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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00년 전 멸종한 매머드의 상상도. |
3만여 년 전 빙하(氷河)시대 러시아에 살았던 고대(古代) 식물이 부활했다. 시베리아 영구(永久) 동토(凍土)층에서 3만 년 동안 얼어 있던 식물의 열매를 발견한 생물학자들이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다시 꽃을 피운 고대 식물은 석죽과(科) 식물 ‘실레네 스테노필라(Silene stenophylla)’. 러시아 과학원 토양생리화학과 세포생물물리학연구소의 데이비드 기리친스키 연구팀이 시베리아 동북부 콜미아강 둑 인근 저지대 지하 38m 아래 동토층에서 이 식물의 열매를 발견했다. 이곳은 실레네 스테노필라의 열매를 먹고 살았던 얼룩다람쥐의 먹이저장고로 추정되던 장소다. 또 매머드 화석(化石) 유적지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는 얼룩다람쥐 굴 70여 개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동결 상태로 저장된 수많은 씨앗과 열매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실레네 스테노필라 열매의 세포조직을 떼어내 배양액에서 조직배양을 시켰다. 물론 시베리아와 같은 영하 10도 이하의 추운 환경에서다. 처음에는 씨앗을 이용해 옛 식물을 되살리기 위한 실험이었으나 실패하자 열매의 조직을 채취한 것이다.
과피(果皮) 속에 씨앗이 들어 있는 것이 열매다. 과피는 밑씨를 감싸고 있는 씨방이 변해서 된 조직이고, 밑씨가 수정돼 성숙한 게 씨앗이다. 조직배양은 식물의 조직을 떼어내 시험관에서 배양해 식물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식물의 일부만으로도 완전한 개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희귀생물 보존이나 재생에 쓰인다.
패랭이꽃과 비슷
러시아 과학자들이 개화(開花)시킨 3만 년 전의 실레네 스테노필라. |
대부분의 식물 씨앗은 몇 년 안에 죽는다. 그런데 고대 식물의 세포는 어떻게 수만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까. 이는 시베리아의 동토가 생물의 유전자원을 보관하는 천연 냉장고로서의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열매가 동결 상태로 보존되면 미라처럼 썩지 않고 세포가 살 수 있다. 물론 실레네 스테노필라가 생명력이 강한 종(種)인 것도 이유다.
연구팀이 확보한 열매의 조직은 배양액 속에서 뿌리와 줄기가 나오고 싹을 틔우며 완전하게 성장했다. 이를 일반 토양에 옮겨 심은 뒤에도 잘 자라 암술과 수술을 갖춘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었다. 배양액은 미생물이나 동식물의 조직을 배양하기 위해 배양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물질을 주성분으로 하고, 다시 특수한 목적을 위한 물질을 넣어 혼합한 것이다. 생존이나 발육에 꼭 필요한 물을 비롯하여 탄소와 질소, 무기염류, 발육인자(비타민류) 등의 영양물질을 공급해 준다.
조직배양을 통해 완전하게 되살아난 고대 식물 실레네 스테노필라의 생김새는 패랭이꽃과 비슷했다. 꽃잎은 패랭이꽃보다 좀 더 얇고 바깥쪽으로 벌어졌지만 매우 아름다운 꽃을 지녔다는 게 연구팀의 일원인 스베틀라나 야시나 박사의 설명이다. 그녀는 “처음엔 너무 빨리 자라서 이것이 식물의 싹인지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됐다. 3만여 년 전의 모습을 드러낸 실레네 스테노필라는 지금까지 세포배양으로 살려낸 고대 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2000년 묵은 씨앗에서도 開花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 씨앗에서 개화한 연꽃. |
실레네 스테노필라가 되살아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고대 식물은 이스라엘 마사다에서 발견된 2000년 전 대추야자 씨앗이다. 지금까지 1만 년을 넘긴 복원 사례는 없었다.
대추야자 씨앗은 이스라엘 루이스 보릭 국립의학연구소 사라 살론 박사팀이 이스라엘 마사다의 헤롯왕 요새 발굴 당시 발견했다. 대추야자 씨앗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노화(老化) 방지 효소와 단단한 껍데기, 마른 호수에 묻혀 있던 덕분이라고 연구팀은 추론한다.
연구팀은 2005년 발견된 씨앗 3개를 심어 이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를 발아(發芽)시키는 데 성공했다. 싹이 튼 뒤 약 30㎝ 길이로 자란 2000년 전의 대추야자에 박사팀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므두셀라는 구약성서에 969년을 살았다고 기록돼 있는 인물이다. 이 씨앗은 발아 3년 만에 높이 1.5m의 건강한 나무로 자랐다.
예수가 활동하던 2000년 전 무렵 이스라엘에서는 대추야자 나무가 대량으로 재배돼 당시 최대 수출품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된 전쟁과 가뭄으로 재배지가 축소되다가 800년 전 십자군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이스라엘이 대추야자 씨앗을 발아시키기 이전인 1995년 중국 과학자들은 당(唐)나라 시대인 1300년 전의 연꽃 씨앗을 발견해 개화에 성공한다. 이들이 개화에 이용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씨앗이 아니라 열매다.
열매는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연꽃 열매는 소견과에 속한다. 소견과는 과피가 딱딱한 열매다. 연꽃 씨앗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과피가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피가 딱딱하면 자연 상태에서 싹이 트기 힘들다. 토양미생물로 과피가 약화되거나 물결에 따라 여기저기 휩쓸려 돌이나 바위에 부딪히면서 과피가 깎여나가고 깨지면서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발아가 시작된다. 따라서 연꽃 씨앗은 수년에서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만에 발아가 되는 경우도 있다. 1300년 전의 연꽃이나 실레네 스테노필라처럼 생명력이 강한 종들은 식물의 DNA를 보존하거나 수리하는 자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2009년에는 경남 함안에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700여 년 된 연꽃 씨앗 10개가 발견됐다. 함안박물관은 이 중 3개에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되었다.
방사성 탄소동위원소로 화석 연대측정
여기서 잠깐 실레네 스테노필라와 대추야자, 연꽃 씨앗의 연대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고 넘어가자. 화석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의 측정은 방사성 탄소동위원소(14C)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으로 한다. 탄소동위원소란 같은 탄소이지만 가지고 있는 중성자의 수(數)가 다른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탄소(C12)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 6개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유물의 연대측정에 쓰이는 탄소는 중성자가 8개인 희귀한 탄소(C14)이다.
탄소동위원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 많다. 따라서 생물체가 살아 있을 때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데, 체내에서 일반탄소와 탄소동위원소의 비율은 일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생물이 죽으면 탄소동위원소는 더 이상 몸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호흡을 하지 못하면 일반탄소의 양(量)은 거의 변함이 없는 데 반해 이미 몸 안에 들어 있는 탄소동위원소의 양은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마다 절반씩 줄어든다. 이를 ‘반감기(半減期)’라고 한다.
반감기는 원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100분의 2초에 불과한 것도 있고, 수십만 년이 걸리는 원소도 있다. 탄소동위원소의 반감기는 5730년이다. 만약 새로 발견된 매머드 화석의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그 양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면 반감기를 두 번 거친 1만1460년 전의 화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탄소동위원소가 무한대(無限大)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소동위원소측정법은 3만~4만 년 정도까지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많이 활용된다. 연대가 7만 년이 넘어가면 탄소동위원소로는 유물의 연대측정이 어려워진다. 반감기를 수차례 거치면서 탄소동위원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탄소동위원소보다 반감기가 훨씬 긴 베릴륨(Be10)과 알루미늄(Al26)을 이용해 연대를 측정한다. 베릴륨(Be10)은 반감기가 160만 년이고, 알루미늄(Al26)은 70만5000년 정도다.
므두셀라 미생물
그렇다면 세포조직을 통해 고대 동물도 되살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동물의 세포조직은 죽음과 함께 물, 효소, 산화물질 등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한다. 동물의 모든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 또한 자연 방사선에 의해 정보가 없어진다. 따라서 수천만 년이 지난 화석에서 원래의 DNA를 복원해 내는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옛 DNA를 찾아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오래전에 멸종된 동식물의 유해로부터 DNA를 채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 껍질에서 나온 곤충이나 동물 화석으로부터는 옛 DNA를 쉽게 추출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호박(琥珀) 내부는 물과 산소로부터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3년 캘리포니아대학의 포이나 박사팀은 레바논에서 출토된 1억3500만 년 된 호박 속에서 멸종된 초식 곤충인 바구미의 DNA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DNA 복제를 통해 유기체로 되살리는 일에는 실패했다. 수많은 DNA분자를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은 있어도 이를 정교하게 맞추어 기능을 발현시킬 기술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0년 10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미국 과학자들이 2억5000만 년 전 살았던 바실루스속(屬) 미생물을 되살려 냈다는 연구가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네이처지는 ‘2-9-3’이라 명명된 이 미생물에 ‘므두셀라 미생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연구팀은 이 미생물을 어떻게 살려냈을까.
이는 2억5000만 년간 가사(假死)상태에 있던 미생물이라 가능했다.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니기에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웨스트 체스터대학 연구팀이 소금 결정(結晶) 속에 들어 있던 미생물을 추출해 회생(回生)시킨 것으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고대 생물을 회생시킨 것이다.
그 이전에는 1998년 10월 미국 뉴멕시코주(州) 칼스배드의 지하 569m에서 소금 결정 속에 든 2500만~4000만 년 전 박테리아를 발견해 살려낸 적이 있다. 이는 미생물의 생존 능력이 통념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생명체가 과연 어떻게 수억 년간 견딜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다.
매머드 復活 프로젝트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화석. 몸체의 털까지 일부 남아 있다. |
그러나 고대 동물을 되살려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매머드의 피부조직이나 털에서 얻은 DNA로 그 구조를 알아내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복제를 하는 연구다. 약 480만 년 전부터 4000년 전까지 존재한 매머드는 코끼리와 닮았다. 온몸이 털로 덮여 있어 추위에 강했지만 마지막 빙하기 때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시베리아의 동토에서 찾아낸 두 마리의 매머드의 잔해에서 얻는 DNA를 사용하여 영화 <쥬라기공원>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슈스터 박사와 밀러 박사는 매머드 게놈의 80%를 해석해 아프리카코끼리와 99.4% 같은 유전자를 공유(共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매머드 게놈과 아프리카코끼리 게놈의 차이는 40만 군데 정도였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매머드 DNA를 합성하여 한 마리의 동물로 태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코끼리 세포 안에 있는 게놈 40만 군데를 고쳐 매머드 게놈처럼 만드는 방법은 있다”고 슈스터 박사와 밀러 박사는 말한다. 매머드의 특징적인 유전자 부분을 현재의 코끼리 게놈에 넣어주는 것인데, 이 세포를 배아(胚芽)로 바꾸어 코끼리에 착상(着床)시키면 된다.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는 냉동 상태로 보관된 매머드의 정상 세포핵으로 복제 배아를 만든 뒤 대리모(代理母) 코끼리 자궁(子宮)에 이식하면 2만 년 전 멸종한 매머드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에서도 얼어붙은 매머드로부터 난자(卵子)를 배양하는 노력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살아 있는 세포가 전혀 없어 실패했다. 일본 교토대(京都大) 아카니 이리타니 교수팀은 시베리아 동토지역에서 발굴한 매머드 피부조직으로 배아를 만들어 코끼리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 5~6년 안에 매머드를 재(再)탄생시키는 것이 연구팀의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호주 머도크대학 고(古)생물DNA연구소의 마이클 번스 박사는 “우리가 DNA 코드를 안다고 하여 멸종된 동물을 부활시킬 수 있을 만큼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게놈을 이용한 시도 또한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는 법, 코끼리의 유전자를 이용한 연구를 통해 오래전에 멸종한 매머드가 다시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