우 소리를 지르고 장난감을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 과도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아이의 발달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심장이 빨리 뛰고 각성 상태가 되며 두통·복통 등을 호소하거나 신체 일부분을 급격하게 움직이는 틱 증상, 이갈이, 야뇨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세를 방치하면 아이의 발달 수준이 이전 단계로 돌아가거나 학습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엄마는 모르는 스트레스의 비밀
1. 스트레스가 다 나쁜 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나쁘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스트레스에도 부정적 측면뿐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나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우리의 신체를 약간의 긴장 상태로 만들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도록 돕는다는 것. 가령 쥐가 고양이와 마주쳤다고 치자. 심장박동과 혈액순환, 호흡이 빨라지고, 도망치기 위해 신경과 근육이 긴장하게 된다.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몸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외상을 입었을 때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혈소판이나 혈액응고 인자가 증가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셈.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 도파민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는데, 이 도파민은 ‘스트레스성 뇌신경 전달물질’로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하는 데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없애야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동기 부여가 되거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2. 아이의 스트레스가 어른의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하다
미래를 예측해 대비하면 스트레스는 훨씬 적어진다. 전문가들은 흰쥐 동물실험을 그 예로 든다. 바닥에 전기가 통하는 두 곳을 만들어놓고 한쪽 우리에는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사전 경고를 준 뒤 강하고 긴 전기충격을 가하고, 반대쪽 우리에는 아무런 사전 신호 없이 불규칙적지만 조금 약하고 짧은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 결과 흰쥐들은 충격이 강하더라도 미리 예측이 가능한 우리 쪽을 택했다. 다음 번 충격이 올 때까지는 신체를 이완시키며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환경적인 변화를 미리 일러두면 스스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장차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정서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어른처럼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3. 임신 중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된다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 분비가 지나치게 증가해 탯줄이나 양수를 거쳐 태아에게 전달된다. 코르티솔이 많이 전해지면 태아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발육이 저하되며 신경계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김경진 교수팀이 쥐 실험을 통해 임신 중 어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의 뇌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로부터 태어난 쥐와 그렇지 않은 어미에게 태어난 쥐를 비교한 결과 태내에서 어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경험한 새끼 쥐는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신경세포의 활동성이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의 연구팀 또한 임신한 여성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아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가 생물학적 변화를 일으켜 태어난 뒤에도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경고했다.
4. 부모는 아이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 특히 미취학 아동들의 경우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받는다. 환경적 변화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런대로 잘 겪어나가지만 부모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부모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부모 자체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척도 검사를 하면 불안감 지수가 매우 높게 나오는데, 이는 양육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 불안하기 때문에 떠도는 정보에 의존하고 지금 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계속해서 의심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지나치게 채근하다 보니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경우 아이보다 앞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체크해 봐야 한다.
불안감을 버리고 확고한 육아관을 정립한 뒤 아이를 대할 때 일관된 양육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아이를 지탱하는 뿌리인 부모의 마음이 단단해야 거센 바람이 불어 와도 아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아이의 스트레스 현명하게 대처하는 노하우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게 역할놀이다. 인형놀이, 소꿉놀이 등 역할과 상황을 설정해 자유롭게 즐기는 놀이를 통해 아이의 스트레스가 발산될 수 있도록 도울 것.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게 되므로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적당한 신체 활동 또한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 집 안에만 있지말고 아이와 밖에 나가 줄넘기, 공 주고 받기 등 가벼운 운동을 해보자. 함께 뛰어 놀다 보면 스스로 몸 움직임을 조절하고 통제하게 돼 자신감이 생기고 쾌감도 얻을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면 피로감이 쌓여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므로 아이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게 좋다.
Solution 대표적인 스트레스 상황 실전 대처법
대소변 가리기
대소변을 가리는 시기는 성장 속도와 환경에 따라 개인차가 크다. 보통 두 돌이 되면 기저귀 떼기 연습에 들어가고 세 돌까지 대변을, 이후 낮 소변을 가리다가 만 5세가 되면 밤 오줌도 가리는 것이 평균적이다.
하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소변훈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원해야 한다는 것. 대변이 마렵지도 않은데 자꾸 응가를 누라고 하고, 기저귀에 싸는 게 더 편한데 변기 사용을 강요하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상황은 더 악화된다.
시간을 두고 아이를 기다려주되 아이가 실패를 하더라도 부모가 옆에서 응원해주자.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변기에 앉는 훈련을 시키고 오줌 가리기에 성공했을 때는 “예쁘다”, “잘했다”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말 것.
가끔 소변을 못 가린다고 다시 기저귀를 채우는 부모들이 있는데 아이에게 수치심을 줄 뿐 아니라 소변 가리기에 소극적이 되므로 금물이다.
동생의 탄생
맏이에게 동생의 등장은 엄청난 충격.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개발한 스트레스 척도 검사에서도 동생의 탄생으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가 50점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아이는 갑자기 동생을 잘 챙기고, 양보하고, 뒷정리도 잘하는 ‘야무진 아이’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한창 사랑받고 싶은 시기인데 맏이라는 이유로 이런 상황에 처하니 보니 억울하고 속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큰아이가 2~3세라면 소유욕이 강해지는 시기라 엄마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크기 때문에 특히 상처를 받기 쉽다. 그러니 목욕은 반드시 엄마와 둘이서만 하거나 하루 중 잠깐이라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 엄마에게서 채우지 못한 사랑을 대신할 수 있게 할 것.
4세 이상은 독립심과 자아가 생기는 시기이므로 둘째를 보살피고 안아줄 때 첫째도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해보자. 젖을 먹일 때 가제 손수건을 가져오게 하거나, 한 번 조심히 안아보게 하는 것도 좋다. 동생은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도 엄마와 같이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어린이집·유치원
아이들이 등원을 거부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분리불안을 들 수 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본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게다가 자유로운 집과는 달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점도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특히 소극적인 아이나 참는 성향이 강한 아이에게는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의사표현에 서툴다면 선생님과 상담을 해서 특별히 적응하지 못하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볼 것. 그리고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면 크게 칭찬해주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놀게 하는 등 어울릴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는 게 좋다.
또래와의 관계
요즘 엄마들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친구들끼리 자주 어울려 놀게 한다. 장점은 분명 있지만 일부 아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유치원에 갔다 오면 쉬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특히 내향적인 아이들은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에너지를 다시 보충해야 한다. 소유욕이 강해서 자기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과 깔끔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으면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사귈 때 낯을 좀 가리고 쭈뼛거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므로 이런 아이들의 경우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좀 더 중요한 사람, 내가 시간을 할애하고 배려해야 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부부싸움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 아이는 혹여 자신이 버려지진 않을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웬만하면 부모가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지만 만약 아이가 직접 보거나 소리를 들었다면 먼저 물어보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가 설명을 해주자.
“많이 놀랐니?”라고 묻고 만일 아이가 “엄마 아빠 왜 싸워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똑같지 않을 때도 있잖아. 그럴 때는 서로 의논을 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의 의견이 달라서 목소리가 커졌어.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의견이 달라도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란다”라고 이야기해줄 것. 그래야 아이의 불안이 조금이나마 해소된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