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보성-화순 계당산(581m)
국보급 부도를 만나러 가는 호젓한 철쭉 명산
보성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명조망 산행
남도에서 철쭉을 즐기기 위한 산행지로 제암산, 일림산, 삼비산을 꼽는다. 광활한 능선에 핑크빛 양탄자 같은 경관은 레드카펫이 따로 없다. 하지만 유명세로 전국에서 등산객이 몰려 소란스럽다. 반면 보성 계당산은 숨은 철쭉 명소다. 산께나 다녔다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에 있지만, 호남정맥꾼들에겐 숨은 철쭉 명소로 익히 알려져 있다. 3만여㎡의 철쭉군락지는 올해로 6회째 철쭉축제가 열리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계당산 철쭉은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 짙은 선홍빛이 특징이다.
계당산은 산책로 같은 편안함이 장점이다. 주먹만한 돌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이다. 가쁜 숨을 쉬지 않아도 좋을 만큼 고도차가 거의 없는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초보자도 무리없이 오를 수 있다.
계당산은 보성과 화순의 경계에 있다. 예전에는 쌍산, 쌍봉, 쌍치라 불렀다. 400m 이하의 낮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북으로는 무등산, 천운산, 두봉산, 남으로는 봉화산, 군치산, 가지산 등이 있다. 구한말 이곳을 중심으로 왜경에 맞서 의병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거점 가운데 하나인 쌍산의소가 이곳에 있다. 쌍산의소는 숲과 계곡을 담장 삼아 막사 터와 훈련장, 본부 가옥 터, 진영 터가 남아 있는 의병지다.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복내면사무소에서 출발해 전남 화순 쌍봉사까지 가는 단순한 외길이다. 산행기점으로 삼는 복내면은 면사무소 표지석에 '생거복내'라고 표기할 만큼 인심이 후하며 산세가 좋아 살기 좋은 청정지역이다.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다.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국보 제57호 철감선사탑을 품고 있다. 철감선사탑은 8각 원당형에 속하는 신라시대 부도로, 그 시대의 부도 중 최대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대웅전과 철감선사탑비 등 보물 2점이 있다.
복내면사무소에서 우측으로 100m 지점에 있는 복내우체국을 끼고 돈다. 골목 끝까지 가면 이정표가 계속 방향을 안내한다. 들머리 이정표에는 '계당산 정상 4.98km'를 표시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보성군에서 관할하는 지역의 산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점이며, 이정표도 세심하게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계당산 정상을 지나 화순 땅을 밟는 순간부터 쌍봉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이정표는 고사하고 등산로도 방치되어 있어 길이 거칠다. 화순군청에서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표에서 곧바로 잡목숲으로 들어서면 뒷동산 수준의 길이 시작된다. 20여분간 앙상한 벌목지대를 따라 뙤약볕과 그늘이 반복된다. 비탈길이지만 오르막 경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다. 조붓한 오솔길은 묵은 두엄을 밟는 듯한 감촉이다. 숲도 풍성해 햇볕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소씨제각 삼거리에서 임도처럼 넓은 길을 만난다. 정성들여 손질한 잔디밭을 걷는 느낌이다. 20분 가량 숲이 계속 이어지다가 염씨 가족묘를 지나면서부터는 시야가 뚫리고 주변의 작은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술술 실타래가 풀리듯 피로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한 길이다. 굴참나무 사이로 립스틱처럼 붉은 철쭉이 슬슬 모습을 나타낼 즈음이면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꽃 군락이 나타난다. 주변엔 각시붓꽃, 둥굴레 등 야생화와 산야초가 동산을 이루었다.
화순으로 넘어가면 길 거칠어져
나무벤치가 있는 곳에서 20여분을 느긋하게 오르면 몸은 벌써 500m 높이의 능선 안부에 있다. 정상이 580m인 것을 감안하면 여유있게 꼭대기 턱밑까지 온 셈이다.
뻥 뚫려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열린 철쭉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큰 나무들이 없어 조금은 황량한 풍경이다. 철쭉의 촘촘한 뿌리로 인해 다른 수종이 침범하지 못하며 민둥산처럼 보이는 특징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철쭉군락지에는 산행 중 만나는 유일한 바위가 있다. 어른 어깨 높이 정도 크기의 바위에 올라서면 주암호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무등산, 화악산, 개천산 등 이름값을 하는 산들과 남으로 방장산, 존재산, 고동산 등 호남정맥 연봉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잔디구장처럼 넓은 헬기장은 '개기재'에서 이어진 호남정맥과 합류하는 길목이다. 이곳부터 정상까지 400m 구간은 계당산은 찾아야 할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다. 초원지대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분재 수준의 소나무와 철쭉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커다란 봉분 같은 정상에는 키 큰 보리수가 있어 이채롭다. 정상 표지석은 따로 없어도 삼각점과 이정표가 정상임을 알려준다. 동서남북 시야가 막힘없는 장쾌한 풍광이다. '노동'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호남정맥 예재터널과 연결된다. 재차 유념할 것은 하산 예정지인 쌍봉사까지는 3.3km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정표가 전혀 없어 선답자들의 표지기를 잘 살펴야 한다.
아산길은 순식간에 고도가 떨어지며 굴참나무 숲으로 빨려간다. 특징 없는 숲길을 15분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표식도 없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는 지점이다. 언덕으로 올라서지 말고,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내려선다. 30분 정도 콘크리트 포장도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임도만 따라가기에는 조금 지루하다. 길이 크게 꺽이는 코너에서 지름길로 빠지는 입구가 있다.
산악회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는 숲으로 들어서면 사람들 발자국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산길이 뚫렸다. 부산의 지역신문 산행팀에서 표지기를 촘촘하게 걸어놓아 밀림 같은 잡목숲에서 길찾기가 어렵지 않다. 20여분이면 전주이씨 묘를 만나고 숲 사이로 쌍봉사 요사채가 보인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5분이면 쌍봉사다. 독특한 모양의 쌍봉사 대웅전 뒤의 언덕에서 철감선사 부도를 만난다. 1,000년 전 신라 석공이 정으로 방금 쪼아낸 듯 섬세하다.
*산행길잡이
복내면사무소~임도~염씨가족묘~철쭉군락~정상~임도~갈림길~쌍봉사<4시간10분 소요>
*교통
광주광천동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있는 보성행 직통버스를 타면 복내면사무소 정류소까지 1시간30분이면 도착한다. 쌍봉사로 하산할 경우 화순으로 나가는 군내버스가 여의치 않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개인택시(061-852-5533)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택시요금은 12,000원 정도 나온다.
*숙식(지역번호 061)
하산지점 쌍봉사 인근과 복내면 주변은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 다만 화순의 대표 맛집으로꼽는 식당 두 곳이 있다. 능주면의 양지식당(372-1602)은 남도식으로 걸쭉한 추어탕(6,000원)과 살코기외 비계가 조합된 주물럭(2인분 18,000원)이 인기 메뉴다. 화순읍내에 있는 약산흑염소(373-9292)는 이 지역 미식가들의 입맛을 평정한 지 오래다. 삼지구엽주를 곁들이면 보약이 따로 없다. 완도 약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먹인 흑염소로 탕과 전골, 구이 등을 대중화한 원조격 식당이다.
*볼거리
주암호 인근에 갑신정변의 주역이며 항일독립운동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서재필 박사의 기념관이 있다. 서재필기념관에는 독립신문과 당시의 귀중한 자료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한 5분 거리에 최초의 군립미술관인 백민미술관에는 조규일 화백의 작품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 가능하다. 대원사에서 운영하는 티베트박물관에서는 1,000여 점의 희귀한 티베트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허락되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마사도 추천한다.
글쓴이: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