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라는 대저택은 1776년 조선 영조 52년에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99칸의 대저택이다.
이곳의 사랑채와 안채의 중간 지점에 쌀뒤주 하나가 놓여 있는데, 둥그런 통나무 속을 비워내어 만든 뒤주로 하단부에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ㅡ'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구멍을 열 수 있다는 뜻, 누구라도 와서 쌀을 마음대로 퍼갈 수 있는 뒤주였다.
류씨 집안에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사용한 도구였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주 대상이었지만, 지리산 일대의 과객들도 조금씩 쌀을 가져가곤 했다.
왜 주인이 직접 쌀을 주지 않고 별도로 뒤주를 만들어 알아서 가져가도록 했을까?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서다. 주인에게 직접 쌀을 받아가려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곳간에 쌀뒤주가 있다면 주인과 대면하지 않고도 편안한 마음으로 쌀을 가져갈 수 있다. 1년에 200가마를 수확해 이렇게 나가는 쌀이 약 36가마 정도니 20%를 이웃에 기부한 셈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굴뚝이다. 이 집의 굴뚝은 높이가 1미터도 안 된다. 공학적으로는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술술 빠지지만 일부러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설계했다.
쫄쫄 굶고 있는 사람들이 부잣집 굴뚝에서 연기가 펑펑 올라가는 것을 보면 자연히 증오와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동학농민운동과 여순반란사건,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운조루가 불타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