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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대표작
폐선(廢船)
바다와 맞닿은 길에
강줄기를 막고 누워있는 늙은 아버지
강물에 시린 발목을 담그고
물의 결을 깎아 나이테를 지운다
골반 사이로 지나가는 강물과 바다 사이에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을 떠나보내는 아침
바다와 강물의 경계를 오가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갈매기들
먼지 쌓인 귓가에 파도소리를 내려놓는다
숲으로부터 걸어온
창백한 새들이 솟대 같은 정수리에 몸을 기대면
태초에 태어난 숲속으로 걸어가
키를 키우는 직립의 꿈
어둠은 밀물처럼 밀려와 숲을 덮는다
수시로 쳐들어와 소금기를 뿌려놓고 가는
해안가에서 조금씩 늙어가는 집
목쉰 바람이 불어와 집의 뿌리를 돌아나가면
오래 기억되던 아궁이의 잔불과 새벽에 졸음을 내려놓고
불 밝히던 어머니의 부엌
항아리 속 묵은쌀을 한숨처럼 퍼 올리던
쌀되박의 기억은 망각의 바람을 따라 길을 떠난다
폐선처럼 허물어져가는 외딴집 감나무에
까치밥 하나 바람에 흔들리면
뿌리를 따라 흔들리는 늑골의 아픔으로
다시 깨어나는 늙은 집
열리지 않는 아침을 가불하여 길을 나서던
아버지의 새벽 기침 소리를 듣고 싶다
廢船"을 읽고
인간의 생애를 흔히 네 단계로 나눈다. 태어남과 성장과 늙음과 죽음이다. 이 과정을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인간이다. 태어남은 축복이며 장년의 생은 생존경쟁이고 노년기는 임무를 다하고 조용히 병을 다스리며 인간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외로운 시기다. 인간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이 같은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
우리는 포구에 가보면 이미 낡아서 못 쓰게 된 배, 말하자면 船籍에서 삭제된 배를 보게 된다. 그 배를 廢船이라고 부른다. 자기의 임무를 다 하고 개선장군처럼 늙어가는 배에선 고동이 울리지 않고 집어등을 밝힐 수 없다. 늙은 어부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어부와 함께 생을 같이 했던 폐선은 수평선에 눈이 가있다. 폐선처럼 외로운 것이 있을까.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은 폐선에 시인만이 연민의 초점을 맞춘다.
폐선이 폐선으로 보일리 없는 것이다. 폐선이 廢家가 되고 다시 늙어가는 廢人이 되기까지는 많은 우뢰와 폭우와 해일이 스쳐 갔으리라. 그 과정이 인간사다.
우리는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영화와 맞먹는 경우를 드물게 보는 때가 있다. 시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는 어쩌면 소설보다 더 길 수가 있다. 그것을 시라는 형식의 작은 그릇에 담는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시가 자연을 노래하는 경우가 있고 인간을 노래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느 것을 노래하더라도 아름다움과 善함과 진실을 노래하게 된다. 眞善美가 종합적으로 직조된 것이 시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
'해안가에서 조금씩 늙어가는 집'
집이 늙어간다는 것은 거기에 사는 모든 것이 늙어가는 것이다. 부모도 늙지만 가구도 늙는다. 마루도 늙고 벽지도 늙는다. 임무를 다한 폐가여, 하지만 이 모든 늙음의 폐가에 마침내 한 시인의 탄생을 보게 된다.
- 詩人 정 일남 -
■등단작품 -2008년 시와산문 겨울호
담쟁이 넝쿨
넓은 신작로를 돌아서
회색빛 담장 길을 다닌 적이 있다
시멘트 공장을 끼고
끝이 보이지 않던 담벼락은
공장에서 날려 보낸 분진으로 인해
하얗게 숨을 할딱이고
가끔 내리는 이슬비에
석고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돌아서는 모퉁이 어디쯤에 나타나는
담쟁이 넝쿨이
굳어가는 담벼락을 안고서
입을 맞추고 있지만
긴 담벼락을
살려낼 순 없었다.
이제는 시멘트 분진도 없는
동네에 살지만
유리창 너머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회색빛이다
돌담으로 경계를 이룬 강 언덕에
노을이 내리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습관처럼 몸을 털면
파편처럼 떨어지는
길 잃은 언어들
허공을 맴돌았던 무수한 생각들이
분진처럼 떨어진다.
긴 담장으로 이어진
아파트 군락을 지나면
나타날 것 같은 회색빛 담벼락
파란 하늘을 향해 희망을 손짓하던
담쟁이 넝쿨을 만나고 싶다
이력서
하얀 종이 위에 나를 적는다
나의 삶의 무게와
살아온 날이 그곳에 있다
가슴 시리도록 슬픈 날과
눈물겨운 작은 행복은
적을 수 없어
그저 빈 칸으로 남겨놓고서
내 속에 담고 있는
소박한 양심과
이룰 수 없는 작은 욕심은
적을 칸이 없어
젊은 날의 사진만 붙인다
하얀 종이 위에
나의 과거가 있다
모든 것이 생략되고 함축된
그저 빈 수레 같은
내 모습이 있다
하얀 종이 위에 나를 적는다
그 속에 있는 내 모습이
나를 보고 웃는다
■ 에필로그
우리 지역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두타문학회에 입회 권유를 받고
입회 조건인 시2편을 제출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쓴 자작시.
이후 서울시에서 공모한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공모전에 입상하여 신설동 역에
게시되었다
-마음에 담아둔 섬 하나
나에게는 마음에 담아둔 섬이 있다 전남 여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약 3시간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하얀 섬 백도. 15여 년 전 형님이 그곳 백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영원히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한 이후 백도는 마음에만 담고 있는 섬이 되었다 때로는 아버지 같았고 친구 같았던 형님. 어머니에게는 더 할 수 없는 효자였던 나보다 두 살 위의 형님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 후 마음이 통하는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행정실장으로 발령받아 오던 날 우리는 詩的으로 뜻이 맞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좋은 맨토가 되어서 시를 많이 썼었다. 시인의 필명이 백도인 것과 형님과 같은 나이인 것을 한참 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직장 때문에 원룸에서 혼자 기거하던 시인과 밤늦도록 음악과 시에 대하여 토론하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잊고 지내던 섬이 생각나던 밤. 내 詩作 노트에 썼던 그날의 섬이 있다
섬에도 눈물이 있다
물속에 또 다른 물길이 있는 줄
남해의 섬 백도에서 알았다
그 물길 따라 길 떠난 형아를
가슴에 묻어두고 돌아선 날
바다에서 하늘이 더 가깝다는걸
숨죽인 고래처럼 누워있는 섬이 알려주었다
형제처럼 나란히 바다에 서있는
상 백도와 하 백도
그날 섬 하나가 지워졌다
백도라는 필명을 달고 사는 시인을 만났다
그는 원룸에 혼자 산다.
어둔 밤이면 도시의 난간을 붙들고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은 건물
낯선 방을 찾아가면 그는 슬픈 음악을 듣고
나는 잊고 지내던 눈물 같은 섬을 생각한다.
섬이 술을 마시고
술이 외로운 섬을 흔드는 날이면
가슴속에 있던 큰 바위 하나
뭍으로 내려앉는다.
섬에도 눈물이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에 젖는 섬 하나 있다
자작詩 -섬에도 눈물이 있다 -전문
어떤 시인은 말한다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내가 가고 싶은 섬은 내 마음속에 담았다. 하얀 파도로 부서지던 눈부신 섬 백도(白島). 사고가 나고 다음날 혹여 구조를 기다릴 것 같은 급한 마음에 헬기를 타고 내려다보던 그날의 망망한 남해 바다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데 이제 시 한 편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섬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가 보아야 할 것 같은 내 마음의 섬 .백도..
감자의 이력
생전에 어머니가 가꾸시던 앞밭에서
감자를 캔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싹을 틔우던 어린것들
주인을 잃고 시들어진 줄기를 걷어낸다
호미가 지나갈 때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어머니의 세월
감자도 이력이 있어 모양을 갖추었다
작은 근심 큰 근심이 같이 매달려 나온다
가끔 검게 타들어 간 어머니의 가슴이
같이 매달려 나온다
암덩이가 몸속에서 자라듯이
해를 보기 전 알 수 없는
감자의 이력
어둠을 안고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
눈물 같은 세월을 캔다.
해설-이병렬 교수
‘자주 꽃 핀 건/자주 감자’이고‘하얀 꽃 핀 건/하얀 감자’라고,이는‘파보나마나’알 수 있다고 권태응 시인이 동시로 밝혀놓았지만 사실 감자의 색깔만 알 수 있을 뿐,감자꽃이나 잎만 보고 감자알이 얼마나 굵은지는 농부도 알 수 없다.땅 속에서 뿌리로 자라는 감자는 파 보기 전에는 얼마나 잘 영글었는지, 큰지 작은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 감자잎이 무성하면 알이 잘다고는 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강동수의 시<감자의 이력>에는 감자를 캐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감자를 심은 사람은 어머니이지만 감자를 캘 무렵에는 어머니가 안 계신다. 시 속 내용으로 보아 감자를 심고 싹이 올라오고 한창 자랄 무렵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신 모양이다. 그러니‘생전에 어머니가 가꾸었던 앞밭에서/감자를 캔다’고 한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싹을 틔우던 어린것들’은 화자의 눈에‘주인을 잃고 시들어진’처럼 보인다.하긴 식물이라고 감정이 없겠는가. 늘 보살펴주던 주인이 안보이니 시들만도 할 것이다.화자는 그런 줄기를 걷어내고 감자를 캔다.
‘호미가 지나갈 때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감자들-화자는 그 감자들을‘어머니의 세월’이라고 한다. 즉 화자는 호미질에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감자들은 바로‘어머니의 세월’을 담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런데‘감자도 이력이 있어 모양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 크기가 제각각이리라. 그러니‘작은 근심 큰 근심이 같이 매달려 나온다’지 않는가. 여기서 화자는‘가끔 검게 타들어간 어머니의 가슴이 세상을 향해/얼굴을 내민다’고 한다. ‘검게 타들어간’ 감자알-바로 땅속에서 병충해로 혹은 다른 이유로 검게 썩어 버린, 먹지 못할 감자알이다. 화자는 이를 어머니의 가슴이 검게 타들어간 모습으로 인식한다. 호미로 땅을 훑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그러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암덩이가 몸속에서 자라듯이/해를 보기 전 알 수 없는 감자의 이력’이라지 않는가.
그렇게 화자는‘어둠을 안고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눈물같은 세월을 캔’단다. ‘눈물 같은 세월’ -바로 어머니의 세월이지 않겠는가. 어머니가 심은 감자,싹이 나고 잎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직접 돌보셨던 감자밭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감자가 얼마나 영글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암으로 돌아가셨다. 주인이 가고 없는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화자. 호미질에 올라오는 감자알들은 크거나 작거나 모두 어머니의 세월이다. 개중에는 썩은 것도 올라온다. 바로 검게 타들어간 어머니의 가슴이리라. 감자알이 굵건 잘건 아니 썩은 것이라도 모두가 어머니의 세월이 담긴 것들이요, 어머니의 큰 근심 작은 근심 그리고 때로는‘검게 타들어간’ 어머니의‘눈물 같은 세월’이 그대로 배어 있다. 화자는 지금 감자를 캐며 캐낸 감자알에서 그 알에 담겨 있는‘어머니의 세월’을 읽고 있다.
시 제목이‘감자의 이력’이다. 이력-바로 어머니의 큰 근심 작은 근심 그리고 검게 타들어간 가슴, 바로‘어머니의 세월’이다. 시 속에 미사여구를 쓴 것도 아니요 특별히 남다른 상징과 비유도 없다. 그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비유에 진솔한 묘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시를 읽고 나면 오히려 그런 진술들에서 어느 비유나 상징보다 더 큰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아, 어머니……!♣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1
내가 누르는 셔터는 몇 만분의 일초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저장시킨다
아무리 빠른 물체라도 혹 그것이 총알이라도
2
처음 만졌던 싸구려 카메라도 풍경을 놓친 적이 없다
간혹 빛을 과다 복용하여 검게 뭉그러진 풍경이 시간을 건너갈 때
혹은 함량미달인 빛은 배경을 희미하게 채색시켜 놓는다
복용시간을 잊어버린 알약같이 필름을 잊어버린 카메라는 가끔 풍경을 놓치기도 하지.
그때 심장에 담아두지 못한 풍경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배경은 계절을 건너며 다른 색깔로 나타나기도 하지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3
**부처님 손안에서 몇 만 리를 가더라도 부처님 손안에서 놀듯이 삼장의 마법은
지금도 유효한가
책상 위에는 방금 주문한 설경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다
계절을 뛰어넘은 눈 덮인 풍광과 주문하지 않은 낙엽까지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는 한 뼘 마우스가 부린 마법
룸비니 아니 그보다 더 먼 도솔촌 그 어디쯤에서 출발하여
왕국을 버린 시타르타가 내 책상 위에 앉아있다
아직 깨우지 못한 풍경들을 파인더 안에 가두어두고 가부좌하고 있는 붓다
케논(Canon)이 관음(觀音)이듯
사진과 시 창작 이야기
사진과 시의 예술적 공통분모
1) 사물을 보는 눈
●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낌이
나타날 수 있다
● 사진과 시는 평범함을 벗어날 때 새로운 작품이 탄생된다.
● 모든 예술작품은 새로운 시각이다
●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순광이 아니라 역광이다
역광-새로운 시각
2) 큰 것을 작게 작은 것을 크게 (작품 사진을 위한 명언)
숲에서-큰 나무들- 나무 끝에 달려있는 잎사귀-잎사귀에 매달린 이슬방울
-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적인 힘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All my life, I've tried to shoot the decisive moment of life, every moment of life was the decisive moment.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프랑스 사진작가)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어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모든 유용한 것은 그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김현 -
▣시와산문문학회 삼척문학기행 및 워크숍 2008.4.26
▣등단식-출판문화회관
▣문학의 첫 걸음--삼척 두타문학회 2003.9.24
한국문인협회 월간지-- 月刊文學 15.000부 발행
▣월간문학 2024년 3월호-- 작품을 탄생시킨 모티브 (무지개다리-강동수시인)
삼척 소식지 원더풀 삼척 30.000부 발행
▣삼척소식지 2024년 3월호 --작가의 뜰 (종소리 -강동수)
첫댓글 강동수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한 자료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