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5편은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을 노래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편 전체는 1편이 전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의인들의 복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믿는 그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요6:57)대로 묵상으로 그리스도를 먹을 수가 없으면 그 신앙이
본 괘도에 올라가지 못한 겁니다. 율법대로 하라 하지 말라 하는 계명을
범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주께서 나를 먹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을 따르지 못하여 주를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근데 이 말씀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한 번 보세요. 주님의 음성은
듣고 있으나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등 따스하고 배부른 신앙놀이만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형입니다. 기독교는 말씀과 성례전이
그 표지라고 말은 하면서 왜 그리스도를 먹지 못할 까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지 않는 안티그리스도인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옷 입지
못해 벗은 자들이며 그리스도를 먹지 못하여 배부르다 하나 가련한 교회가 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말 그대로 그 분을
경외함으로 존중하고 앙망하는 것이 바로 신앙(信仰)생활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시1편) 두 마음을 가지고 우왕좌왕 오락가락합니다.
1절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우러러 본다는 말은 앙망한다는 말입니다. 고개만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심 곧 영혼이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나의 육신도 따르게 되는 겁니다.
전 인격과 온 몸이 다 주를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과 진리와 생명(요14:6)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느냐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본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2절의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부끄럽지 않게 하십니다. 3절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를 이기도록 하십니다. 어떻게 주를 앙망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또 여호와를 바라고 기다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4-5절에 대답하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먼저 주의 도를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계시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순종하므로 성령이 임재하셔서 그 길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하고 간구합니다. 성령은 카운셀러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왕세자에게 가정교사가 붙듯 성령이 주의 진리로 우리의
가정교사가 되십니다. 주의 도, 주의 길 곧 그 방법과 수단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진리를 구하고 따르는 것이 바로 매일의 우리의 구원인 겁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므로 그리스도를 경외하게 하시므로(사11:2) 성경을 통해
진리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십니다(딤후3:16)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은 택할 길을 배웁니다. 곧 센스(sense)를
주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야말로 자유의지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을 좇아 주께로
나아갈 것이냐 육신을 좇아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갈등이 있습니다(롬8장)
그러나 성령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므로(요16:14) 서서히
영을 좇아 살아가도록 성향이 바뀌는 겁니다. 신앙은 성향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육신과 세상으로 기울고 있느냐 주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13절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로 주와 하나가 되는 평강과 자손들의 복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14절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은 의논하시고 카운셀러가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그 하나 되게 하신 계명을 지키면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십니다(요15:14-15)
그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시므로 하나가 되는 성령의 약속이십니다.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15절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구원을 노래합니다. 벗어나게 한다는
말이 바로 구원입니다. 허공에 대 놓고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는 회개와 세례(침례)를
통해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의 자리로 옮겨 앉으면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므로 진리 안에서 보좌에 앉으신 주를 앙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성령이 오신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받도록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행2:21) 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로 말씀이 임하여 그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믿고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자로
시인하고 주를 앙망하며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므로 구원을 얻습니다(롬10:8-13절)
첫댓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경외함으로 존중하고 앙망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께 난 길을
띠리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앙망할 수 있음은 놀라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