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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7.30 03:30
대변 이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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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진봉기
우리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도움 되는 미생물도 있고, 해로운 것도 있죠. 도움 되는 미생물은 소화를 돕거나 면역 기능을 조절해줘요. 때로는 비타민 같은 영양분을 합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장내 미생물은 '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말해요.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유산균이 대표적인 장내 미생물입니다. 유익한 장내 미생물이 많을수록 장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죠. 반대로 해로운 장내 미생물이 많다면 제대로 소화가 안 돼 설사를 하거나 변비에 걸리지요.
유전자 가위·바이러스로 장 건강 지킨다
프랑스의 한 생명과학 기업에서 바로 이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직접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해로운 장내 미생물들의 유전자를 바꿔 더 이상 몸에 해롭지 않도록 만드는 거예요.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물의 DNA(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이는 기술입니다. 널리 쓰이는 기술이지만 지금까지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에는 쓸 수 없었어요. 해로운 장내 미생물만 골라서 유전자를 편집해야 하는데 주변에 있는 엉뚱한 세포, 가령 장 세포의 유전자까지 편집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를 이용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미생물)를 감염시켜요. 연구진은 해로운 장내 미생물만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를 만들고, 이 바이러스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유전자 가위는 박테리오파지가 장내 해로운 미생물에 침투한 이후에 작동하게 되지요. 유전자 가위가 다른 멀쩡한 세포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한 것이에요.
이를 통해 유전자 가위는 항생제에 내성을 갖거나 독성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장에 해롭지 않은 유전자를 넣는 등 편집할 수 있게 돼요.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한 결과, 연구진이 만든 박테리오파지는 쥐의 장 속에서 최소 42일간 살아남아 해로운 장내 미생물 93%가량을 바꿨다고 해요.
건강한 사람 대변 이용해 치료하기도
이번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 장내 미생물 분포를 바꾸는 방법은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입으로 섭취하거나, 곧장 장으로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입으로 섭취하는 건 영양제로 인기 좋은 프로바이오틱스가 대표적이죠.
곧장 장으로 넣어주는 방법은 '대변 이식술'이에요. 대변 이식술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 있는 미생물을 장 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걸 말해요. 건강한 생물의 대변에는 장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 장내 미생물이 들어있는 것을 이용하는 거예요. 더럽다고 생각되는 대변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니 신기하지 않은가요?
대변을 그대로 사람 몸에 넣는 건 아니에요. 우선,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합니다.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정수해서 쓰듯 대변에서 환자 몸에 필요한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추출하는 거지요. 이렇게 추출한 장내 미생물을 내시경 등으로 장에 직접 뿌려주거나, 약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대변 이식술은 1958년 미국의 한 외과의사가 처음 시도했어요.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더러운 걸 걸러낸 뒤 장염 환자에게 이식했어요. 당시로선 충격적인 방법이었지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후 2010년대에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이라는 세균으로 인한 장염에 대변 이식술이 특히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여럿 발표됐습니다.
이 장염은 항생제 등 약물 복용으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이 과잉 증식하면서 생긴 것이에요. 외부에서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넣어주면 비교적 쉽게 장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거죠. 현재 대변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이용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이 장염이 유일해요. 하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질병 치료에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요. 현재 염증성 장 질환이나 과민성 장 증후군 등에 대해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다양한 국적 사람들의 대변 모으는 프로젝트
대변 이식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변에서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추출하는 것이지요. 장내 미생물은 식습관과 생활 방식에 영향을 크게 받아요. 나라마다 민족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지요. 현재는 집단마다 어떤 장내 미생물을 가졌는지 과학자들이 알아내고 있는 단계라고 해요.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세계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변 시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국제 미생물 보존 프로젝트'예요. 30여 국가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대요. 이곳에서 수집한 대변을 통해 알아낸 장내 미생물 자료는 주로 미국과 유럽 쪽에 집중돼 있다고 해요. 그래서 아르헨티나와 이라크,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대변 시료를 더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장염은 물론 장내 미생물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비만과 아토피 등의 질병 치료를 위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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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희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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