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여행7일차 토요일/마지막 회
유태인 수용소에서 나와 죽음의 철도 길을 넘어서 점심식사를 한 뒤 버스 탑승하여 체코의 프라하로 이동 중에 ‘쉔들러 리스트’영화를 감상 한다. 적선을 베푼 자는 항상 있게 마련이니 아무리 나치시대라도 독일 사업자 ‘쒼들러’가 유태인들을 700여명 살린 감동의 스토리라 끝까지 다 보고 프라하에 도착한다.
체코는 면적 7.8만km2 인구 1000만 명의 나라다. 1유로는 25 코른 이다. 슬래브 계통의 체코 부족의 나라로, 1000년의 역사로 프라하 중심의 보해에만 왕가가 합스부르크가에 편입된 나라다. 체코는 카를4세가 왕이 되어 카를대교(KARLUY MOST)를 만들고 카를대학을 마든다. 체코의 문화를 꽃피운 국민의 존경을 받는 왕인 모양이다.
1차 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가 되고 2차 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소련 연방 위성국이 되었다. 민주화 바람으로 1968년 동구시위 때 비무장으로 5만 명이 소련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죽는 프라하의 봄 사건이 난다.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 한다. 체코는 원래 공업국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물가가 비싼 편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보다는 화려한 문화와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 구 시사지로 걸어가서 저녁식사를 한고 야간 시가지를 본다. 호텔로 이동한다. club hotel에 투숙한다.
프라하城은 아직 대통령 집무실로 쓴다. 대통령과 수상의 이원 집정 제를 채택한 나라로 보헤미아 왕국이 지은 비투스(VITUS) 성당이 고딕양식인데 929년 착공하여 1929년 완공한 1000년을 지은 교회로 유명하다. 지붕이 뽀쭉 탑인 이 고딕 양식은 프랑스 리용 지방의 고트족의 건축양식으로 고딕양식이라 부른다. 지붕이 하늘로 높이 올라가면 하느님에 존경심이 높아지고 신앙심도 높아질 것이니 이 때 부터 모든 교회가 애용하는 양식이 된 것이다.
西門에 들어서니 스페인 홀이다 다시 東門으로 나가서 30년 종교 전쟁으로 합스부르크에게 敗하자1621년부터 오스트리아가 297년간 체코를 지배한다. 이 대통령궁은 체코의 드돌프2세가 지은 궁인데 지금도 활용을 한다. 이곳은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로 1989년 드디어 이루어진 민주화 는 하벨이 주도 운동하여 민주화를 이룬다. 그 후 하벨이 대통령이 된다. 자본주의를 채택하느냐 여부를 놓고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分國 한다. 체코는 일본보다 20년 앞선 공업국으로 당시 세계10대 중공업 국가다. 1993년 체코가 분국하자 하벨이 대통령에 재 취임한다. 그리고 喪妻를 하자 24세 연하의 포르노 배우 출신과 결혼을 한다며 사임을 한다. 그리고 국민의 부름을 받고 1996년 다시 대통령이 되는데 2012년 12월 18일 사망한다. 그 날은 72세로 하루 전에 김정일이 죽은 날이다.
프라하는 동서 25KM 남북 16 KM의 넓이인데 10개 구역으로 분구 된다. 1구역 전체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나라다. 문화유산 넓이 세계최대 크기이다. 대통령궁의 정문에 칼과 몽둥이로 체코 국민을 억압하는 동상이 그냥 서있다. 핍박의 역사도 역사니 우리가 두고두고 반성하여 다시 그런 나라를 잃어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취지란다.
광장에 오른쪽에 대주교 청이 있다. 관 밑에는 오리 대가리 모양이 3개이고 성삼위 일체를 표현하는 구슬이 12개다 그리고 쌍 십자가가 그려 있으면 대 주교 라는 표시란다.
300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벗어나며 1937년 최초의 대통령 동상이 있다. ‘토마스 그르이. 마셀’TGM의 동상인데 주머니에 손을 걸치고 두 손가락을 내 밀고 있다. 내가 죽어서도 두 번 나라를 잃지 말라는 경고로 그는 대통령 궁을 바라보며 서있는데 그 나라는 불행하게도 20년 만에 1938년 히틀러에 빼앗긴다. 항복을 할 테냐? 우리의 무차별 폭격을 받을 것이냐? 선택을 강요받고 4시간의 각료회의 끝에 문화제 보호를 위하여, 제발 폭격치 말라는 조건으로 항복을 한다.
그러나 폴란드는 깡다구 있게 1939년 히틀러와 공식 전쟁을 선포한다. 히틀러의 탱크 장갑차의 기계화 사단과 소총과 대표를 든 보병과 말 탄 기병이 전쟁을 하다 2주 만에 멸망을 한다. 그들의 모든 바르샤바의 문화재는 잿더미로 변한 뒤에 그래서 폴란드는 지하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 귀신 나오는 두 곳 밖에 관광자원이 없단다.
1000년 걸려 지은 비투스 대성당은 외관재료가 사암인데 이것이 빗물에 젖으면 산화철이 나와서 검게 변하고 화재를 당한 건물처럼 보인다. 이것을 일본 기술진이 센트 브래스팅으로 2년간 닦아서 색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건물의 길이 128미터 넓이 60미터 층높이 33미터 탑의 높이 88미터로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이어 두 번째의 크다고 한다. 그러나 정교하기로는 비투시 성당이 세게 제일이라 강조한다. 프리드리드 대제는 47명의 부인과 233명의 자식을 뒀는데 당시 이 궁에서 살았단다.
성당 입구에 입을 벌린 악마상이 있는데 이것은 ‘가고일’이라 부른다! 뱉어낸다는 의미의 이 말은 고트족의 특징으로 정화시키고 축복을 받은 얼굴이 남아 있다. 가고일은 오늘날 가글의 語原이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를 프라하로 정한 찰스 카를 4세 옆에 비워 둔 공간이 있는데 이유는 다음 세대의 성인을 조각해 넣어라 는 뜻이다.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장미무늬의 창살이 있다
신성로마 제국의 말 시장이 있던 장소에 광장의 해자를 메우고 만든 광장으로 ‘스타브베르’극장이 있다 이곳은 무일푼의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에서 이곳 프라하 와 피가로의 결혼으로 히트를 한 곳이다. ‘존지오바니’의 작곡을 初演한 극장이 있고,
광장으로 나가면 1410년에 제작한 ‘오눌루이’시계(천문 시계)가 있다. 지금도 작동하는 시계는 천문학자요 수학자인 ‘타누수’교수가 제작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태종 이방원의 시대인데 해시계 물시계도 없던 때인데...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금 닭 좌우의 인형은 좌측 거울을 든 인형은 사치와 허영
우측의 금낭 자루를 쥔 인형은 욕심을 나타낸다. 사치와 허영 욕심을 부리던 인간이 죽어 해골로 변하여 오른손으로 시계의 줄을 당기면 해골은 고개를 끄덕인다.왼쪽의 모래시계를 든 사람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간 앞에서는 허영과 사치 욕심이 모두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는 뜻을 나타내는 뜻이나 아래의 3개의 인형은 아니야 젊음 돈 쾌락은 영원한 것이야 라고 한다는 의미란다.
창문이 열리며 예수의 12제자가 돌아간다. 그리고 금 닭이 운다.
카를4세의 다리에 도착한다. 유속이 빠른 곳에 1357년 착공하여 1402년에 완공한 힘들여 돌로 지은 다리를 지금도 쓰고 있다. 서쪽 왕궁과 동쪽의 상가를 잇는 볼타 강의 다리다. 다리의 길이는 503미터 폭 17미터로 교각은 14개(가이드 말) 유속에 밀리지 않게 다리는 S자 형이다. 돌과 돌을 소석회로 접촉하며 노란 자와 껍질을 섞어 쓰면 4배의 접착력이 나온단다. 흰 자는 방수제로 쓴단다. 당시 조선 태종임금 시대와 비교하면 비교 할 수 없는 선진국임을 선언한 다리다.
좌우 각30개의 조각상이 교각위에 성서적 의미를 가지고 서 있다. 바츨라프 4세의 아들이 등극하면서 우리나라 연산군 같은 폭군인데 부인은 소피아 왕비다. 대주교에 고해 성사를 하면서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미남 청년기사와 바람을 피운 죄를 사해 달라...‘얀 요한 네포무크’ 대주교에 고해한다. 왕이 나중에 주교에게 그 청년기사가 누군지 말하라 고문을 하지만 이곳의 고해성사는 하느님을 제외한 1대1의 대화다. 그리고 바츨라프4세 개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한다.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개만도 못한 것이 된다. 대 주교는 끝까지 말을 안 하고 죽는다. 황제는 주교의 혀를 짤 으고 눈알을 빼 돌에 묶은 뒤 이 다리에서 물에 던진다.
그 던진 장소 즉 5째 교각 중앙에 표시 동판이 있고, 머리에 별을 5개 그린 동상이 있다. 그 표시에 오른 발을 대고 왼손으로 대주교 동판을 대고 오른손으로 개를 만지며 기도하면 반듯이 한번 이루어진단다. 우리도 한번 기도를 한다. 그 동판은 황금처럼 반짝인다.
시신은 떠내려가 천행으로 수녀원 앞에서 떠올라 발견되는데 부지런한 수녀원장이 아침 산책을 하다 대주교임을 알아낸다. 그 대주교의 시신은 비투시 성당 안에 순은 묘로 받들어 진다.
음악콘서트 홀 “드볼작 홀” 앞에서 드볼작의 동상을 바라본다. 멀리 강 건너 산위에 박자측정기 메트로놈(METRONOME) 같은 조형물이 움직인다. 그것은 스탈인 동상이 있던 곳으로 민주화 후 동상을 없애 치우고 THE TEAR OF STALIN “스탈인의 눈물이”란 명제의 동상이란다. 참으로 철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 아닌가! 인간지사 새옹지마 스탈린 넌 아직 울지 마라 우리 북한의 불상한 백성들이 아직 너의 저주 속에 있고 남한에도 종북파가 많이 있잖니!
우리를 안내한 정읍출신의 도련님이라 하던 이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가이드는 밀양박씨 규정공파 19대손 박 성훈 씨다.
우리는 3시 반 독일로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나치 영화 피안니스트를 감상한 뒤 중국식당 坂本龍에서 저녁을 한다.
그래도 독일의 중국집은 격조가 있어 인지 그냥 먹을 만하다. 아니면 면을 별도 주문하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서 고량주을 한 병 시켜서 마신 뒤 호텔다운 호텔로 들어선다,
이 호텔은 숲 속에 넓은 산책코스와 방죽이 있고 주위에 청소년들이 엠프를 설치하교 노래를 부르는 야영장이 있었다. 남은 고량주를 가져와 오렌지 쥬즈에 칵테일을 하여 난마시고 호텔내의 바에서 맥주를 한 잔하면서 자정까지 놀다 들어온다.
300유로 갹출한 공금은 남아서 115유로 씩 나누어 갖는다.
내일 오전에 시내 한 곳에 들르고 점심 후 쇼핑을 한 뒤 오후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 남는다.
20120719
근무자 인수인계 기간의 군악대가 행진해 오고 있다
대주교청임을 나타내는 오리처럼 생긴 것 세마리와 줄
두 번 다시 나라을 잃지 마라 난 죽어서도 너 대통령의 집무실을 감시 할 것이다.
프라하가 자랑하는 성 비투스 성당 사암의 산화철은 일본이 베켜내고 돈 벌어 먹고 있다.
입 벌린 악마 가고일 상과 전면 조각
천년간 지으면서 현세의 설계자 모습이 조각되어 들어 가 있다. 본 받을 만한 일이다.
성당내부의 유리 모자익 그림
출입구에 붙어 있는 무슨 내력인지 많은 손길과 눈길이 간 것으로 봐서 중요한 메세지 인 둣 천주교 신자들이 댓글을 달아 설명해 주십시요
외부의 조각상 십자가에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군대의 모습도 보이고 ...
프라하 시내를 다니는 전차와 시가지 모습
시내 한 복판의 전경 끝에 보이는 건물이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힛트를 치기 시작한 극장이랍니다
유명한 천문시계와 그 디데일
카롤4세의 석교와 주변 풍경 및 동상
카를4세 대왕님의 동상
드볼작 기념극장 전경
스타린의 눈물 조형물 움지이는 조형물입니다
비투스 성당 마당에서 그림을 한 점 산 뒤 바라본 시내의 고풍스런 모습입니다
첫댓글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쯤은 해보고 싶네요. 중세 근대의 역사와 유럽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