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게
노포동 종점이다. 지하철이 더 들어가 양산 쪽으로도 간다는데 공사 중이라 한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터미널도 같이 붙었다. 어디로 가나 목적지를 살피는데 전라와 경북, 층청, 경기, 서울, 강원 등 전국 주요 지역 곳곳으로 떠난다. 시간과 요금이 모니터로 계속 바뀌어 나타난다. 내 고향 봉화는 가까운 안동과 영주로 가는 게 있다. 부드럽게 달리는 폭신한 자리에서 자다 깨다 가고 싶어라.
건물 쪽으로 바싹 붙어서 시간 되면 태우고 뒤로 슬슬 빠져 떠난다. 그 큰 버스들이 하도 많아 장난감처럼 보인다. 들어와 손님을 내려놓은 뒤 버스는 건너편에 가지런히 서서 기다린다. 때 되면 자기 자리로 들어간다. 내리고 타는 곳 차선이 다 좁다. 그 기다란 버스가 고물고물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한참 넋 놓고 내려다봤다. 칸으로 들어갈 땐 아슬아슬하다. 어찌 부딪치지 않고 잘도 갖다 대는 게 놀랍다.
수십 대가 바글바글 웅성대는 게 재밌다.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며 이리저리 움직이라 하는 사람도 없다. 다 저 알아서 태우곤 착착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대단하다. 빵빵, 크르릉 떠나고 들어오는 소리와 아가씨의 문 두드리며 손님 찾는 외침, ‘누구야 이리 오라.’ 왁자지껄한 부산스러움으로 시끌벅적 뒤덮던 지난날과는 다르다.
어디 갈 곳도 마땅찮고, 쌀쌀한 추위가 스며들어 뒤돌아 앞 큰길로 나갔다. 아침은 하단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뜨거운 물에 말아 먹었다. 마침 길가에 찹쌀떡을 팔아 몇 개 먹고 남은 것을 주머니에 넣으니 불룩하다. 물컹하고 달콤한 팥고물이 먹음직하다. 헤매다가 출출하면 나중에 먹으리라.
지하철과 버스 손님이 들랑날랑 북새통으로 붐빈다. 식당과 판매점이 늘어섰다. 건널목 도로 좌우에도 물건 파는 장사꾼들이 어수선하게 들어찼다. 가고 오고 발 디딜 틈이 좁다. 온갖 것들을 다 갖고 나와 펼쳐놨다. 주로 헌 옷가지와 쓰다 밀쳐둔 물건들이다. 어디서 그리 많이 모았는지 길에 널리고 깔렸다.
노트북도 보인다. 저게 화면이 나올까 싶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입구 한쪽에 서서 염불을 낭랑히 왼다. 건너가니 길게 늘어섰다. 오른쪽으로 들어가 저 끝까지 갔다. 꽃가게와 봄에 팔다 남은 것인가 과일 모종이 이름표와 함께 땅에 슬쩍슬쩍 묻혀있다. 대봉과 대추, 매실, 앵두는 보이는데 내 좋아하는 몰랑한 복숭아는 안 보인다. 내년 봄엔 갖다 놓겠단다.
다시 반대편으로 어정어정 디뎠다. 역시 헌 옷을 진창 늘어놓거나 꽃나무에 걸쳐놨다. 중고 낚시와 온갖 자질구레한 노리개가 가득하다. 끼던 가락지와 반지도 나왔다. 어디서 쓸어모았는지 웬 신발도 수두룩하다. 모두 신던 것이다. 얼마를 터덜터덜 걸었는데도 끝이 없다. 여기가 무슨 장이냐 물으니 오시게란다.
곳곳 빈터엔 먹거리가 가득하다. 난전에 앉아 물국수를 말아 먹었다. 아침에 먹은 찹쌀떡이 근기가 있어서인가 체했는가 더부룩하다. 새것은 드물고 모두가 헌것들 뿐이다. 어디 구닥다리란 고물은 다 들고나왔다. 5일장은 새것도 있는데 먹는 것 말고 다 을씨년스러운 것들이다.
동래 오시게 장터가 언제부터 이곳으로 옮겨와서 북적대기 시작했다. 변변치 못한 길거리 장사로 다닥다닥 엉겨붙었다. 큰길가에 차들이 옹기종기 어디까지 죽 늘어섰다. 싣고 와서 바로 앞길에 내려놓고 눈요기로 펼쳐놨다. 오면 팔고 안 오면 안 판다. 구경거리다. 한참을 어기적어기적 다녀도 볼거리다. 빈틈만 있으면 널어놓고 판다. 자리다툼이 심한가 큰 소리로 싸우거나 쫑알대는 사람도 보인다.
네 자리 내 자리가 있는데 여긴 일찍 오면 차지하는가 보다. 본토 배기 자리인 먹거리 집과 고깃집 가게들이 뜨내기 장사꾼에게 밀리는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득실득실해서 뭔가 싶어 불나비처럼 모여든다. 장수들은 무턱대고 좋다며 권하길 잘하는데 다들 속든지 말든지 좋아하는 기분이다.
여기저기 장이 많았는데 가까운 마을 큰 마트와 집안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당근으로 온갖 것들을 손쉽게 찾아내 사고판다. 또 집집이 차로 다니다가 어디든 수월하게 실을 수 있으니 예전같이 장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하나둘 우리 둘레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갔다.
오시게 장터도 그렇게 굴러다니다가 난데없이 시내를 한참 벗어난 이곳에 눌러 자리 잡은 것이다. 반짝반짝하는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어디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일랑 다 모아 파는 눈요깃감으로 가득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요즘 누가 헌 것을 사나르나 하는데도 여기선 둘러보다가 하나씩 집어 들게 된다.
어느 곳은 옆에다 늘어놓고 그냥 가져가란다. 반반해서 쓸만한 것들이다. 예전 비누와 다황, 담배, 곰방대, 물레, 요강, 대야, 카메라, 시계, 지팡이, 라디오, 전축, 화투, 마작, 틀면 노래가 나올 법한 유성기에다 그리운 그 옛날 장난감이 막 굴러다닌다. 허름하고 덕지덕지한 잡동사니다. 없는 게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구포장터와 하단장터는 잘 이어가고 있다. 오시게장터처럼 시나브로 밖으로 삐쳐나가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이 마을 가운데 정자에 앉아 하모니카를 늘어지게 불렀다. 심란하면 이곳을 찾아온다. 오늘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신명 나는 난장판 거리다. 여기저기 거니는 나도 내놔봤자 팔리지 않는 한물간 고물 딱지 사람이다.
첫댓글 종각역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ㅋ
종각역에서 내려 몇번출구쪽으로 나갔더니, 온갖 것들을 다 펼쳐놓고 팔고있더라구요.어디 눈씻고 봐도 사고싶은건 하나도 없어보였는데, 그래도 팔리니까 들고나와서 펼쳐 놓았을래나요? 여기도 어느골목엔 잡동사니가..어느골목엔 입다가 버린것같은 옷가지들이..어느골목엔 사람들이 줄서있길래봤더니,동태찌개 맛집이랍니다.
사람사는데는 다 똑같나봅니다 부산에도 그런 장소가 있을줄은...여기 서울은 한가지 더하자면, 동남아 외국인들이 주인같은 골목도 있더라구요.
새해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글 많이 쓰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성도님 반가워요.
종각역 주의가 그런가 봐요.
전차 종점이어서 타고 가 둘러봅니다.
늘 편안하게 읽는 글 수고하셨습니다
한 해 많은 글 올려 주심 다시 감사 드립니다
더욱 건필하시고 새해 건강과 행운 기원 드립니다
카페를 예쁘게 관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오면 오붓하고 훈훈합니다.
그 수고가 빛납니다.
몇 안 돼도 편합니다.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