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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었어요 스크랩 케루빔과 세라핌에 대하여..
안 엘리지오 추천 0 조회 126 09.03.25 17: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케루빔과 세라핌  

성서의 상징 - 천사
미셀 크리스티안스 지음 / 장익 옮김

 

사은 찬미가Te Deum(가톨릭 기도서 88쪽) 1절에 “케루빔과 세라핌이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 부르오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들 케루빔과 세라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일까요. 이제 설명 드려 보겠습니다. 

 

조금 까다로운 학문적 서론이 되겠습니다만, 이슬람 신도들은 “코란이란 천사 가브리엘이 예언자 마호멧에게 입으로 전해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란 하느님 말씀으로서 하느님의 감도를 받은 많은 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서가 단번에 씌어진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자그마치 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임을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 주변 민족문화의 영향도 그 안에 보입니다.
천사 케루빔과 세라핌 역시 페르시아와 바빌로니아의 천사신학 영향을 짙게 받은 결과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기원전 600년 즈음에 유대인들은 강제로 바빌로니아에 끌려갔습니다.
이른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약 70년 동안 지낸 경험이 당시 페르시아와 바빌로니아에서 매우 성행하던 천사신학의 영향을 성서에도 끼치게 했습니다.

여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변 문화에서 얻은 사상인 이상 이런 천사신학은 하느님 말씀일 수 없다는 결론을 굳이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톨릭 신학자 중에는 다른 문화의 영향이라고 하여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니므로 이에 대하여 시비할 처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교회가 지녀온 믿음의 역할을 지금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케루빔과 세라핌은 사실 바빌로니아 종교에서 유래했습니다.
‘케루빔’ Cherubim과 ‘세라핌’ Seraphim이라는 낱말 끝의 ‘임’ -im이라는 소리는 히브리말로 남성의 복수를 나타냅니다. 단수라면 그냥 ‘거룹’과 ‘세랍’이 됩니다.

 우선 케루빔의 뜻을 보기로 합니다.
그 모습은 날개가 돋친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6장 23-28절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대부분의 신들을 동물의 모습, 특히 황소의 모습으로 만들어 섬겼는데 케루빔 역시 날개가 돋친 황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예루살렘 신전의 지성소 안에는 한 쌍의 케루빔이 있어 날개 하나는 벽을 향해 바깥쪽으로 또 한 날개는 서로 맞닿도록 가운데로 각각 펼치고 있었습니다.
결약의 궤가 모셔져 있던 곳은 바로 그 날개 아래였습니다.
  결약의 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반도를 헤매던 동안 줄곧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 궤 안에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십계명의 석판과 만나 그리고 대사제 아론의 홀이 들어 있었습니다.
케루빔은 이러한 하느님의 궤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케루빔은 성서에 여기저기 나오지만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에제키엘 1장 4절입니다.
포로들 가운데 살던 에제키엘이 당신 모습을 보이신 하느님을 뵙는 장면으로서 하늘에 나타난 네 생물은 케루빔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 대목을 그린 성화도 더러 있습니다.
결국 케루빔이란 실제로 존재하던 천사라기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 위엄과 위대하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깁니다.

 

 

다음은 세라핌인데, 성서에는 단 한 곳 이사야서 6장 2-7절에 이사야 자신이 부르심을 받는 대목에서만 나옵니다.
거룹의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세람의 어원은 ‘불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6장 6-7절에 세라핌 중 하나가 제단에서 집게로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댑니다.
그러면서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세라핌도 케루빔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그밖에도 우리들의 불순한 데를 태워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의 성스러움 앞에서는 너무나 더러운 인간을 정화해 주는 것이 세라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천사신학은 그 이후 그리스도교 안에서 발전하였습니다.

 

마침내 천사들은 대천사, 천사, 케루빔, 세라핌 등 아홉 무리로 나뉜다는 설이 나왔습니다.
희한하게도 중세 무렵부터는 성화에 케루빔을 포동포동한 동자로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 이래 그림에 곧잘 보이는 일곱 살 가량의 날개 돋친 동자천사는 케루빔입니다.
결국 케루빔과 세라핌은 상징적인 존재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천사 같은 어떤 존재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하시며 수호천사의 존재도 암시하고 계십니다.
사은찬미가의 노랫말대로 우리도 케루빔과 세라핌과 어울려 한 목소리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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