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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위하여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 계절을 지나면서 나는 습관처럼 계절병에 시달린다. 긍정과 관조의 삶을 지향하며 중심을 잡아주던 수평의 한 귀퉁이가 가을이 오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헐거워진 그 틈새로 슬그머니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있으니, 우울함, 쓸쓸함, 고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아마도 그것은 성장을 멈춘 잎들과 결실 뒤의 소멸, 기후의 변화 등 계절이 가져다주는 느낌 때문에 나의 심신이 느끼는 알레르기 증상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나의 증상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랑 두 장밖에 안 남은 달력을 바라보면서 어처구니없이 흘러가 버린 시간에 미안해지고, 작은 열매하나 맺지 못하는 내 뒤꽁무니가 부끄러워 허탈해진다. 이곳 저곳 신체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고, 감성은 메말라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 조석의 서늘한 바람이 쓸쓸함을 데려오고, 그 복합적인 요소들이 어울려 우울하고 고독감에 쌓인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언제나 뛰노나니/ 헤세의 다정한 속삭임도,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영원한 청춘이다./ 라는 사무엘 울만의 외침도 한때는 위로가 되던 그 단어들이 이제는 무감각하게 들리니 나에게서 이상과 열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신문에서 읽은 어느 지식인의 ‘멜랑콜리의 재해석’ 이란 글을 보면 우울증은 꿈을 가진 자의 병이요, 타인의 우울에서도 자신의 꿈을 발견한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우울한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말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에겐 이제 꿈이 남아있지 않다. 꿈이 아닌 잘 죽는 희망사항만이 있을 뿐이다. 멜랑콜리 발음도 부드러운 그 단어를 달콤한 서양과자처럼 입속에 굴리며 혼자만의 우울한 여행이라도 떠나 볼까
오늘은 토요일, 딱히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무기력을 불러오고 고독감을 더욱 부추긴다. 계획된 일정표가 없을지라도 책을 읽거나 사소한 집안일을 해도 좋은데 내 마음의 방향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놈의 고독과 한판 승부를 벌리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서 조바심을 친다. 고독한 여자가 되어서 고독을 찾으러 가자. 쓸쓸한 여자가 되어 쓸쓸함을 찾으러 가자. 기차역으로 가서 북천으로 가는 차표를 샀다. 오래전에 코스모스축제가 끝난 그곳의 풍경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까. 기대를 하면서 기차를 탄다. 경전선 복선공사가 끝난 지도 몇 해, 그림처럼 조용하던 간이역 대신 반듯한 새 역사가 생기고 자주 이어지는 터널 들이 생각의 길을 자꾸 끊어 놓는다. 인생은 철로와 같다는 말은 시인들이 많이 써먹는 말이다. 평탄한 길과 모퉁이 길, 내리막과 오르막, 그리고 암흑 같은 터널속이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았다. 북천역에 내렸다. 역사에 핀 빈약한 마지막 꽃을 붙들고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용한 역 건물로 들어서니 새로 단장한 휴게실 벽에 코스모스 꽃에 대한 유래와 간이역이라는 시가 걸려 있었다. 축제가 끝난 북천역은 쓸쓸한 간이역 그대로였다. 아무도 없는 축제장을 천천히 걸어보니, 오년 전에 와 보았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논배미에 가득 심어진 코스모스들은 이미 제 명을 다하고 무심히 누워있고, 부실한 열매를 맺은 메밀은 수확하지 않은 채 삭아져 가고 있었다. 쓸쓸함을 찾아서 온 곳, 나의 쓸쓸을 보탠 그 풍경이 참으로 쓸쓸하였다. 돌담 밑에 늦게 핀 붉은색 코스모스 한 무리가 위로하듯 나를 쳐다본다. 한 송이를 따서 가만히 입술에 대어본다. 울컥 치미는 이 감정은 쓸쓸함에 대한 연민인가. 사랑인가. 채워지지 않은 허기에 갑자기 배가 고프다. 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메밀요리를 한다는 간판이 붙은 아담한 식당이 있어서 가보니 문이 잠기었다. 축제가 끝나니 손님이 없는 모양이다. 식당마당의 바구니에 든 고구마를 한 개 쥐고 흙 묻은 채로 베어 먹었다. 낡은 집들, 옛날식 다방, 라면 오뎅 등의 간판을 바라보며 걷다가 작은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길가의 돌 위에 퍼질러 앉아 먹는 내 모습이 갈 곳 없는 나그네처럼 쓸쓸하고 청승맞게 보이지만 마음은 이외로 편안했다. 집으로 가는 기차는 오후 여섯 시, 차표를 사니 주말이라 한 시간은 입석이고 한 시간은 좌석인 절름발이 표다. 한참을 어슬렁거려도 시간이 남기에 무임승차로 하동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무임승차 하다가 걸리면 열 배의 운임을 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학창시절에 밥 먹듯 하던 무임승차의 추억을 떠올리며 태연하게 빈 좌석에 앉는다. 북천에서 네 정거장, 삼십분 만에 하동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릴 때 책 보퉁이 끼고 개나리 울타리가 있는 역사의 옆길로 쏜살같이 빠져나가곤 하던 소녀가 이제는 노인이 되어 하동역 정문으로 태연하게 걸어 들어간다. 그때는 용돈을 절약하기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지금은 추억을 맛보기 위한 감정의 사치를 위하여. 역 부근을 두리번거리다가 식당을 발견했다. 파를 다듬던 늙은 여자가 반긴다. 허름한 식당 한편에 팔십 대의 노인 한 분과 육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손님이 없다. 재첩국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배고픔에 먹긴 했지만 이전에 하동포구에서 맛보던 국물 뽀얀 재첩 맛은 아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 여자가 노인의 환담 속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긴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알맹이 없는 낙엽 같은 이야기와 청춘의 부스러기 같은 음담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깊게 팬 주름 속에 그의 인생지도가 다 보이는 것 같은, 그래도 아직 한창이라고 우기는 얼굴을 하고 슬며시 일어난 노인이 이상한 몸짓으로 막춤을 추었다. 마주앉은 여자가 일어나더니 나름 섹시한 막춤으로 화답 했다. 그들은 좋아라고 웃었지만 나는 썰렁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별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평범한 소도시의 모습 그대로인 식당 건너편의 풍경을 일별하고 다시 하동역 마당으로 들어서니 한 무리의 자전거 족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커다란 화물차에 수 십대의 자전거가 실린 걸 보니 주말을 맞아 하동에 새로 조성된 자전거 길 탐방을 즐기고 온 것 같았다.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 배불뚝이 중년 여자,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이 등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자전거 모임 같았는데, 그들의 얼굴에선 하나같이 자신감과 건강미가 넘쳐났다. 벌써 몇 년 째 먼지를 쓰고 낮잠을 자는 내 자전거를 떠올린다. 처음 자전거를 사서 집으로 오는 십리 길을 타다가 걷다가 넘어지며 오던 그때의 열정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직 내 몸 상태가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닌데도 페달을 밟고 기분 좋게 씽씽 들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과 용기가 안 생긴다는 거다. 그것이 쓸쓸하다. 북천에서 여섯 시 기차가 하동에선 다섯 시 반에 출발했다. 세 칸뿐인 열차에 자전거족들이 한 칸을 메웠으니 입석 승객이 많았다. 두리번거리다가 옆 칸을 보니 열차카페인데 조용해서 가보니 음료수 등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자판기만 보일뿐, 의자도 없고 사람도 없는 무인카페였다. 구석진 자리에 수건을 깔고 다리를 뻗고 앉았다. 열차카페 한 칸을 내가 전세 낸 셈 이었다. 덜컥거리는 열차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데 흔들리면서 내 몸이 리듬을 탔다. 반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는데, 아픈 사람처럼 보였는지 승무원이 지나가다가 유심히 쳐다본다. 자리가 없어서 여기에 앉았다고 말하니 그냥 지나갔다. 중리역에 도착해서 내 좌석을 찾아 가니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내 자리이니 비켜달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어서 구석진 자리에 있는 빈 좌석에 가 앉았다. 집이 가까워져 오니 하루 동안 내 주위를 떠돌던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다시 고독한 가을여자로 되돌아왔다. 그위로 주체할 수없이 밀려오는것, 그리움이란 단어가 보태어진다. 조용히 되돌아보면 내가 걸어간 하루의 그림이 너무 초라하다. 오늘 이 칠푼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나 후회는 없다. 육체도 정신도 피로해진 몸을 의자 깊숙이 기대었다. 어디선가 시어머님의 벼락같은 음성이 들린다. “이 철없는 것아. 바쁜 철에 뭐하는 짓이고? 들에 나가서 땀 흘리고 일 해봐라. 그 허깨비같은 거시기가 얼씬이나 하는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어머니에게 뒤통수 한 방 오지게 맞고 싶다.
내가 밤잠 설치며 쓴 글을 올려보지만 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이곳에 몇명이나 있을까. 그리고 댓글을 달아줄 사람이 또 몇이나 있을까 나의 수필처럼 이곳도 쓸쓸하기 그지없다. 곧 겨울이 오고있다. 이곳에도... 누가 실버에 난방비 좀 대 줄 사람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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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과 고독과 쓸슬함... 이것들이 인생의 여정인가 봅니다.^^
가을녀석은 왜 우리 전원누이를 고독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 녀석은 왜 북천이랑 하동으로 누이를 데려간 것일까요?...그런 생각으로 읽어나갔는데.... 그것은 어머님에게 뒤통수 한방 오지게 맞기 위함이었군요. 그래요. 쓸쓸하다는 것, 고독하다는 것....... 누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고 어휘에요. 어머님 말씀대로 일 하세요. 에공, 우리 누이 언제 철 들려나? ^^
멜랑콜리한 자신의 심경을 멋진 글솜씨로 그려냈군요. 누이의 수필이 날이 갈수록 번뜩이을 더해서 바해동생 기분이 참 좋습니다.
우와! 댓글이 달리니 엎드려 절 받기도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고독하심니까?
외로우신가요?
슬프신가요 ? 마음에서 온 병 임니다
털어 벌세요 인생이 그려너니 하고
삶시다
누가 늙고 싶어서 늙나요
그려너니 하고 사십시다
주름살이 하나씩 생기면서
살아온 인생 허무하지만
털어 버립시다 시어머니의
호통 에 다시 깨어난 전원님께
마음의 상처를 위로 하는마음을
댓글을 달아봄니다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