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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꽃피는 마을
 
 
 
카페 게시글
좋은 그림 스크랩 프랑수아 부세, [퐁파드르 부인]
봄비 추천 0 조회 457 08.06.20 17:2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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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6.21 08:35

    첫댓글 '베르사이유'하니 문뜻, "백성들이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우유로 목욕을 하면서 말했다는 '마리 앙뚜아루트'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워낙 미인이라서 모짜르트도 반했었다는 군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나폴레옹에게 몰락 당하기 전, 베르사이유 궁전의 마지막 황제 루이 XVI 세의 왕비였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얽힌 사연들이 많군요. 오늘은 봄비님 덕분에 마담 '퐁파두르'의 사연과 생생한 모습을 보는군요. 감사합니다. 윗글의 일생을 생각하며 얼굴의 관상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 작성자 08.06.21 11:33

    ㅎㅎ 못말려요. 그림 보면서 관상을 본다구요? 아이고, 수원방문 내 사진 빨리 회수해야 겠네요. 그런데 너무 많아설랑. 퐁파루드는 참 대단한 여자지요. 엄밀히 말하면 부러운 여자지요. '마리 안토와넷트'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지요. 동 서양을 막론하고 나라가 망하면 여자를 끌어내서 책임을 전가하지요. 루이16세의 실정은 마리 왕비의 탓은 아니었지만요. 당나라 현종의 몰락도 양귀비의 탓은 아니지만 '왕이 양귀비에 빠져서...'라 합니다. 일종의 왜곡이라고 저는 생각하지요. 당시로서 여자에게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을가요?

  • 08.06.21 13:04

    마담 드 퐁파두르, 왕의 연인, 화려한 의상에서 빠져나온 구두가 눈에 띕니다. 거창한 의상과 작은 발. 루이 15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 여인과 함께한 행운아 였군요. 18세기까지도 '사랑과 결혼은 따로'였다고 합니다. 결혼했어도 남자나 여자 둘 다 사랑하는 연인들과 따로 만나는 것을 용인했다고. 퍽 합리적인 관습이었는데 그 뒤에 더 자유스러워져서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쪽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사랑이 식었을 때는 또 어떻게 한다는 대안도 없이....... .

  • 작성자 08.06.21 21:49

    저도 그 발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두번째, 세번째 그림은 발도 같은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전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겼습니다. ㅎㅎㅎ. 중국 옛글을 보면 같은 첩실끼리 다른 여인의 발이 작다고 주인이 칭찬하는 소리에 질투해서 그녀를 살해 하기도 하던데... 동서 문화의 차이가 보이지요? 요즘은 예전엔 그리 소중히 여기던 '전족'이 성차별이었다고 한답니다.

  • 08.06.22 02:23

    위에서 네 번째 사진이 압권입니다. 총명하면서도 청초하고, 그러면서도 우수에 젖은 얼굴..... 웬지 명성왕후의 얼굴도 겹치고요. 짧으면서 뜨겁게 살다 간 여인의 인생. 조금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 작성자 08.06.22 06:24

    나도 그 그림이 좋아요. 빛이 많은 것도 좋고, 어딘지 애매성을 띈듯 맑고 순수해 보이제요. 다른 그림들의 얼굴이 자로잰듯 흠없어 보이는 반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하는 무엇이 보이네요. 이런 면 때문에 오랜 사랑을 받았던 듯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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