約束(약속)
봄에 다녀오면서 약속을 해뒀었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면 또 오겠노라고...
편도(片道) 두 시간 가량이 소요가 되는데 한나절 쉼에 왕복 네 시간을 허비하며 발동무 하기엔 버거운 거리이다. 그걸 무릅쓰면서도 년 2~3회는 이곳을 방문을 한다.
바로 무주 덕유산 때문이다.
특히나 겨울이 오면 의식을 치루 듯 찾는데, 덕유산 산정의 상고대가 극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봄에도 찾아가 자생하는 철쭉을 보러 다니게 되었었고, 여름엔 얼음장처럼 시원한 구천동 계곡물을 찾아 다녀오게 되었었다.
지난 4월 중순 쯤 가족 모임으로 덕유산자락에 있는 리조트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시간의 여유로움이 적상산, 머루와인동굴, 안국사, 사고지, 양수발전소, 상부댐, 하부댐 등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赤裳山(붉을 적, 치마 상, 뫼 산)이라는 한자가 쓰이는데 전해오는 유래 중 하나가 가을이 오면 단풍이 얼마나 붉게 물이 드는지 멀리서 보면 빨간 치마를 두른 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하나는 적상산 네 면의 절벽이 붉은색 치마를 두른 듯 보여서 붙여졌다는데 후자가 맞는 거 같지만 나는 전자를 믿기로 했다.
식물이나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꽃이 피거나 단풍이들 때 등에는 시기와 적기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각 지자체에서는 그거에 맞춘 축제일을 정할 때 해마다의 시기를 체크해 놨다가 평균치를 내놓고 적당한 날을 잡는 법이다.
그러나 올 가을엔 아니였다. 무더위로 여름인지 가을인지 도대체 기온으로는 계절 구분이 어려웠기에 식물들조차도 계절의 시계를 망각하고 꽃 필 때와 물들 때를 놓쳐버렸다.
무주는 고냉지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계절시계가 훨씬 빠르거나 늦기에 수시로 염탐하며 방문 시기를 조절했다.
바로 어제였다.
주어진 시간이 9~10 시간이라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가게에 나와 씻어리 및 쎄팅을 해야만 했다.
완료 후 7시에 출발~~~.
차창 안으로 빨려드는 아침 공기는 더 없이 상쾌했고 중천에 떠 늦잠을 자고 있는 새벽달의 밝은 모습은 하루의 일기가 좋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기쁨이 배가 되니 즐거운 마음이 가슴 안 가득하다.
희뿌연 아침 안개가 운전에 훼방은 좀 놨다지만, 기분이 좋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온 몸을 이미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 이마져도 한폭의 수채화마냥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정읍 전주간 국도를 태우고 호남고속도로를 태우고 그리고 익산 장수간 고속도로를 태우다 진안에 접어들자 지방도를 안내하며 막힘없이 태워다 주는데 오늘 네비게이션마져도 컨디션이 최고인 날인갑다.
일찍 출발해서 오길 잘했다.
그동안 밝게 빛나 준 햇님 덕분에 안개와 맺힌 이슬들이 말끔하게 거둬져 먼산까지 훤히 보이게 시야가 트여 있다.
햇님은 또 수목들 사이로 밝은 햇살을 쏟아 넣어주며 장막(帳幕)을 걷어 내 주고 계시는데 그 앞에 펼쳐진 단풍의 아름다운 광경은 연속 되는 감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이곳은 우리 정읍 내장산처럼 자생하는 단풍나무도 그렇게 눈에 띄는 일이 없었고 규모도 형편 없었다.
하지만, 1000고지가 넘는 산정을 구비구비 돌고 돌아서 산정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닦여 있었는데, 그 가상으로 심어 놓은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수령이 거듭 되면서 굵어지고 수형이 커졌다. 그게 단풍이 들면서 주변 숲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현실이 아닌 꿈 속 즉 몽환적 느낌이 들게 할 정도이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오르내리는 차 하나 없고 온전히 내 차 한 대에 차 안의 세 사람 뿐이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도 없겠거니와 차간거리 유지도 없고 오롯이 커브길만 조심하면 된다.
시야야 들어오는 풍경 하나 하나에 때론 크게 때론 속삭이 듯 터져 나오는 감동의 비명만이 있을 뿐이다.
이야...
우와...
히야...
어!
앗!
저기 좀 봐봐!
여기 여기 여기도!
좁은 차도라서 被寫體(피사체)의 거리가 짧아 사진을 찍기가 좀 옹삭한 게 흠이었다.
●길이 협소하고 구빗길이 많아 반드시 주차 가능한 곳에 주차를 하고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감상 해야 됨.
머물렀던 시간이 길어 와인동굴은 입장료가 아까울 정도로 증표만 남겼고, TV프로그램 한식대첩3에 모녀가 출연했다는 맛집 들러 버섯전골로 배 채우고 정읍으로 향했다.
봄에 다시 와보겠노라 한 적상산과의 약속을 이행해 기분이 홀가분 하다.
정읍오로 되돌아오는 길...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전체가 이리도 아름답게 보일 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