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질의 추억입니다.
제가 그동안 생선회 이야기를 써오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한국과 일본의
생선회 문화입니다. 그것은 곧 한국 횟집과 일본 횟집의 차이이기도 한데요.
이 둘의 문화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날은 일본에서 놀러온 두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횟집 문화를 경혐시켜 줌으로써 흥미로운 여러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 한국의 생선회 문화를 경험하더니 아주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한국에서 회를 먹고 난 일본인의 반응, 어땠을까요?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시면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서울에 있는 어느 횟집입니다.
주로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횟집이다 보니 주말보단 오히려 평일에 예약해야만 자리에 앉을 정도인데요.
때마침 이 날은 금요일 저녁이여서 미리 예약을 한다고 했지만 실내엔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실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동생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두 친구. 아니 두 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보다도 두살 위니깐 ^^
이 분들이 3박 4일간 한국을 방문할 때 저희집은 홈스테이가 되어줬고 제 동생은 이 분들과 함께 서울 여기저기를 다니며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맞이한 서울의 마지막 밤.
특별히 회를 좋아한다는 이분들과 함께 제가 이용하는 단골 횟집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깔리는 기본 찬은 전복죽과 홍합탕, 생선무 조림, 그리고 요새는 구경하기 힘들지만 과거엔 너무 흔하고 저렴해서 서민들이 주로
찾았다는 청어가 구이로 나왔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일본인 친구들, 음식이 조금 생소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요.
다만 냉수성 어종인 청어는 일본에서도 구경하기 드물다며 몇 점씩 드시는 모습이였고 전복(아와비) 내장으로 죽을 쑨건 특이하다는 반응입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선 '간빠이'가 아닌 한국식으로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힙니다. ^^
문화의 차이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오갔지만 특별히 기억났던 것은 술 따르는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아는 내용인데 일본은 '첨잔(添盞)' 문화라해서 잔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술을 채워줘야 예의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실례라고 했더니 진지하게 듣던 이 친구들이 이러한 문화 차이에 대해 흥미롭다는 반응입니다.
이후 일본인 친구들, 얘기하는 내내 우리들의 술잔에서 시선을 떼지 않더군요. 왜그런가 했더니..
"술잔이 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고 합니다. ^^ㅋㅋ
일반적으로 횟집에서 시킬 수 있는 메뉴는 우럭, 광어, 도미 그리고 모듬회 중짜, 대짜 정도 되겠지요.
하지만 이곳은 1인 얼마씩 하는 사시미 코스가 주력입니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놀랬던 부분 중 하나가 있습니다.
일본은 사시미나 여러 요리들을 단품으로 주문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횟집들은 하나를 시키면 거기에 딸린 부요리(스끼다시)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음식이 계속해서 추가되는 시스템이 그들 눈에는 생소하지만 굉장히 인심이 좋고 푸짐하다는 반응이지요.
첫 접시로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싱싱한 해산물들이 가득 담겨져 왔습니다.
해삼, 멍게, 소라, 개불에 이제는 끝물인 과메기도 보입니다. 과메기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신기해 하면서도 한입 먹고는 입에 안맞는지 그 담부턴
잘 안먹더군요. ㅋㅋ 아직은 우리가 뭘 시켰는지 모르는 일본인 친구들.
그리곤 첫번째 접시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메인음식이 스고이네(근사하네요)" 하는 반응입니다.
"이거 메인 아녀요 ^^;"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것이 메인이 아니라구요?"하며 반문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눈엔 딱히 놀라울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제 메인인 생선회가 나왔습니다.
수북하게 쌓아 올린 회를 보더니 밑에 깔린건 처음 본다며 무엇이냐고 묻길래 대답을 해줬지요.
해초성분과 녹말로 만든 '천사채'라고 부르는 것인데 보통 샐러드 재료로도 사용하지만 이렇게 횟집에서 내어오는건 재활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같이 드시진 말아달라고 당부를 드렸습니다. 또한 회 자체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의 눈에는 모든게 새로워 보였나 봅니다.
우리는 우럭이나 광어처럼 씹힘성이 좋은 흰살생선회를 선호하지만 일본인들은 방어, 참치와 같은 붉은살 생선회를 선호한다는건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이곳 회는 손님을 받기 전에 잡아다가 3~4시간 정도 숙성했기 때문에 평소 우리가 먹는 활어회와는 또 다른 찰진 식감과 감칠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몇 시간이 아니라 무려 2~4일간 숙성시킨 회를 선호합니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보단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들면서 진하게 베어
나오는 맛을 좋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활어회라던가 이렇게 단시간만 숙성시킨 회는 낮설면서 맛에선 싱겁다고 느낄만 할텐데요.
자기네 나라에서 먹은 회도 좋지만 이렇게 타국에서 먹는 회도 상당히 특별해 보인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입니다.
회의 구성에 대해선 제가 일본어로 설명을 해줬습니다.(일본어를 잘 못하지만 생선명칭과 관련해선 잘 알기에)
나오는 구성은 도미(참돔)와 광어입니다. 이것은 또다시 등살과 뱃살로 나뉘며 광어의 경우 '엔가와'로 불리는 지느러미 살로도 나뉘겠지요.
일본인들이야 참돔(마다이)회를 흔하게 접하므로 그리 새로울 게 없지만 의외로 광어(히라메)회는 귀하고 비싼 탓에 맛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광어가 가장 싸고 흔하지만 일본은 그 반대였어요.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광어 양식 기술에 있어선 일본을 능가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겠지요.(지금은 양식 광어 품질이 워낙 좋아 일본으로 수출합니다.)
여깄는 절반이 광어라고 하자 "히라메? 혼또" 하더니 일본에선 비싸서 맛보기 힘든 회를 한국에선 이렇게 푸짐하게 나오니 그 또한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특별히 이 집 광어는 4Kg가 넘어가는 대광어만 쓰기 때문에 그 감칠맛이 일반 광어에선 맛볼 수 없는 매력이 있지요.
어쩌면 이 분들 오늘 날 제대로 잡은 겁니다. ^^
초고추장에다 회를 찍어 먹는 아키상
무엇보다도 한, 일 양국간에 회를 먹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소스'에 있었습니다.
일본의 선술집에서 사시미를 주문하면 오로지 간장만 나오는데 비해 한국의 횟집에는 간장부터 시작해 초고추장, 양념된장까지 다양하게 나오니
구미에 맞게 찍어 드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양념된장과 초고추장을 모릅니다.
보기에도 새빨갛고 매워 보이는 초고추장. 이것을 찍어먹는 모습에 급관심을 보이더니 자기도 한번 찍어먹어 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먹고 난 반응은 어땠을까요? ^^
아키상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캠코더로 담아가기 위해 동생에게 찍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곤 이어진 초고추장 회 시식. 이후 두 팔을 번쩍 들더니 "생긴것관 달리 맵지는 않더라"하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옆에 있던 아사상이 초고추장에다 회를 찍어서 먹으려는 찰나 아키상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뒤늦게서야 매운 맛이 받쳤는지 표정을 찡그리는 아키상.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 먹은 소감은 한마디로..
"지옥의 맛? ㅋㅋ"
맵기도 하지만 시큼한 맛이 강해 회를 먹을때 집중하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이제까진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맛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해요.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회를 어떻게 먹을까?
물론 간장에다 찍어 먹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와사비를 푼 간장에다 찍어 먹지만 일본에선 그렇게 안한다고 해요.
회 한점에 와사비만 따로 올린 후 아무것도 섞지 않은 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초고추장과 궁합이 잘 맞는 해삼, 멍게, 소라와 같은 해산물은 뭘 찍어 먹을까?
날라오는 대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해산물도 회와 마찬가지로 "와사비와 간장"에다 찍어먹는다고 해요.
사실 우리로선 그닥 맛있을꺼라 생각하진 않지만 우리처럼 고추장 소스 문화가 없는 나라다 보니 간장이 유일한 소스 역할을 하나 봅니다.
중간에 '개불'을 보고 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이 일본인 친구들, 썰어져 나온 개불을 보자 도대체 이게 뭐냐? 하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장난끼가 발동, 일단 한번 드셔보시라고 했지요.
꿈틀거리는 개불을 집고선 입에 넣기전에 잠시 주저하는 일본인 친구들..
이것은 아주 쫄깃거리고 맛있는 거라며 입에 넣으면 뭔지 말해주겠다고 했지요. ^^;
그래서 개불을 입에 넣고 씹었는데 이후 이어진 저의 한마디에 이 친구들 혼비백산하였습니다. ㅋㅋ
"음 상당히 쫄깃거리긴 한데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뭔가요?"
"미미즈(지렁이) 입니다."
"미미즈? 혼또?"
참석자 전원 자지러지기 시작..
농담이라고 하자..
그럴줄 알았다며, 하지만 미미즈(지렁이)라고 해도 이곳 사람들이 이렇게 즐기는 걸 보면 뭔가 특별하겠거니 하고 생각할 참이였다고 하네요 ^^ㅋㅋ
이어진 동생의 만담.
몇 년 전 아키상이 결혼할 때 동생은 일본으로 날아가 결혼식에 참석했던 추억을 보이며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완 달리 결혼식을 올릴때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면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요.
그만큼 이 둘의 사이가 형제처럼 각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생은 그곳에서 한국가요로 축가를 불러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지요. ^^
이것은..일본에서 있었던 일 같은데 누가 저런 낙서를 음 ㅋㅋ
코스요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번엔 초밥이 푸짐하게 담겨져 나왔는데요. 초밥하면 또 이 친구들의 나라가 본고장이라 하겠지만 한국에서 먹어본 초밥도 아주 각별하다고 합니다.
참치나 방어와 같은 초밥이 많은 자기네 나라완 달리 한국은 흰살을 많이 쓴다는 점이 일본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해요.
하나씩 집어서..
초밥으로 건배를 하구요 ^^
초밥까지 먹고나니 슬슬 배가 불러오는데 도미 대가리와 연어, 열빙어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져서 나오자 또 한번 놀라는 일본인 친구들.
"이제 충분히 배 부른데 도대체 음식의 끝은 어디까지입니까?"
라며 "이것을 일본에 가져와서 장사하게 된다면 아마 그 지역은 난리가 날 것" 이라는 반응입니다.
마지막으로 매운탕과 마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빨갛게 끓여져 나온 매운탕은 자기네들이 먹는 '지리(맑은탕)'과는 매우 달랐지만 국물이 너무 맛있었다고 해요.
이 집 매운탕은 맵거나 진하지 않아 개운한 맛이 있어 이분들 입맛에 잘 맞았던거 같아요. 나중엔 후루룩~하면서 그릇을 들고 거의 마시더랍니다. ^^
오늘 너무나도 즐거운 식사였다고 하는 아키상과 아사상.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본에도 수많은 횟집들이 있지만 이곳처럼 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못봤다며 이렇게 푸짐하고 다양한 음식이 코스로 깔리는 건 처음
본다고 합니다. 특히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노상에서 먹는 분위기가 너무나 색다르고 독특했다며 한국에서 많은 음식점들을 방문했지만
오늘 먹은 식사자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일본인 친구들의 말에 테이블 분위기는 순간 숙연해졌는데..
"시원한 밤공기,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있는 이 독특한 밤 거리를 배경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훌륭한 음식을 접하게 되니
너무나 기뻤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
비록 문화도 다르고 살아가는 형태도 다른 친구들이지만 '음식'이란게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한국 특유의 정 문화와 함께 말이죠. ^^
그날 밤 동생은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홍대의 클럽문화를 체험하게 해주면서(?) 밤새도록 놀다 파죽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불태우고 난 다음날 아침.
"그날 저녁, 회와 관련된 이야기에 정말 즐거운 시간이였다"며 형님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곤 아사상은 특별히 제게 줄 선물을 사기위해 일부러 백화점엘 들렀다고 해요.
선물을 받아본 저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습니다.
아사상이 주고간 선물은 사케인데 야마구치현에 살고 있는 아사상은 자기가 사는 지역이 대표하는 특별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며
"이것은 꽤 유명한 지역고장 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 저는 지난번 진품 다금바리에 이어 이후에도 귀한 자연산 회를 시식할 때 그것을 빛내줄 술을 찾고 있었는데 아사상이 이런 술을
선물로 줄 줄은 몰랐던 거지요. 알고보니 이 술은 야마구치현을 대표하는 사케로 닷싸이(獺祭)라고 하는 술인데.
놀랍게도 2010년 일본 사케 랭킹 1위를 차지했던 녀석으로 도정률 50%의 준마이 다이긴죠(사케 중 최고급에 속하는)급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서 사먹기는 결코 쉽지 않은 가격대. 괜히 저 때문에 출혈이 있는건 아닐까..
아사상에게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됐는데 지금은 개봉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특별한 생선회가 들어오면 함께 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올 연말에 야마구치현으로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때라도 감사의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두 분이 한국에서 즐거운 추억거리를 많이 갖고 돌아가셔서 제 마음이 참 뿌듯합니다.
음식도 문화도 다른 우리들이지만 함께 했던 추억은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