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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6월 설교 시리즈 – 터닝포인트>네가 어디에 있느냐?
본문 : 창세기 3장 9절(6~12절)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새번역>
가던 길이 잘 못 된 것을 알고, 완전히 돌아서서 옳은 길로 가는 행동을 ‘회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던 길이 아니란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면,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돌아서는 행동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그 타이밍, at That Moment, 알게 되고, 깨닫게 된 순간을 ‘Turning Point’, ‘터닝포인트’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 많은 터닝포인트를 가진 이들의 순간이 등장합니다만 예를 들면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누가복음 15장 17절A, 새번역>
혹시 여러분에게는 이 터닝포인트가 있으셨습니까? 언제였습니까?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다양한 경험 속에서 분명한 포인트를 알고 계시는 분도 있으실 것이고, 아직은 뚜렷한 경험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삶 속에서의 터닝포인트도 중요하지만 신앙 생활에서 이 터닝포인트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터닝포인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은혜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서서, 다시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만든 그 터닝포인트! 6월 한 달 동안 그 터닝포인트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으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있으신 분들은 더 뚜렷해지시고, 없으신 분들은 발견하게 되는 6월 한 달 귀한 시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가장 첫 번째로 나눌 터닝포인트는, 바로 ‘부르심’에 대해 반응을 하며, 응답하고, 결단했던 그 지점에 대한 묵상입니다. 그래서 가장 첫 번째로 부르심을 입었던 ‘아담’의 그 순간으로 이동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가 펼쳐지는 창세기 3장은 뱀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시작됩니다.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창세기 3장 1절, 새번역>
분명한 것은 뱀도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어진 모든 들짐승의 고유 특성 중에는 ‘간교’함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간교는 간사와 교활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해치려는 나쁜 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이 이런 ‘간교’라는 특성을 허락하실 수 있으실까 의문이 드는 분들도 분명히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교함으로 해석된 히브리어 ‘아룸’은 잠언 12장, 13장, 14장 등에서는 ‘슬기로움’이나 ‘사려깊음’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한 어리석음이라는 단어와 늘 함께 쓰이면서 ‘분별력’이라고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지혜를 표현하는 한 가지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 편에 서 있을 때는, 하나님을 위할 때는, 하나님의 방법대로는 슬기로움과 사려깊음, 분별력으로 쓰이지만, 만약 세상 편에 서면, 사람을 위할 때는, 사람의 방법대로는 간교함, 간사, 교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로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뱀은 허락하신 ‘아룸’을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의 창조를, 하나님의 방법을 찬양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 지혜는 필요 없는 호기심과 오로지 궁금증에 연결되어 간교함으로 변해 하와를 유혹하는데 쓰이게 됩니다. 지혜가 간교함으로 바뀌는 때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바로,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그 지혜를 사용할 때 간교함이 되는 것입니다. 뱀이 그랬습니다. 뱀은 오로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하와에게 ‘정말로’라는 말을 포함하며 질문했기에, 뱀이 가장 간교한 존재,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간교로 변질된 첫 번째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뱀은 어떻게 선악과에게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유추해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은 아담만이 아닌 에덴동산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던가, 아니면 아담이 중요한 명령을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말하고 다녔다는 것, 두 가지 중 한 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됐든 아담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뱀은 아담에게 가지 않고, 하와에게로 간 것입니다. 직접 듣지 않았던 하와를 유혹하기 더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안타깝지만 하와 안에도 같은 궁금증이 존재했던 것임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뱀의 간교한 궁금증과 하와의 안타까운 궁금증은 결국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결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장 6절, 새번역>
이 이야기는 하와가 혼자 먹은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던’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함께 있던 남편이라고 하니 뱀이 이야기할 때 곁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아담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해석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는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 아닌 ‘같이 사는’ 이라고 해석이 가능한 구절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와가 먼저 먹고, 아담을 만나 전해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그저 하와가 주는 것이니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먹었을 것입니다.
사실 아담이 함께 있었고, 함께 들었고, 하와를 말리지 않았고, 자신도 먹었다 라고 해석한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은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그 자리에 없던 상태에서 하와가 주는 것을 의심 없이 먹은 실수였던, 다 알고 있으면서 먹었던 고의이든,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은 지금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는 순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 대로 ‘먹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창세기 3장 7절, 새번역>
눈이 밝아졌습니다. 좋은 의미로서의 밝아짐이 아닙니다. 몰랐어도 될 알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평소에는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수치심이 찾아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기쁨의 일상이, 평안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죄를 짓고 난 뒤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죄책감이 그들을 계속해서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마치 자신들의 허물을 그렇게 나뭇잎으로라도 가리고 싶은 듯 자신들의 은밀한 부위의 몸을 가리게 됩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혼란스러웠고, 답답했을 것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뵐 생각을 하니 죽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허용해 주셨는데, 그 것만으로 충분한대, 이미 뱀도, 하와도, 자신도, 그 누군가를 원망하더라도 늦었습니다. 이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고, 죄를 지었고, 죽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성경은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당연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창세기 3장 8절, 새번역>
그런데 이 지점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죄를 짓고, 죽은 그 순간, 그 절망의 포인트, 낯을 피해 숨고 싶을 그 때! 하나님은 평소처럼 아담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모르시는 듯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아담이 자신의 명령을 어겼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실 정도로 완벽하게 믿고 계셨을 것입니다. 평소라면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만 듣고도 반가워서 달려왔을 두 사람인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담을 만나고 싶으셨습니다. 처음으로 아담을 부르십니다. 부르실 필요가 없었던 사이였는데, 늘 함께하고 있었는데, 찾고 계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 3장 8절, 새번역>
마치 죄가 하나님과 아담 사이를 갈라 놓기라도 한 듯이,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십니다. 함께 있던 공간을 죄가 갈라놓은 것입니다. 에덴 동산 안에 있지만, 아담은 더 이상 에덴 동산에 속하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깨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뵙기가 두렵습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마주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을 피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을 만나러 오셨고, 아담을 부르며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첫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복음 9장 13절, 새번역>
여기에서 아담은 결정해야 합니다. 이 지점이 터닝포인트가 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평상시와 동일하게 아담을 찾고 계십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지만, 먼저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가 사실대로 말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고 실토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첫 마디는 너무도 슬픈 말이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 새번역>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 그 행복한 소리가 오늘은 끔찍하게도 듣기 싫은, 두렵고 무서운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보여 드릴 수 없는 벗은 몸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언제나 벗은 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보여 드리기가 싫었습니다. 수치심이, 부끄러움이, 죄책감이, 자신의 몸에 너무도 분명하게 새겨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지금 저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그냥 솔직하게 다 말씀 드렸어야 했습니다. 먼저 고백해야 했습니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 몰랐을 것이지만, 지금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죄스럽고,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고해야 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분명 은혜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해야 했습니다. 부르실 때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런 모습이 아닌 회피를 위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쁜 비겁한 아담입니다.
그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 새번역>
어찌 보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아담은 또 한 번 스스로만 생각하는 모습으로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죄를 지은 후에 또 죄를 짓게 되고, 죄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가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죄는 무섭습니다. 더욱 깊게 빠지는 늪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은혜와 사랑, 용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담의 이야기를 나누며 동시에 호세아의 이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6장 1절A, 개정개역>
요한의 이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 새번역>
부르심에 응답하여 돌아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터닝포인트!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매일매일이 이런 터닝포인트여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이 찾으실 때, 숨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이사야 55장 6절, 새번역>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요한복음 4장 23절,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5절, 새번역>
이미 이 순간을 지나 믿음의 여정을 걷고 계신 분들이라면 마음 다해 그 길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길을 잘 걸어가시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혹여라도 아담 같은 분들이 계신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터닝포인트의 순간을 최대한 빨리 맞이하게 되시길 진심으로 요청하고 권면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새번역>
결단 찬양 – 다시 일어나 + 여호와께 돌아가자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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