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이처럼 사소한 것들>
1.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폭력과 인간에 대한 파괴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회피와 때론 적극적 은폐의 공조 속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러한 현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커다란 힘을 지닌 것이라면 사람들의 침묵은 은연중에 강요되는 압박의 결과물이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수도원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반인권적 행태에 대한 주변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은폐의 매커니즘을 파헤치면서, 그러한 불의에 휩쓸리기를 거부한 한 남자의 고뇌와 용기를 그리고 있다.
2. 수녀원에 석탄을 공급하는 남자는 그 곳에 끌려오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에 의문을 갖게 된다. 원치않은 임신을 하거나 다른 이유로 수녀원에 수용된 여성들은 갱생과 교화라는 명목으로 착취되고 자유를 억압받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탈출을 간청하는 여성을 만나고 창고에 감금된 여성을 목격하면서 깊은 고뇌에 빠진다. 마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곳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위험한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시선에 위협을 느낀 수녀원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를 회유하고 위협한다. 가장 가까운 아내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무시할 것을 간청한다.
3. 영화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또 다른 인간의 연대와 용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집단적 은폐와 무시는 결국 소수의 인간이 파멸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와는 관계없다는 이유로, 그러한 문제제기가 개인적 행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하였고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수녀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가 최악의 살육이 아닌 다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수녀원의 행태를 스스로 선의로서 확신하였다. 이러한 자기편향적 확신은 수녀원에서 벌어진 반인권적 행위를 오랫동안 진행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한 것이다.
4. 영화 마지막, 남자는 또다시 창고에 감금된 여성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소란이 일어나고 직접적인 압박이 강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손을 잡고 나왔다는 사실은 은폐된 공간에 새로운 빛을 선사하는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인간의 선함을 실현하는 작업은 거창하지 않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한대로 확산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수많은 형태의 방해물로 인해 위축된다. 그것은 때론 무지일수도, 공포일수도, 쾌락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 있다면 우리의 행동의 방향이 무엇이 되어야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결단은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실천하지 못한 사고는 무의미하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사고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면 불임의 사고일 뿐이다. 사고없는 행동이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행동없는 사고는 문제를 지속시킨다. ‘문제’가 있는 곳, 자신의 지성과 사유를 최적의 방식으로 실현시키는 것, 남자의 행동은 작지만 위대한 사유의 실천이었다.
첫댓글 -언젠가 읽은 소설 속 이야기, 인간이란 이름으로! 공동체 정의 안정 신앙...... 아!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