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오프와 읍참마속(泣斬馬謖)
제갈량이 총애하던 부하 마속을 벨 때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컷오프와 읍참마속은, 본래 서로 다른 자리에서 태어났으나 오늘날 조직의 책상 위에서는 같은 잉크로 인쇄된다. 하나는 효율의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대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잘라낸다. 그러나 잘려 나가는 쪽에서 보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칼날의 각도만 다를 뿐, 떨어지는 것은 늘 같은 인간의 시간과 존엄이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위기는 찾아오고, 위기가 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컷오프’라는 현대적 의식이다. 숫자로 환산된 인간들이 엑셀의 셀에서 삭제되며, 그 과정은 놀랍도록 담담하다. 감정은 제거되고, 판단은 데이터로 위장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이 시대의 가장 세련된 면죄부다.
반면 ‘읍참마속’은 눈물의 서사를 동반한다. 대의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베었다는 이야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그 눈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종종 모호하다. 눈물은 때로 결단의 진정성을 증명하기보다, 결단의 잔혹함을 미화하는 장식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방식 모두 결국 권력의 중심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잘려 나간 자리는 곧 잊히고, 남은 자들은 침묵을 학습한다. 컷오프는 공포를, 읍참마속은 신화를 남긴다. 하나는 차갑게, 하나는 뜨겁게 사람을 길들이지만, 도달하는 곳은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무엇이 더 정의로운가. 숫자로 사람을 지우는 냉정함인가, 눈물로 사람을 베는 비장함인가. 어쩌면 진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늘 누군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만 위기를 해결하려 하는가.
칼을 들지 않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아직 배우지 못한 마지막 리더십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