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2 ( 경남 함양 –상림 숲(상림공원))
9월이 가고 10월 중순이 지나고 있건만 가을이라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쉽지 않은 날씨다. 낮이면 에어컨을 켜야 할 만큼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절기가 되면 가끔 들려주는 비 소식은 성큼 성큼 계절을 재촉하기도 한다. 한편 이맘 때 농촌에서는 가을걷이로 하여금 비는 잠시 참아주어야 할 일이건만 주일부터 비가 내린다니 농사꾼들의 걱정도 많아진 모양이다. 일기예보대로 새벽부터 잔비가 내린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약 2Km를 걸어서 귀가해본다. 혹시 낮으로 많은 비가 내려서 계획했던 여행에 차질이 생길지 몰라 운동을 해 둘 참이다. 역시 함양까지 계획했으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건만 여전히 비는 차분히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혹여 함양지역의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비는 내리지 않고 흐리겠다는 예보를 믿고 떠나보기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여행을 하므로 인하여 운동과 마음의 힐링이 되기에 약간 몸이 무겁고 살짝 불편하더라도 거침없이 출발을 한다. 무기력하거나 에너지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운전석에 앉는 순간 금방 생명수를 부은 새싹처럼 살아난다. 마음은 곧 편안해지고 시들해지던 이파리가 팽팽해지는 순간이다. 또한 다녀온 일주일 역시 여행에서 남겨온 맑고 밝은 생명력의 기간이 유지되는가 하면 여행과 더불어 섞인 일상은 삶에 활력이 되곤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고자 하는 여행지는 항상 메모를 해둔다. 지역이 겹치지 않고 경유지를 잘 설정하여 알뜰한 여행이 되기 위해서이다. 어느 해 아들아이와 하미양 와인벨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으로 멀고 번거로웠던 기억이다. 사실 이번 함양투어를 위하여 검색해보니 가볼만한 곳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오늘은 맘먹고 한 번 다녀오려 한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기도 할뿐더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에 자리한 고장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무려 15개에 이르러 산세와 자연환경 그리고 수백 년 전통의 한옥과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 문화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함양 상림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함양 톨게이트를 나가면 바로 함양 읍내에 위치한 상림 숲은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은 천 년을 이어온 나무들의 깊은 정기가 느껴진다. 통일 신라 시대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당시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았고 그 둑을 따라 촘촘하게 나무를 심었다는데 우선 들어서자마자 상림 숲이라기보다 융단처럼 깔린 가을꽃들이 먼저였다. 풍접초, 빅베고니아, 숙근사루비아 ,안젤로니아 등등 꽃 이름을 읽어가며 꽃을 들여다보며 팜파스를 올려다보며 또는 그 도도하던 연꽃마저 저버린 자리마저 풍선한 상림 숲의 초입에서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또한 이번에 새로 장만한 카메라 거치대를 들고 나서니 나와 내가 동행 하는 것이 더욱 든든하다. 거치대를 세워두고 미리 배경을 만들어서 그 속으로 달려가 리모컨을 누르는 사진놀이는 여행 중에 맛보는 또 하나의 달달함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을에 생각나는 색감은 무엇이 있을까. 놓치지 말아야 할 함양의 자연을 느끼기 위해 바삐 걷다가 느긋하게 걷다가 멈추어서 타인의 포즈를 구경하다가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자유함을 만끽하곤 한다. 짧은 가을도 아쉬운데 가을이 주는 매력과 풍경의 변화까지 놓칠 순 없겠다. 초가을에 장관을 이루었을 꽃무릇의 흔적과 그 도도하던 연꽃 저버린 흔적까지 아름답다. 이토록 가을은 참 귀하다. 짧아서 귀하고 좋은 계절이라 귀하다. 슬쩍 왔다가 스르르 사라지고 마는 가을이 이곳 상림에 와서 가을꽃이거나 단풍이 물드는 선명함까지 볼 수 있어서 좋다. 어쩌면 숲의 공기로 하여금 함양의 가을이 부풀어 오르고 이곳 가을볕까지도 거침없이 무르익어 눈부시다. 꽃길을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니 같은 수종의 두 나무가 몸통이 합쳐진 연리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녀의 사랑이 이뤄지고 애정이 두터워진다는 의미를 지니는 연리지와 연리목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상림에는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합쳐진 연리목이 있다. 다른 수종의 나무가 하나 되기까지 긴 시간과 적잖은 수고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연리목을 바라보면서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데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던가 말이다. 수종이 다른 식물도 한 몸이 되어 화합의 의미를 인간에게 선사하는데 하물며 쉽게 만났다가 틀어지면 단박에 돌아서는 요즘사람들의 정서가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생각으로 골똘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서는 곳에 함화루가 있고 함양 최치원 신도비도 볼 수 있다. 숲 주변으로 공연 무대와 음악분수 그리고 함양의 특산물인 산삼을 주제로 한 전시관 등 다채로운 시설들로 볼거리가 풍성하여 차분하면서도 바쁜 마음으로 가슴은 벅차오르듯 초가을 속에서 마냥 행복하다. 사실 계획은 상림 숲을 경유하여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일두 정여창 선생 고택이 있는 개평한옥마을을 사붓이 걸어보고 남계서원과 함화루까지 둘러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 두 방울 떨어지던 가을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멀리 두고 걸어온 길이 아득하여 서둘러야 했다. 꽃길과 숲길 사이에는 예쁜 개울물이 흐르고 풍성하게 피어오른 보랏빛 버들 마편초와 황화코스모스가 촉촉해지는 흔들림으로 점점 무거워 보인다. 아름다운 상림의 숲은11월 쯤 되면 황갈색 가을빛으로 물들 것이다. 단풍이 만개하거나 내년 연꽃이 가득해지면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상림 숲(상림공원) :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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