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바닥은 우리들의 교실이었다. 1/4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긴 되었나 보다. 내가 연구소에 다닐 때 넓은 세계로 나아가자라는 ‘세계속의 한국(Korea in the World)’이 캐치 프레이즈(catch phrase)이었다. 반세기를 지나보니 어느새 선진국이 되었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던 글로벌 미디어의 표지제목이 생각난다. ‘Koreans are coming(한국인들이 오고 있다)’에서 ‘Koreans are here(여기에도 한국인이 있다)’가 되드니 이제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Foreigners are here and there(어디를 가도 외국인들이 많이있네)’가 되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한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썪는다고도 한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잊지는 말자. 우리 스스로가 선진국민이란 자만에 도취하지 않도록 필자의 올챙이 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 옛날이여. 로마제국도 망하고,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고 하는데 기우일까?
시대적 배경
6.25동란/한국전쟁: 1950.6.25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휴전협정(정전협정)
필자의 초교약력:
1952.4-1958. 2 금당국민학교 입학/졸업 (‘홍동국민학교 금당분교장’에서 승격/1954)
충남 홍성군 홍동면 금당리에 있는 홍동초등학교 금당분교 초가집 흙 바닥 옛 교사에서 수학.
학년제와 입학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를 제대로 입학했다면 1950년 9월 이었을 것이다. 6.25가 일어나서 가장 어수선한 시기이었다. 전쟁기간중 입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다 말다해서 전쟁이 끝나면서 안정을 되찾은 다음에 나이를 감안하여 적당한 학년에 다시 들어갔다. 그래서 1944년생인 나도 제 나이에 입학을 못하고 9살이 되는 1952년 4월에야 정식으로 금당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다. 같은 학년이래도 1941년생(당시 부르는 나이 12살)부터 출생신고가 늦어진 학생 1948년생(5살)까지 같은 반이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은 전쟁의 한복판이었고, 1952년에야 휴전이나 종전에 가까워지는 시기에 입학한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의 개학 시기는 시대에 따라 여러 번 바뀌었다. 변화의 요인으로는 일본 제도의 영향, 농경사회 세시기, 광복 직후 혼란, 미국식 학제 논의 등이 함께 얽혀 있었다. 1895년 무렵 근대식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일제강점기 (1910~1945)에는 4월 신학년제가 정착되었다. 4월 입학/개학, 다음 해 3월 졸업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일본의 실정에 맞는 4월 체계가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광복 직후 (1945~1950년대 초)에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광복 후 미군정 시기에는 일제의 제도 청산이 당연하였다. 그 대신 미국식 9월 학기 검토와 교육체계 재정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임시로 9월 학기를 시행하거나 검토되었다. 특히 미국 영향 때문에 9월 시작, 6월 종료 학년제가 논의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현실에서는 전쟁 위험, 행정 혼란, 교사 부족, 교실 부족 등 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농촌의 생활 주기와 기존 관행도 이미 4월 중심이었으므로 4월 학년제가 다시 유지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4월 학년제가 1950~1961년 무렵까지 4월 개학, 다음 해 3월 졸업제도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부 시기, 행정, 회계, 교육 일정을 정비하면서 1962년부터 3월 신학년제가 도입되었다. 이유는 학사 운영에서 4월은 너무 늦어 교육일수가 부족하고 여름방학 문제 등이 있었다. 그러나 3월 시작이면 12~2월 겨울방학, 새 봄 새 학년구조가 더 자연스러웠다. 이처럼 한국 초등학교 개학 시기는 일제강점기의 4월제에서 광복후 9월이 논의 되었다가 다시 4월로 바뀌었다가 1962년부터 지금과 같이 3월 학년제가 정착되었다.[계속]
첫댓글 심 교수님, 정성 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비슷한 연배로서 교수님의 글이 제 가슴속 옛 기억을 고스란히 깨워주네요.저 역시 1954년 영동국민학교 1학년 안다니고 바로 월반하여 2학년 시절, 교실도 없이 운동장 수양버들 아래 가마니를 깔고 공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5학년 때 8사단 공병대가 지어준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던 시절도 어제 일만 같습니다.그 척박했던 시절을 지나,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발전된 선진국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1962년 3월 학년제 정착 이야기로 맺으신 이번 편에 이어, 앞으로 계속될 교수님의 소중한 연재 글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억이 가물거려 옛 생각이 잘 안 납니다. 박사님이나 내나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여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생각을 더듬어 남기고 싶어서 몇 자씩 적습니다. 기운을 주셔서 힘이 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편을 써주시게 초등학교 의무교육, 중학교 무시험,고등학교 평준화, 대학입학 자격시험등 나는 다 잊어벼렸어요
이와 맏물려 아날로그시시대,TV시대 디지털 시대. 삐삐, 콤퓨터시대,아이폰시대 AI 시대 등을 그대의 필력으로 휘둘러 업로드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기까지 가고 싶어도 능력이 안됩니다. 박박사님께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