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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2017, 한국, 홍주연 홍현정 감독, 하정우 윤안나 출연
출장 일정을 아껴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을 들른 까닭은 꽃 한 송이라도 그녀의 묘비 앞에 바치고 싶어서였다.
광주의 5월은 분주했고, 선교사 묘역 아래 호남신학대학교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묘역은 앞마당처럼 넓지 않아서 포근했다. 유진벨, 윌슨, 오웬 등 호남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펼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의 이름을 담은 묘비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5월의 눈부신 햇살이 신록들 사이로 반짝인다. 나는 묘비들을 돌며 그녀의 이름을 찾아낸다.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서서평.
그녀의 묘비 앞에는 이미 여러 개의 꽃다발이 놓여 있다. 영화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그녀의 삶에 주목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자신의 오늘 속에서 의미 있게 해석하려고 한다.
책을 통해서건, 영화를 통해서건 역사 속으로 이미 퇴장해버리고 잊힌 사람을 오늘이란 시간으로 굳이 불러내려는 시도는 자칫 뜬금없고 불온할 수 있다. 그러한 초대는 시간의 거리만큼이나 왜곡과 거짓의 허울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이란 시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하여, 아니면 오늘이란 시간을 치유하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하필 지나버린 역사 속 누군가의 시간에 굳이 잇대어 보려고 노력한다.
서서평은 서른두 살이던 1912년 조선에 왔다. 하나님께서 조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사용해주실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것이 선교사가 된 유일한 이유였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조선에서 간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을 만들었고, 여성 지도자를 키우는 이일성경학교를 설립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비롯한 행려병자들과 길거리에 넘쳐나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웃으로 살았다. 풍토병을 앓으면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보살피고 거두느라 결국 54세에 영양실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지막 남은 시신까지 기증하고 사람들에게 “천국에서 만납시다” 인사한 뒤 그야말로 빈손으로 떠났다. 1934년이었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지역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렀는데, 누구보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은 가난한 양림천의 거지들과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아 비로소 조선의 첫 여성이고자 했던 성경학교의 제자들이었다. 그녀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 귀한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을 하늘처럼 받듦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제자가 된 셈이었다.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도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서서평 선교사의 목소리와 손길과 눈물을 만나고자 하는 영화이다. 많은 이들의 발품이 든 영화인데, 틀림없이 그녀를 잊지 못하거나 그녀의 인생에 빚진 이들이 더욱 간절하게 그 일을 감당한 것이리라, 확신했다. 나는 그 간절함에 귀 기울이고자 집중했다.
어찌되었든 영화를 보면서 다시 그녀의 시간에 마음을 둘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녀의 걸음이 머물던 장소를 찾아 천천히 평온하게 거닐 수 있어 좋았다. 나의 기쁨은 그러나 영화의 ‘행간’에서 찾은 기쁨인지 모르겠다.
가령 이런 것이다.
서서평 선교사가 떠난 뒤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는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녀를 떠올리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를 만큼 유명한 그 구절.
우리는 열심히 외운 ‘not A but B’의 이 문구에서 B에 주목하느라 A가 지닌 부정의 정체까지 건너뛴다. 서서평 선교사의 삶은 틀림없이 성공이 아닌 섬김에 방점이 찍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문구를 거기 침대 머리맡에 붙여둘 때 그녀의 마음이 와 닿았다. 아마 그 말은 타인에게 한 말이라기보다 자신을 향한 다독임이었을 게다. 하여 나는 생각해본다. 그녀에게도 ‘성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가끔은 혼자 남은 그녀의 방을 찾아와 쿡쿡 충동질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아이를 위해 자신의 것을 떼어 주고, 슬프고 고달픈 세월을 살아가는 조선의 여인네들의 편이 되어준 그녀의 위대한 ‘섬김’은, 어쩌면 그런 수많은 유혹들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낸 어떤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그녀를 ‘호남의 성녀’라 부르더라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는다. 로보트태권브이가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감동하는 까닭은 그 속에 ‘훈’이가 타고 있기 때문이다. 훈이 없이 홀로 달려가는 태권브이라면 거기선 감동보다 태권브이의 수리비가 더 떠오를 테니까.
수년 전 처음 서서평 선교사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이방의 어느 성녀를 떠올렸다. 그녀의 인자한 눈매와 쭈글쭈글하지만 따뜻하고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은 손을 떠올렸다. 성모 마리아가 살아 계시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거야, 생각했던 바로 그분을 떠올렸다. 마치 처음부터 성녀로 태어난 듯, 그녀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서서평 선교사에게는, 적어도 ‘성공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다짐했을 그녀의 침실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미혼모의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 채 외롭게 자란 어린 쉐핑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가여운 아이로 태어난 딸에게 모질고 가혹하였던 ‘나쁜 엄마’의 모습은 어쩌면 슬픈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가난과 탄압으로 내몰던 사납고 암울한 기운과도 닮았다. 영화는 어린 쉐핑의 시간이 불행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 투영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제목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에 더 주목했다. 이 놀라운 제목을 걸어놓고도 카메라의 앵글은 좀처럼 그녀의 ‘천천히 평온하게’ 걸어간 걸음을 좇지 못하는 듯했다.
언젠가 나는 제주도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워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도 얼핏 나오지만 그녀는 제주도를 좋아했다. 마지막 여행지도 제주도였다. 1933년 여름 여전도회연합회 총회가 제주도에서 열렸는데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섬이었다. 게다가 이일학교에서 훈련받은 소녀들 중 여럿이 제주도에 와서 전도부인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들과의 만남이 또 행복했다. 그녀는 “황홀하다”고 표현하며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제주도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섬’이었다. 아이들이 붉은 색과 녹색과 노란색 치마를 입고 노니는 모습을 보며 “천국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거닐고 만난 제주의 길과 집과 아이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할 줄도 알았다.
그리고 로이스 선교사에게 전해준 제주의 기억을 한번 들어보라.
“가세요. 개울을 건너면 큰 나무가 첫 번째 거리 앞에 서있고요. 나무 주위에 짚으로 만든 밧줄이 감겨져 있는데, 거기엔 귀신에게 바친 종잇조각과 쌀 주머니가 가지에 달려 있어요. 열두 개의 눈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지만 걱정 마시구요. 도착하여 작은 문 앞에 있는 좁은 마루에 앉아 있으면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몰려올 거예요. 그들 뒤에는 머리에 음식상을 이고 있는 작은 마누라도 있을 겁니다. 선교사님 가까이에 아기들과 집안 아들딸들이 가득할 겁니다. 그들 모두가 선교사님이 왜 오셨는가를 알기를 바라고 있고 선교사님의 깊이 파인 눈과 긴 코에 대해 크게 흥미로워합니다.”
나는 그녀가 표현한 제주도 풍경의 기억 속에서 사람들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알아차린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과 그 사람의 형편과 환경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이 관심, 곧 사람을 향한 그 관심은 바로 놀라운 관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관심이고 관찰이란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순례자처럼 천천히 평온했다. 그래서 세밀하였고 따뜻했다. 만물을 그렇게 신비한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녀는 하나님의 마음에 이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랑은 거기서부터 싹이 트는 법이다. 그녀가 걸었던 모슬포의 해변을 나는 느릿느릿 걸어보고 싶었다.
광주의 선교사 묘역을 내려오자마자 만나는 좁은 숲길이 ‘쉐핑길’이다. 나는 천천히 평온하게 걷는다. 느리고 평화로운 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박명철
첫댓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