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SF 오락영화의 정점
김혜선 기자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는 거대 로봇들의 파괴적인 액션에 집중하는 블록버스터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
정체 모를 거대 로봇이 느닷없이, 하필이면, 카타르 미군 기지를 초토화시킨다. 미 국방부는 혼비백산해 긴급전략을 세운다. 한편, 평범한 학생 샘(샤이어 라보프)은 중고차 가게에서 자동차 한 대를 구입한다. 차를 사서 학교의 퀸카 미카엘라(메간 폭스)에게 잘 보이려 하는데, 어느 날 밤 자신의 자동차가 직립하더니 거대 로봇으로 척척 변신하는 걸 보게 된다. 두 얘기가 뭔 상관이냐고? 상관 있다. 미군 기지를 습격한 로봇은 악의 로봇 군단 ‘디셉티콘’의 로봇이고, 샘의 자동차였던 로봇은 정의의 로봇 군단 ‘오토봇’ 의 ‘범블비’였던 것. 샘은 두 로봇 군단이 가공할 에너지원 큐브를 찾아 지구에 왔고 자신이 그 위치를 알려줄 열쇠를 지녔음을 알게 된다. 이제 로봇 군단의 격돌 속에서 샘은 큐브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과연, 쉬울까?
출발은 그냥 장난감이었다. 일본 완구회사 타카라와 미국 완구회사 하스브로의 합작으로 탄생한 변신로봇 ‘트랜스포머’ 완구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장난감들을 캐릭터화해 한국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넬슨 신이 1986년 만든 극장용 <트랜스포머>는 당시엔 대중적 인기를, 지금은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이 됐다. 그 이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꾸준히 만들어졌던 <트랜스포머>는 러닝타임 내내 할리우드의 디지털 마법을 자랑하는 마이클 베이의 실사영화로 재탄생했다. <터미네이터> 처럼 로봇이 등장하나 사람이 로봇을 연기했던 것과는 다르다. 만들어진 로봇이 주인공이며 그들은 인간 주인공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SF철학물이 아닌 SF오락물로서의 정체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장난감이 스크린에서 도심을 깨부수고 하늘을 나는 거대 로봇으로 살아났다는 사실은 할리우드가 그간 금기시했던 영역에 발을 들여놨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원작은 보지도, 장난감은 갖고 놀지도 않았던 여름 블록버스터의 귀재 마이클 베이가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은 <트랜스포머>를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베일을 벗은 영화는 실제로 스필버그의 취향과 마이클 베이의 취향이 적절하게 뒤섞인 형태다. 물론 눈높이는 마이클 베이에게 맞춰서. 절대 에너지원 ‘큐브’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에 온 '오토봇‘ 군단과 ’디셉티드 군단‘이 필요한 정보들을 이베이 사이트에서 얻는 일도 그래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큐브‘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안경알에 새겨져 있다거나, 거대 로봇들이 의외로 말이 많다거나, 심지어 그들이 하는 농담이 10대용이라거나 하는 것까지도. “승리를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로봇 군단들의 행동은 마이클 베이의 고집스런 단순성이 일단의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들이 말해주는 건 분명하다. 제작진이 아무리 “원작보다 인간에게 집중했다”고 말하더라도 이 영화의 본질은 거대 로봇들의 파괴적인 액션에 집중하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이다.
허허벌판이 아니라 인간들의 공간인 도심 한복판에서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로봇들의 레슬링 액션 시퀀스, 그리고 ’스캐닝‘ 기능으로 지구의 어떤 기계로도 제 몸을 바꿀 수 있는 거대 로봇들의 변신 모습은 이 영화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할리우드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 디지털 도메인과 ILM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거대 로봇들은 판단하고, 걱정하고, 조심하고, 아파하고, 하여간 별걸 다한다. 주인공 소년 소녀인 샘, 미카엘라와 농담 따먹기도 하고, 심지어 큐브를 지키려는 그들을 격려하기까지 한다. 선과 악의 군단이 “5:5로 동일한 숫자여야 한다”는 스필버그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제작진은 원작보다 날카롭고 정밀한 기계 부품들로 이루어진 로봇들의 메카닉 디자인을 선보인다. '오토봇’ 군단을 이끄는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의 부품 개수가 1만 1백 개라니 공을 들이긴 꽤 들인 셈이다. 좀 더 실감나는 영상을 위해서 원근감이 살도록 높이 5.2미터짜리 초대형 ‘범블비’ 모형을 만들어서 실제 모형과 CG를 병행하고 합성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자동차, 전투기 등 마음먹은 대로 변신하는 거대 로봇들의 모습 때문에 CG 외에도 실제 GM 계열 자동차, 헬기 등이 동원됐다. 그리고 미 공군 핵심 무기인 A-10 썬더볼트 등 실제 전투기, 탱크,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등이 놀랄 만한 로봇 스펙터클을 위해 들러리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미 국방성 프로젝트 자료를 얻고, 미 공군 기지에서 촬영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마이클 베이는 이 영화를 "전지구적 관심사로 만들기 위해“ 미군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담은 여러 장면들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어찌 보면 <트랜스포머>는 거의 민관합작영화라 할 수준이다. 로봇들끼리의 전투가 현란하다 못해 가끔 어느 쪽이 어느 편인지 구분이 안 가기도 하지만. 86년 작 애니메이션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피터 쿨렌을 출연시킨 건 일종의 보너스 정도 되겠다. 최근 <인디아나 존스 4>에도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샛별로 떠오른 샘 역의 샤이어 라보프의 발랄한 연기, 국방부 장관으로 출연하는 존 보이트, 망가진 FBI 요원으로 모습을 보이는 존 터투로 등을 보는 재미, '디셉티콘‘ 군단을 이끄는 리더 메가트론 역을 맡은 휴고 위빙의 목소리를 듣는 재미도 있다.
인간을 조연으로, 혹은 단역으로 만들어버린 <트랜스포머>는 <터미네이터>나 <A.I.> <아이 로봇> 등이 도달하려 했던 이상향을 꿈꾸지 않는다. 그러니 지구에 떨어진 큐브가 인류의 모든 기계문명의 근원이 되었다거나, 큐브의 존재를 미 정부가 19세기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분노하지는 말 일이다. <트랜스포머>는 마이클 베이라는 자장 안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트랜스포머>의 총천연색 메카닉 스펙터클의 미학은 할리우드의 최고가 여름 신상품으로 전세계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것만은 자명하다.
<트랜스포머>의 프로도, 샤이어 라보프
샘 윗위키 역의 샤이어 라보프는 지금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신인이다. 신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자연스런 연기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즉, 할리우드가 기다리던 대형 청춘스타로 점쳐지고 있다는 얘기. 올해는 사실상 거의 그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림웍스의 스릴러영화 <디스터비아>의 주연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소니픽쳐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서핑업>에 목소리 출연을 한데다가 화제작 <트랜스포머>의 주인공이며 지금은 <인디아나 존스 4>를 정신없이 촬영 중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랄까. <미녀 삼총사> <아이, 로봇> <콘스탄틴>에 출연했을 때는 그리 기억에 남는 조연도 아니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밀어주는 분위기라면, 뜨는 건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라보프는 <트랜스포머>에서 외계에서 온 거대 로봇 '트랜스포머'와 함께 절대 에너지원 큐브를 찾아 지구 지키기에 나서는 주인공 샘 윗위키 역을 맡았다. '절대반지‘를 목에 걸고 갖은 고생을 겪는 프로도처럼 그는 오토봇 군단의 호위를 받으며 큐브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재밌는 건 그 와중에도 퀸카 여학생에게 홀딱 반하고, 죽이는 전자제품은 일본 제품이라고 믿는 요즘 미국 청소년들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 라보프가 마치 히치콕의 스릴러 <이창>의 주인공처럼 살인마의 집 근처에 사는 십대 소년을 연기한 <디스터비아>는 오는 8월 말 국내 개봉 예정이다. 고전 스릴러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지닌 라보프의 연기를 만날 수 있다. <트랜스포머>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로봇을 상상하며 하루 종일 허공을 보면서도 몸 사리지 않는 연기를 소화한 걸 보면 <인디아나 존스 4>에서도 한 몫 할 게 틀림없다.
★GOOD or BAD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정체를 살살 드러내 보이는 중반까지는 제법 알싸하고 현란하다. 문제는 중반 이후다. 로봇끼리의 대결 장면이 주로 롱숏과 부분 클로즈업으로만 돼 있다. 거대 로봇들은 또 왜 그리 수다스러운지. 최광희(FILM2.0 편집위원)
마이클 베이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치곤 좀 싱겁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이 아닌 기계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얼마나 공감하는가에 따라 이 영화의 성패가 좌우될 듯하다. 최은영(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