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지역사 연구모임에서 인천을 탐사하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였다.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8명이었고 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
우리를 안내하신분은 역사를 전공하시고 화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계신 김선희 선생님이셨다.
우리의 탐방코스는 조선식산터옆에 있는 신포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시작하기로 하였다.
대충 노선을 그려보면
답동성당--내리교회--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홍예문---맥아더장군동상--한미100주년 기념탑--제물포 구락부--청 일조계지경계계단---공화춘--화교증산학교--구일본영사관(중구청)-- 대불호텔터--일본제1은행(인천개항박물관)--일본18은행(인천개항장근대건축박물관)--일본58은행--인천아트플랫폼
하루동안 볼 수 있는 것들을 거의 둘러보기 위해서는 점심시간에 짜장면을 먹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열심히 걸어다녔다.
인천은 개항지로서 우리나라에 또한 종교적인 문물이 전해진 곳들이 많이 남아 있기 도 한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성당과 개신교, 성공회 건물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였다.
답동성당의 모습-1897년 고딕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이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건물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리는 개축공사를 하면서 로마네스크양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곳에서 오랫만에 중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지금은 수녀님이 되어서 답동성당부속 유치원에 원장으로 있는 배벨라데따 수녀님을 만났다. 일행이 있는지라 잠깐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음에 만날것을 기약하였다. 잠시~~감수성 예민했던 그 시절이 기억난다.(아~~그리워라 나뭇잎만 굴러가도 깔깔 웃던 그시절이~~~ㅋ)
내리교회--내리교회는 1885년 인천에 도착한 아펜젤러 일행이 인천지역 선교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1891년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내리교회의 존스목사와 최초의 내리교회 한국인 목사(이름?)상과 아펜젤러의 상이 교회건물앞에 세워져 있다. 지금의 교회는 1985년 교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신축된 건물이다. 100주년이 넘은 교회이지만 신축한 건물인지라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그치.. 역시 옛것이 좋은 것이여~~~얼쑤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는 현재 건물을 보수하는 중이라 들어가 볼 수 없어서 겉 모습만 보고 돌아섰다. 1890년 인천에 도착한 영국 해군 종군 신부였던 코프주교가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였고 그와 함께 했던 랜디슨이 1890년 성 누가병원을 개설하여 사용되었던 자리에 세워졌다.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완공되었고 외벽을 화강암으로 지어진 중세풍의 석조 건물이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튼튼한 건물이라 그 안을 보고 싶었는데 공사 중이라 아쉬웠다.
홍예문--1905년 일본공병대에 의해서착공되어 1908년 완공. 화강암을 쪼아서 약 10m높이로 쌓았는데 이 문을 축조한 이유는 그 당시 포화상태였던 일본인 조계지가 혼잡해지면서 아래로 만석동 방향으로 확장하여 물자수송을 빠르고 편리하게 운송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참 놀랄만한 일본인들이다.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돌덩이도 삼년을 뚫어 이처럼 견고한 문을 만들었다. 요즈음 저들이 하는 꼴을 보면 참 가관이로소이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을 보면 그 날카로운운 발톱을 몰래 감추고 있는 삵쾡이가 연상되어 진다. (으휴~~언제 또 할퀼지 모르지 조심해야지...)
맥아더 장군동산-- 참 오랫만에 보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다. 내가 이 동상을 첨 본것이 중학교 때인 것 같으니 벌써 몇 십년 전인가? 우와~~넘 오랜시간이 지나 셀 수 없는?? ..ㅋㅋ
그 당시는 자유공원을 가려면 동인천행 기차를 타고 정말 마음먹고 와야만 하는 먼길 이었다. (참 세월은 엄청 빨리 흘러가 고 ....)
맥아더 장군을 평가하는 여러가지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중인지라 더 먼 훗날에는 정확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기를 바래 본다. 다만 내가 아쉬운 것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없어진 아름다운 슬픈 역사의 건축물들이다.
정말 사진속의 그 건축물들은 ~~아름다운 외관~~그 멋진 건축물들이 있었더라면~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속으로 꿀꺽 삼키며 다음 목젹지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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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조선과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서구와 맺은 최초의 국제조약이었다. 그 역사적의의를 위해 1982년에 건립되었다. 인천의 랜드마크였던 존스턴 별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그 건물은 인천상륙작전의 포화로 사라지고 그자리에 하늘을 찌를듯한 위압적인 조형물 만이 남아있다. 뾰족하면서 거대한 조형물이 미국의 위세를 드러내는 듯하여 그다지 기분이 상쾌하지 만은 않았다.(내 기분 탓이 겠지만..)
사진으로 보는 존스턴 별장은 영국인인 존스턴의 여름별장으로 1936년에는 인천부가 구입하여 인천각이란 영빈용 호텔로 이용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우리의 아픈 시대~~사라진 건물들~~ㅜ ㅜ
제물포구락부 안의 모습-- 지금 보아도 클래식한 내부 공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멋진 공간이었다.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각국의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던 모습들이 눈에 삼삼이 떠오른다.~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물포구락부--1901년 1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 되어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조계지의 당사자들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방편의 하나로 신동공사라는 기구를 세우고 회원국의 교류의 필요성에 따라 회관을 신축하기 위해 사바찐에게 설계를 맡겨 건축되었다. 사바찐이라는 사람은 그 당시에 유명한 건축가로 이외에도 각국공원 ,인천해관, 세창양행사택, 인천최초의 부두 등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청과 일본 조계지 경계 계단--이곳을 기준으로 청의 조계지와 일본의 조계지가 나누어 진다.
청국조계지 건물
일본조계지 건물
청 일 조계지 경계 계단- -조계란 일정 지역범위 안에 외국인전용 거주지역을 설정 지방행정권을 외국인에게 위임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계단을 경계로 하여 왼쪽은 일본조계지 오른쪽은 중국조계지였다. 건물들의 외관을 보면 확연하게 이쪽이 중국이구나...저쪽이 일본이구나를 알 수있을 정도로 다른점이 드러난다.
공화춘--1911년 우희광이라는 사람이 지금의 위치에서 음식점과 호텔을 운영하였던 혼합형 숙식업소였다. 일제강점기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짜장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들어가면 짜장면에 관한 여러가지 모형과 만드는 방법 ,기구,등 짜장면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참고로 입장료 있음)
화교 중산학교-- 1884년 설치된 청국조계지 내의 청국영사관이 있던 자리로 화교 2.3대들의 교육을 위해 1934년 건립한 2층 조적조 건물이다. 교정이 아담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학생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에는 워낙 중국이 세계에서의 위치가 상당한 지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입학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중구쳥--1883년 일본조계지 내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일본영사관이 있던 자리로 이사청, 인천부 청사로 사용되어지다가 1933년 지상 2층으로 신축되었고 광복이후 인천시청으로 이용되다가 1985년 부터 중구쳥으로 사용되고 있다.수평으로 긴 띠창이 특징인 건물이다.
일본 제 1은행지점 (인천개항박물관)-- 1883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 출장소로 개설되었다.1883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초기에는 해관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했으며 점차 예금과 대출 등 은행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광복후에는 한국은행 인천지접으로 변경되었다가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줄입구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구성하고 있는 절충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외관으로 보아도 은행 건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튼튼한 느낌이었다. 뒤쪽으로 들어가 보면 금고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는데 가히 그 두께가 상상을 초월한다....(그려 은행벽이 그래서 높다고 하지 아마도 ㅋㅋㅋ)
구인천일본58은행인천지점-- 1892년 일본 58은행은 인천전환국에서 주조되는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을 목적으로 1892년 인천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후에 야스다 은행으로 개편되었고 광복후에는 조흥은행 ,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사옥등으로 이용되었고 현재는 인천 요식업 조합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풍 벽돌조 2층 건축물로 오르내림식의 창문을 비롯하여 벽체와 기둥이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외관이 다른 건물보다 무척 아름다웠는데 건물 앞에 크게 가로막고 있는 요식업조합간판이 외관의 아름다음을 덮어버리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간판도 아름답게 서 있는것이 아니라 건물을 가로막듯이 떡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라니~~아니 왜? 이 건물을 인천시에서 사들이지 못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도 당연히 매입하여 개항기 인천의 남아있는 건물들의 연결된 모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 둘러본 인천 개항길의 근대적 우리 민족의 슬픈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은 비록 우리의 아픈역사이긴 하지만 엄연한 우리의 역사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있는 근대적 건물들을 잘 보존하여 우리의 후세들에게 알려 주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았던 슬픈 역사를~~~아직도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우리의 땅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저들이 있기에 우리의 아픈 역사는 다시금 생생이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다. 힘이 없는 나라는 어떤 지경을 당하게 되는 지를 ...힘이 없던 나라에서 자행된 저들의 횡포를.......
힘들었던 일정이지만 보람찬 하루가 된 것 같아서 마음 뿌듯함으로 오늘의 투어를 마감한다.
끝으로 이 일정을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행복하소서~~~ㅎ
첫댓글 자연인 샘^^* 인천지역 답사후기 실감나게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진이 첨부되어 있으면 더 실감나고 더 멋진 후기가 될텐데 사진이 가을바람 따라서 외출을했는지 배꼽만 보여 아쉽습니다. 얼능 사진 첨부해 주시와요?...ㅋㅋㅋ
저만 안보는게 아니죠? 글만 읽어도 하루 일정이 보이기는 하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죄송~제 눈에만 보이게 올렸네여~~~다시 올렸는데 ....이제 보이시나요?(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ㅋㅋㅋ)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good입니다.쌩유!
그날 선물도 준비해 주시고 차량 봉사도 해 주시고 감사했습니다~~^^
녜~예, 착한마음으로 보니 잘 보임니다요~ㅋㅋㅋ. 답사에는 역시 사진을 첨부해야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요? 사진없음과 있음의 작은 차이가 큰 효과를 발휘하는 좋은예 입니다요? 수고했어요 그리고 감사드려요...
녜~~사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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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글과 사진 고맙습니다. 저도 두해 전에 다녀왔었는데, 기억이 희미~하네요. 몇 군데는 제가 못가본 곳이군요. 지난 여름 근처 신포시장에 들러 민어회를 먹고 온 기억만이 생생...
신포시장에 닭튀김이 유명하지 않나요?
애고 이제 제 맘도 착해졌나보네요 보이네요. 동참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약도 오르네요 특히 짜장면 박물관....
선생님~~보이시면 착한사람 인정!!
77년~~~까마득한 그 때 그시절이 그립네요~~
아~ 인천답사.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답사였지요. 개항 당시 인천의 모습을 생각하며, 당시 건물을 확인하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인천 옆 동네 안산도 인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여수 엑스포 가듯이 인천 구경 가지 않았을 까요? 안산이 개화의 영향을 빨리 받았던 것도 지리적 영향이 컷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답사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 인천 조계지는 일본 큐슈의 '나가사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이는 잘 정비되어 있고 없고의 차이뿐.
자연인 선생님, 오늘 11월 10일(토)에 발견해습니다. 인천 다녀와서 답사기를 기다렸는데 이렇게 사진과 함께 올리신 것을 몰랐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동기 동창 수녀님을 만나신 것만 기억에 남는데 언제 그렇게 사진과 설명을 잘 쓰셨는지요. 기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