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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 음악...........♣ 스크랩 익산 미륵사지
혜안지 추천 0 조회 105 10.08.04 00: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적 제150호. 〈삼국유사〉 권2 무왕조(武王條)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30대 무왕(600~641)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에 있는 사자사(獅子寺)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소원하여 지명법사의 도움으로 산을 허물어 못을 메우고 탑과 법상, 미륵삼회전, 낭무(廊?)의 건물을 건립하고 미륵사라 이름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믿는다면 미륵사는 창건당시 건축. 공예 등 백제의 문화 역량이 최대한 발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등 삼국의

기술이 결집되었음을 알 수있다.  미륵사의 창건은 이곳 금마에 가람을 조영하여 마한 세력을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나 황룡사로 대표되는 신라 화엄신앙에 대비되는 백제 미륵신앙에 바탕한 것이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경에는 이미 폐사되었으며 현재는 반쯤 파손되어 있는 서탑과 당간지주 등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

 

1980년대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결과로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을 세워서 일직선상에

탑 3개를 배열하고, 각 탑의 북쪽편에 금당을 1개씩 둔 가람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한 쌍의 금당과 석탑에는 각기 회랑이 둘러져 있어 탑과 금당을 1개의 절로 생각할 때 마치 3개의 절이 모여 있는 듯한

3원식(三院式)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3개의 금당에 모두 지하공간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다.

이 절터에서는 막새기와·토기·불상 등을 비롯하여 1만여 점의 각종 유물이 나왔으며 특히 '미륵사'라든가 '국5년경진'(國五年庚辰)·'요봉원'(姚奉院)·'지원4년'(至元四年)·'천력3년'(天歷三年) 등의 문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 미륵사지는 미륵삼존불의 출현으로 절을 짓게 된 창건동기나 미륵이 이 세상에 와서 3번의 설법을 하기 위한 3군데의 장소를

마련하고 있는 점, 그리고 미륵이 머무를 장소로 금당에 지하공간을 설치했다는 점 등에서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미륵하생신앙).

 

 

 

 

<당간지주>

미륵사지에는 다른사찰과는 달리 9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2기의 당간지주가 있다.

원래 이곳 미륵사지에 있던 2개의 석탑앞쪽에 각각 하나씩 당간지주가 있는데  다른사찰과는 다른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당간지주가 백제시대부터 있던 당간지주는 아니고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당간지주와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비숫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걸어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 미륵사지탑 =

국보 제11호. 높이 14.2m.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양식을 석재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현재 6층의 탑신이 남아 있으나 일부가 붕괴되어 시멘트로 보수한 상태이며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다는 설이 있다.

낮고 작은 기단 위에 건립되었으며 각 층의 탑신은 각 면이 3칸으로 되어 있다. 1층 탑신은 네 귀퉁이에 배흘림이 분명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탱주를 새겼으며 각 면의 중앙에는 내부로 통하는 문이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십자(十字)로 교차

되는 점에 탑을 지탱하는 석조의 찰주가 세워져 있다.

각 층의 옥개는 얇고 넓은 편으로 중앙에서 직선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끝부분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옥개석은 3단받침

으로 되어 있다.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높이가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옥개부분도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되어 전반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석탑은 〈삼국유사〉에 보이는 기록이나 석탑의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백제 말기인 무왕대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 찾아가는 길 = 기차여행

1) 용산역출발 = 익산역하차  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조금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옴 

    시내버스 41, 60번 이용 (배차간격 40분간격) 미륵사지 정류장 하차

2) 전주 공용버스터미널에서 금마행 직행버스가 30분간격으로 운행(1일 45회) 금마에서도 41,60번 버스이용

    또는 금마에서 미륵사지까지 택시이용(소요시간  5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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