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해외로 첨단무기 빼돌려… 한때 세계 5위 軍강국서 몰락]
-20년 평화에 취해… 國防 '구멍'
무기증발, 1992~1997년 사이에 34조원 달해도 아무도 처벌 안해
군용차 배터리는 방전되고 전투기들은 대부분 고장나
실전투입 가능한 정예병사는 육군서 6000명 정도에 불과
지난 19일 친(親)러시아 자경단(自警團) 200여 명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부를 급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크림공화국과의 합병을 선언한 직후였기 때문에 이들의 기세는 마치 '전리품'을 챙기러 온 승전군을 연상시켰다. 우크라이나 국기는 순식간에 찢겼고, 러시아 국기가 걸렸다. 하지만 사령부를 지키던 우크라이나군 1만여 명이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크림반도 사태는 러시아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크림반도 내 자국 병사 1만5000명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군은 26일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와 시설 193곳을 모두 장악했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크림반도 사태는 러시아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크림반도 내 자국 병사 1만5000명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군은 26일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와 시설 193곳을 모두 장악했다.
- 영화‘로드 오브 워’에서 우크라이나계 무기 밀매상(니컬러스 케이지)이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 위에 걸터앉아 있다. 이 영화는 우크라이나 등에서 수십조원어치의 무기를 빼돌려 아프리카 분쟁 지역으로 팔아넘겼던 실제 무기 밀매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로드 오브 워’중 한 장면
우크라이나군이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몰린 건 만연한 부패와 관련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할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다수 보유한 세계 5위권의 군사 강국이었다. 그러나 군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부패 정치인들이 돈 되는 첨단무기를 아프리카 등지로 몽땅 빼돌려 뒷돈을 챙겼고, 우크라이나 병사의 손엔 낡은 소총만 남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320억달러(약 34조원)에 달하는 무기가 증발했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2005년)'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무기 밀매업자 유리 오로프(니컬러스 케이지 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수한 무기를 저울에 달아 전 세계에 헐값에 팔아넘긴다. 여기에다 2009년 최악의 경제성장률(-14%)을 기록하는 등 경제난이 겹치면서 우크라이나는 군 개혁을 시도할 엄두도 못 냈다.
냉전 종식 후 평화에 취해 자주국방을 포기하다시피 한 것도 우크라이나군의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러시아·영국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했다. 우크라이나는 그 대가로 3국으로부터 '주권과 안보, 영토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겼다'며 분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정식 조약이 아닌 양해각서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독립 직후 우크라이나의 총 병력은 78만명을 넘었고, 핵미사일도 1200여 기가 넘었다. 하지만 멋대로 무기를 팔아먹으며 국방을 포기한 대가를 이제 와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례 없는 군사적 위기와 리더십 부재 속에서 우크라이나가 강군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