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은 여인이 악보를 읽다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의상과 값비싼 가구, 멋진 실내 장식이 아니더라도 매우 기품이 있고 우아한 여성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유빛 피부와 단정한 이목구비, 그윽한 눈길, 지적인 인상이 그녀의 고귀한 신분을 앞장서 대변하고 있다.
그림 속의 여인은 그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이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부로서 매우 아름다웠고 교양도 풍부했으며 국정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 명성답게 책과 악보, 그림들에 둘러싸여 지적인 후광을 드러내고 있다.
마담 퐁파두르는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인으로 파리의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잔 푸아송'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음악, 문학 등을 개인 교습 받아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였다.
그녀는 미모와 교양을 무기로 루이 15세에게 접근하여 1745년, 마침내 스물넷의 나이로 그의 정식 애인이 되었다. 왕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부인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왕비의 측근조차 “퐁파두르 부인은 내가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하나”라고 토로할 만큼 외모가 뛰어났지만, 그러한 그녀의 외모보다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씨와 교양, 사고의 깊이가 왕의 총애를 받는 요인이었다.
부셰의 초상화에서 보듯이 우아한 모습의 풍파두르 부인은 상당한 미인임이 틀림없으며 고고한 품격과 교양미가 넘치는 점으로 보아 유럽에서 가장 귀부인다운 귀부인으로 손꼽혔을 만하다. 또한 그녀 옆에 있는 많은 책과 손에 들린 악보가 그녀의 지성과 예술성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는 보수적인 정치가나 신학자들에 의해 백과사전의 판매가 금지되었는데, 진보적인 문학가나 사상가들은 이를 판매하여야 한다고 격론을 벌이던 때였다. 퐁파두르 부인의 기지로 마침내 프랑스에서 백과사전의 판매가 허용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림에서 보이는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여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인데 18세기 초까지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퐁타주형, 즉 머리를 틀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높이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후기에는 머리카락을 부풀리지 않고 뒤로 빗어 넘겨 우아하고 깔끔한 퐁파두르형이 유행하였다.
바로 풍파두르 부인이 유행시킨 것이다.
부셰는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는데 그중 1758년에 그린 그림 속 그녀는 매력적이고 강한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정부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퐁파두르 부인은 죽는 날까지 왕의 뜨거운 총애를 받았다.
여러 연극의 대본을 다 암송했고 악기 클라비코드를 수준급으로 연주했으며 아마추어로서는 뛰어난 그림 실력에 보석을 디자인할 줄 아는 능력도 갖췄고 원예에도 조예가 깊었다니 그녀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던 것 같다.
유머도 풍부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화가는 그녀의 그 모든 장점을 다양한 지적, 예술적 소품들로 풍성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표현했다.
그래서 왕의 비서실장처럼 일을 도맡아 했는데, 그런 퐁파두르 부인에게 왕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더욱 의지하였다.
그녀는 베르사이유 궁에 들어와 라이벌 격인 왕비 '마리아'를 정성껏 모시고 비위를 맞추어 왕비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루이 15세는 국정마저도 그녀에게 맡기고 주색으로 세월을 보냈다. 방탕한 왕과 함께한 여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사생아만도 서른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20년 이상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실제로 프랑스를 통치한 것은 퐁파두르 부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는 자연스럽게 적이 많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서도 어느 짓궂은 악평가는 그녀가 죽은 후에 쓸 묘비 문구를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고 한다.
20년은 처녀로,
15년은 창녀로,
7년간은 '뚜쟁이' 였던 여인.
여기에 잠들다.
퐁파두르 부인은 마흔셋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녀는 정적들과의 암투, 매일 밤 계속되는 연회로 지친 몸에 국정과 왕으로부터 매일 밤 시달리다(?) 보니 고작 서른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급격이 나빠졌는데 거기에서 아마도 왕이 지니고 있던 '비너스의 병' , 즉 '성병'이 옮겨진 것도 한 몫했다고 해석하는 역사 평론가가 많다.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으로 알려져 있다.
악평가가 쓴 묘비문의 소위 '뚜쟁이' 시기에 해당되는 때의 그림을 보자. 이제는 손에 책 대신에 부채를 들고 있으며 옷만 화려하지 몸은 지친 듯하다. 실제로 당시 지칠대로 지친 부인은 궁 안에 녹원을 마련하고는 거기에 각처에서 데려온 미녀들을 모아놓고 왕에게 고르게 하여 매일 밤 젊고 매력적인 미녀를 대령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7년간은 뚜쟁이였다는 악평이 나온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왕은 그녀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려 했고, 장례식 때는 정식부인이 아니어서 참석할 수 없자, 외투와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발코니에 서서 계속 찬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히 한 시대를 그 정점에서 풍미한 여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인으로 인하여 보르도와인이 프랑스 황실에 공식적인 와인(샤토 라피트 로칠드)으로 선정되었다. 그 전까지는 부르고뉴와인이 황실전용와인이었다.
루이 15세의 애첩으로서 19년간 베르사유궁을 지배했던 마담 드 퐁파두르. 양귀비나 장희빈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삶은 '왕의 여인'이라는 야사의 영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수 없었던 근대 이전, 능력 있는 남성을 유혹하는 일은 여성에게 가장 ‘정치적’인 일이었다.
미모와 사교술을 동원해 권력자를 장악함으로써 베개 밑에서 세계를 움직인 역사의 숨은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것이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역사를 움직인 왕의 정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 또 예술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부셰·샤르댕·피갈·볼테르 등의 저명한 작가를 후원해 로코코양식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Marquise de Pompadour at the Toilet-Table
1758
Oil on canvas, 81 x 63 cm
Fogg Art Museum, Cambridge
첫댓글 '베르사이유'하니 문뜻, "백성들이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우유로 목욕을 하면서 말했다는 '마리 앙뚜아루트'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워낙 미인이라서 모짜르트도 반했었다는 군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나폴레옹에게 몰락 당하기 전, 베르사이유 궁전의 마지막 황제 루이 XVI 세의 왕비였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얽힌 사연들이 많군요. 오늘은 봄비님 덕분에 마담 '퐁파두르'의 사연과 생생한 모습을 보는군요. 감사합니다. 윗글의 일생을 생각하며 얼굴의 관상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ㅎㅎ 못말려요. 그림 보면서 관상을 본다구요? 아이고, 수원방문 내 사진 빨리 회수해야 겠네요. 그런데 너무 많아설랑. 퐁파루드는 참 대단한 여자지요. 엄밀히 말하면 부러운 여자지요. '마리 안토와넷트'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지요. 동 서양을 막론하고 나라가 망하면 여자를 끌어내서 책임을 전가하지요. 루이16세의 실정은 마리 왕비의 탓은 아니었지만요. 당나라 현종의 몰락도 양귀비의 탓은 아니지만 '왕이 양귀비에 빠져서...'라 합니다. 일종의 왜곡이라고 저는 생각하지요. 당시로서 여자에게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을가요?
마담 드 퐁파두르, 왕의 연인, 화려한 의상에서 빠져나온 구두가 눈에 띕니다. 거창한 의상과 작은 발. 루이 15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 여인과 함께한 행운아 였군요. 18세기까지도 '사랑과 결혼은 따로'였다고 합니다. 결혼했어도 남자나 여자 둘 다 사랑하는 연인들과 따로 만나는 것을 용인했다고. 퍽 합리적인 관습이었는데 그 뒤에 더 자유스러워져서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쪽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사랑이 식었을 때는 또 어떻게 한다는 대안도 없이....... .
저도 그 발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두번째, 세번째 그림은 발도 같은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전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겼습니다. ㅎㅎㅎ. 중국 옛글을 보면 같은 첩실끼리 다른 여인의 발이 작다고 주인이 칭찬하는 소리에 질투해서 그녀를 살해 하기도 하던데... 동서 문화의 차이가 보이지요? 요즘은 예전엔 그리 소중히 여기던 '전족'이 성차별이었다고 한답니다.
위에서 네 번째 사진이 압권입니다. 총명하면서도 청초하고, 그러면서도 우수에 젖은 얼굴..... 웬지 명성왕후의 얼굴도 겹치고요. 짧으면서 뜨겁게 살다 간 여인의 인생. 조금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도 그 그림이 좋아요. 빛이 많은 것도 좋고, 어딘지 애매성을 띈듯 맑고 순수해 보이제요. 다른 그림들의 얼굴이 자로잰듯 흠없어 보이는 반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하는 무엇이 보이네요. 이런 면 때문에 오랜 사랑을 받았던 듯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