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 민중의소리
"쌀값이 한 가마니에 17만원에서 12만원으로 떨어졌는데도 우리들의 울분을 받아 줄 정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몰아내고 우리 뜻을 대변하는 대통령.농림부장관을 세웁시다!"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직전 현장발언 무대에 올라온 농민들에 주어진 시간은 2분이 채 안됐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이성기씨는 마이크를 잡더니 "대통령을 몰아내자"며 거침없는 울분을 토해냈다. 논산에서 온 여성농민 이길성씨도 "이 추운날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하겠느냐"며 한탄했다. 목표가격제로 5년째 17만원에 묶여 있던 쌀값이 올해들어 12만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농민단체들이 올해 초부터 우려했던 쌀값하락은 이미 가을부터 현실화 돼 밥 한 공기값은 껌값 500원 보다 못한 200원이 됐다. 수급조절에 실패한 정부는 이에 대해 공공비축물량을 지난해보다 3만톤 줄이거나 수입쌀 소비 활성화 정책을 펴는 등 거꾸로 가는 대책을 내놓고 있어 농민들은 울분이 터져나오는 실정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쌀전통주, 쌀국수에 이어 쌀종이를 만들자는 발언을 꺼냈다가 농심에 불을 질렀다.
농민대회에 참여한 3만여 농민들은 "땀흘려 뼈빠지게 농사지었을 뿐인데 쌀대란이 농민들 책임이냐"라고 성토했다.
"쌀값 보장" 3만여 농민들이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모여 이명박 정부가 쌀값대란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13개 농민단체 연합체인 농민연합 윤요근 상임대표는 "신자유주의에 빠진 몰상식한 위정자들에 의해 우리가 죽어라 가꾼 농산물들은 풍년 되면 똥값, 흉년이 되면 수입 농산물 범람으로 똥값이 됐다"며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말 그대로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전략시킨 게 정부"라고 외쳤다.
"한여름 땡볕아래 일했고, 겨울에는 손발이 텄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애지중지 가꿔 온 쌀이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WTO, FTA, DDA에 박살나기 전부터 쌀값 대책을 세우라고 했지만 이 정부는 귓구멍을 막은 채 외면했습니다."
특히 농민들의 분노는 지난 대선에서 농가부채동결법, 농어민소득특별법을 공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쏟아졌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이 정부와 싸움을 펼쳐 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농민들이 잘 살게 해주겠다고 얘기했는데.."라며 말을 이으려 하자 이미 대부분 일어서서 울분을 토하던 농민들 사이에는 "말로만, XX할 말로만!", "X새끼" 등 거친 말들이 추임새처럼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김경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도 이 대통령이 "겉만 번지르르한 말로 농민들을 우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쌀대란을 해결하지 않으면 정권심판 선봉에 농민들이 설 것"이라고도 했다.
"쌀대란을 해결하지 않으면 농민들의 도도한 물결이 청와대로 향할 것입니다. 부자들만 세금 깎고, 4대강에 퍼붓고, 각종 서민예산 삭감했습니다.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서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년에는 지자체 선거가 있으니 우리 농민 위하는 후보를 똑똑히 보고 뽑아야 합니다."
당장 쌀값 폭락을 해결하기 위해 이날 대회에서 농민들이 요구한 것은 대북 쌀지원 재개였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평균 40만톤에 달하던 대북 쌀지원은 물량을 조절해 가격을 유지하는 효과를 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쌀지원이 중단되면서 그나마 이전 정부까지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던 쌀값이 자유낙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 민중의소리
카톨릭농민회 배삼태 회장은 "남아도는 쌀을 북으로 보내면 간단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 국민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북녘 동포도 동포로 보지 않아 한 톨도 보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북 쌀지원이 쌀값 폭락의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강조한 한도숙 의장도 "더 나아가 대북쌀지원을 법제화함으로써 그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중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정치인들도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원리만 말하는데, 식량주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더"이상 풍년이 서러운 세상, 풍년이 서러운 농민을 우리가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통령 농사에서 종자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5년 농사가 망해 버렸다"며 "농민들은 앞으로 선거농사를 지을 때 종자 선택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이 대통령이 부자들에게 엄청나게 세금 깎아주고 우리 농민들에게는 쌀수매가, 농가소득과 우리 농민 평균수명을 깎아줬다"고 말했다.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여의도 문화마당을 나서 국회 앞까지 행진했다. 그러나 끝내 이날 대회 내내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우리 농민들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쌀대란 해결하라"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 민중의소리
분노한 농민들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의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그나마 이날처럼 1년에 한 번 서울에 올라와 대규모 집회 열고 소리 한 번 지르고 내려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농민대회가 열린 여의도광장 곳곳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마시는 농민들이 많았다.
전남에서 올라왔다는 50대 남성은 "쌀값이 작년보다 무려 2만3천원이나 떨어졌다"며 "비료값, 기름값은 엄청나게 올랐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농민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4만평을 짓고 있는데 쌀값 폭락으로 무려 5천만원이나 피해를 봤고, 올해에만 1억5천만원의 빚을 졌다며 혼자 소주를 마셨다.
충남 보령에서 온 김00(66세)씨는 "농자재값과 생산비가 워낙 비싸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되려 쌀값이 떨어뜨리면 우리는 죽으라는 것"이냐고 분노했다. 김씨는 "복합비료값이 엄청 올라서 너무 힘들다. 50마지기(약 1만평) 농사 지으면 1천300만원이 떨어진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젊은 사람 노동력도 써야 하는데 이런 것 계산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는 올해 영농자금 지원받고 농기계 대여 하면서 되려 1천만원이나 빚졌다"며 "농사지어봐야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몸만 버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북 구미에서 온 이재하(74세)씨는 "농협이 가장 나쁜 놈들"이라며 기자들을 상대로 하소연을 했다. 그는 "농민을 돕기 위해 만든 농협, 농민을 도와야 할 농협이 오히려 농민을 잡고 있다. 쌀값 폭락의 주범이 농협이다"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부산에서 온 윤희석(69세)씨는 이명박 정권이 강행하는 4대강 사업의 직접적 피해자였다. 윤씨는 부산 낙동강 하천부지에 논이 있어 농사를 지어왔는데 4대강 사업 공사한다고 농사를 못 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아니 그동안은 하천부지에 운동장 만들고 다 하면서도 농사를 지었는데 4대강 사업한다고 못짓게 하는게 말이 되느냐"며 "이명박이 나쁜 놈이다"고 말했다. 윤씨는 같은 처지 때문에 함께 농민대회에 참석한 동료 3명과 소주만 마셔댔다.
서울에 사는 김길수(57세)씨는 자신이 농사를 짓진 않지만 동생 둘이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농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그는 "나는 서울에 살아 쌀을 사먹는데 사먹는 입장에서도 쌀값이 싼데 파는 농민들은 얼마나 더 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쌀값 폭락을 막으려면 북한에 지원해주고, 소말리아 등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 보내줘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쌀지원을 막고 있어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쌀대란 해결하라"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 민중의소리
"쌀값 폭락, 생존권 사수"ⓒ 민중의소리
3만여 농민들이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모여 이명박 정부가 쌀값대란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 민중의소리
"쌀대란 해결하라"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 민중의소리
3만여 농민들이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모여 이명박 정부가 쌀값대란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쌀값 폭락! 정부는 근본적 대책 마련하라!"ⓒ 민중의소리
"쌀대란 해결, 농협개혁 쟁취"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 민중의소리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쌀가마니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가져온 쌀가마니가 불타고 있다.ⓒ 민중의소리
"쌀대란 해결"ⓒ 민중의소리
"농가부채 해결!!, 쌀대란 해결!!"ⓒ 민중의소리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한 정치인들ⓒ 민중의소리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이 국회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여의도 국회 앞까지 행진한 농민들이 풍등을 날리고 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