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벌식은 자리 외우기는 정말 쉬운데, 배우기는 조금 까다로운 자판인 것 같네요.
새로 두벌식을 배우면서 느낀 점을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외운 글쇠를 누르면서 손에 익히는 과정
세벌식은 일정한 흐름을 따라가기에, 누를수록 손이 먼저 알아서 움직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손이 먼저 자리를 외워버리는 겁니다.
세벌식을 배워보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머리로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머리가 늦게 따라가기에, 이러한 격차로 인해 오타가 발생하게 됩니다.
세벌식은 글쇠가 많아 자리를 외우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에서 좌로 흐르는 일정한 흐름과 경로를 가지기에 반복 학습을 통해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익히게 됩니다.
물론, 왼손으로 중성과 종성을 연계해서 누르기에 그것이 생소하고 적응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요.
반면에 두벌식은 자리 외우기는 정말 쉽습니다.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1시간 정도면 자리를 모두 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글쇠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지만, 손에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왜냐하면 좌에서 우로 흐르는 일정한 흐름이 없고, 일정한 경로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 초성과 종성을 왼손으로 함께 누르는 두벌식
세벌식은 중성과 종성을 왼손으로 함께 누르는 반면에, 두벌식은 초성과 종성을 왼손으로 함께 누릅니다.
왜냐하면 두벌식은 초성과 종성의 구분이 없어 같은 글쇠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좌에서 우로 흐르는 일정한 흐름이 나오지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작인 초성도 왼손으로 누르고, 끝인 종성도 왼손으로 누르기 때문입니다.
즉, 왼손에서 시작해서 오른손으로 이동했다가, 종성을 누를 때는 다시 왼손으로 돌아오는 흐름인 겁니다.
그렇기에 왼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초성의 자리도 잡고 종성의 자리까지도 잡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위치를 맴돌면서 왼손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왼손이 초성을 눌렀다 종성을 눌렀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글자를 조합하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조금 더 어려운 겁니다.
3. 종성에서 바로 초성으로 이어지는 왼손
익숙해지기 더욱 어려운 이유는 왼손이 종성에서 바로 초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세벌식은 왼손으로 중성과 종성을 함께 이어서 누릅니다.
항상 일정한 경로를 통해 글쇠를 누르기에, 머리로 글자를 떠올리면 바로 그 손의 위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두벌식은 그것에 비해 익숙해지기 더욱 어렵습니다.
왼손이 초성과 종성 모두를 담당하고 있고, 종성이 나온 다음에 곧바로 초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세벌식은 중성에서 종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글자로 연상하면 항상 일정한 경로가 나옵니다.
하지만 두벌식에서 종성과 초성이 이어지는 부분은 서로 다른 글자에 해당하기에 흐름이 끊기고 엇박자가 나오기 쉽습니다.
4. 글쇠 연계에 대한 계산
세벌식은 어떻게 누르면 손이 적게 꼬인다는 것을 미리 계산하고 자판을 만들었습니다.
일부 조합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어느 위치의 글쇠를 누르고 어느 위치의 글쇠로 이어지면 손이 편하다는 것을 하나하나 테스트한 후에 만들어진 자판입니다.
하지만 두벌식의 경우에는 이러한 연계 방식을 전혀 계산하지 않고 만든 자판입니다.
초성을 먼저 누른 후에 어떤 종성으로 이어지면 손이 편하고 불편한지, 종성을 먼저 누른 후에 어떤 초성으로 이어지면 손이 편하고 불편한지가 전혀 계산되지 않은 겁니다.
물론, 겹받침의 경우는 해당 조합이 익숙해지면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성에서 바로 초성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그야말로 무작위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서로 조합되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그로 인한 불편한 조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5. 글자 퍼즐과의 비교
글자 퍼즐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무작위로 글자를 조합해서 단어를 만드는 것이 두벌식이라면, 가로 세로 대각선에 단어를 미리 숨겨두고 그걸 찾는 것이 세벌식입니다.
'사과', '참외', '과일', '과자'라는 단어를 찾는 퍼즐이라면 다음과 같이 나오게 됩니다.
두벌식:
사, 참, 과, 외, 일, 자
세벌식:
사외일
참과자
둘 중 어떠한 경우가 더 익숙해지기 쉬울까요?
두벌식은 처음(초성)과 끝(종성) 모두를 왼손이 담당하기에 일정한 방향성이 없고, 좌우를 오가는 방식으로 글자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반면에 세벌식은 초성과 종성을 따로 구분함으로 인해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고, 그 한 번의 흐름 안에서 일정한 경로를 따라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게 됩니다.
6. 왼손의 피로도
두벌식은 왼손의 피로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잠시만 타자를 쳐봐도 그게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세벌식을 쓸 때는 장시간 타자를 쳐도 전혀 무리가 없었는데요.
두벌식으로 타자를 치면 조금만 쳐도 왼손에 무리가 오는 것이 느껴져서 길게 타자를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두벌식만 사용하시는 분들은 익숙해져서 모르시겠지만, 세벌식을 쓰다가 두벌식으로 바꾸면 그게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게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벌식만 쓰시는 분들은 그 차이를 모르시고 왼손에 피로가 계속해서 누적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왼손의 피로도가 높은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초성과 종성을 모두 왼손으로 누르는 점
2) 초성에서 종성으로 이어질 때 쉬는 시간이 짧다는 점
3) 종성에서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초성으로 이어진다는 점
4) 이러한 조합이 겹받침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발생한다는 점
5) 초성과 종성 된소리 모두를 왼손 윗글쇠를 이용해 누르는 점
(했었다, 깎았다, 빽빽했다 등 어려운 입력이 많음)
게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이 너무 많이 쓰이는 것도 피로도를 높이는 하나의 요소가 됩니다.
이것 역시도 두벌식만 사용하시는 경우에는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세벌식을 쓰다가 두벌식으로 바꾸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7. 오타가 발생하는 경우
아시다시피 두벌식에는 초성과 종성의 구분이 없습니다.
뒤에 어떠한 것이 입력되는지에 따라 자동으로 계산해서 종성에 붙던지 초성에 붙던지 하는 것이지, 그걸 임의로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명 '도깨비불 현상'입니다.
익숙해진 다음에는 별로 못 느끼겠지만, 배우는 과정에서는 확실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초성이 앞 글자 종성에 먼저 붙는 바람에, 제대로 입력된 것인지 오타가 발생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타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앞 글자에까지 영향을 주기에 더 많은 글자를 수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앉았다'의 '았'에서 초성 ㅇ을 빼고 적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두벌식은 '안잤다'가 되고, 한 글자만 맞고 두 글자는 틀린 것이 됩니다.
세벌식은 '앉ㅏㅆ다'가 되고, 두 글자는 맞고 한 글자만 틀린 것이 됩니다.
게다가, 두벌식의 '안잤다'는 '안 잤다'의 띄어쓰기 오류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세벌식의 '앉ㅏㅆ다'는 누가 봐도 '앉았다'에서 오타가 났음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의미 자체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결론=
두벌식은 자리 외우기는 정말 쉬운 자판이 맞습니다.
하지만 배우기는 조금 까다로운 자판입니다.
특히, 왼손이 너무 바쁘고 왼손의 피로도가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