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0108)
< 교육이
토성(土城)처럼
무너지고 있다 >
- 文霞
鄭永仁 -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더니,
40여년을
교직생활을 했으니 교육현실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두어 달에 한번쯤,
현직교사들과
친목모임이 있어 교육현장의 소리를 자주 접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하소연에 우리 교육현실이 암담해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저 교육이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토성(土城)처럼
무너지고 있다’
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때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
던
학부모들이 갑질(甲質)하고
계륵(鷄肋)
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으니…….
그
갑질을 보고 듣는 아이들은 선생을 우습게 알고 아무렇게나 대하는 존재로 전락(轉落)하고
있다.
노는 시간에 교실에서 두 녀석이 장난치다가 안경테를 부러뜨린 것을 학교 폭력배로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을 출동시킨 어머니를 비롯하여 갈수록 그 강도는 더하여 진다고 하소연한다.
70세가
넘은 노인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여 야단쳤더니 벽돌로 뒤통수를 치고서 도망 간 중학생을 비롯하여…….
학생이
여선생을 “쌍년!”이라
하여 손을 치켜 들었더니 핸드폰을 들이대며 찍어서 올리겠다고 되레 협박을 한다.
음식점에서 애들이 떠드는 것은 고사하고 식탁을 발로 짚고 넘어가도 아이기 기가 죽을까봐 야단을 치지
않는 젊은 엄마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이들에게 본질적인 잘못이 있는 아니다.
‘게걸음
교육’이나
‘붕어빵
교육’을
시킨 교사,
어른들의
자업자득이다.
거기다가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 ‘달달교육’에
대대로 내려오는 교수의 베끼기 교육은 점차 토성처럼 교육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면서 아들은 피우지 말라하고 하고,
엄마는
책 한 권 읽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면서 아이들 보고는 책을 읽으라고 다그친다.
어른들의
작태는 바로 아이들의 거울이다.
어른들은
숱한 부정을 저질러 자식을 잘 되라고 키우며 아이들 보고 정직하라고 한들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못
생겨도 돈 많은 남자’가
좋다는 우리 외손녀의 생각이나 부모에게 건물을 상속 받아 세를 받아먹는 것이 최대 소원이라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나 현찰
10억이
생기면 한 1년쯤
죄 짓고 감옥에 가도 좋다는 중고생이나 아직도 창창한 대학생이 흙수저론을 들고 나오니…….
나부터 내 일들 딸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돈만
많이 벌면 되는 직업을 가지면 최고라는 학부모의 열망은 결국에 한국의 교육은 토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아무리
인성교육을 시킨들 어른이 제대로 된 인성을 갖지 못하고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이 사회의 인식이 반석(盤石)처럼
굳어져 가고 있으니 헛된 구호가 될 게 틀림없다.
학교에서
인성 ‘아’를
가르치는데,
사회나
부모는 인성이 ‘어’이니
말해서 뭣하랴!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써라’
가
아니라 ‘개
같이 벌어서 개 같이 써도 좋다’
라는
극히 자본주의적 사고가 판을 친다.
청부(淸富)보다는
부한(富漢)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감사(感謝)와
도리(道理)를
잃은 사회현상과 교육은 효도계약서나 혹은 상속 재산 반환청구 소송을 하면 법정에서 자기 아버지를 “○○○
씨!”
한단다.
막가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기야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서든지 돈만 많이 벌면 된다’
라는
그 부모의 교육열이기 때문에 누굴 탓하랴!
자업자득이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 라는 그런 치열한 욕심은 교육을,
교육현장은
부메랑이 되어 도로 학부모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참으로 기이한 현상은 교사에게 갑질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희망하는 우선 순위 직업군이
‘교사’
라니
알다가 모를 일이다.
교사가
되는 교대나 사범대가 얼마나 날고 기어야 들어간다는 것쯤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한국의 교육현실이다.
마치
공무원들을 그렇게 욕하면서 공무원이 되려고 미어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교사들이 지금은 10명중
4명은
교사직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회의가 든다니…….
소명의식(召命意識)의
부족인가?
그들이 정작 교사가 되면 자기들이 한 것처럼 학생들이 ‘쌍년!’이라
하고,
‘빗자루로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라 했다.
이런 현상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다.
다
도긴개긴이다,
나도
그러했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사회,
학부모,
교사
모두 다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도 때 묻지 않은 열정(熱情)으로
핏대를 올리던 지나간 교사시절이 그립다.
좀
때리긴 했어도…….
이즈음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인
있어도 제자는 없다’
하고
한다.
가끔,
내개
가르친 아이들이 ‘스승’이라
불러줄 때가 가장 흐뭇하기도 하다.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토성처럼 허물어져 가는 교육현장을 보면 그저 노교사는 사라져만 가는 존재인가
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번 겨울방학 두 달 동안 결혼이주민 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육 교사로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내가
가진 쥐꼬리만한 재주라곤 그저 40여년
동인 초등교육을 한 것뿐이니…….
아무리
그들이 결혼한 여성이라고 해고,
엄연히
그들은 학생이고 나는 엄연히 교사이다.
몇 년 전에 다문화센터에서 가르친 중국 결혼이주민 아줌마에게서 문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작년에
가르친 한국에 온지 6개월쯤
베트남 젊은 새댁은 “쌤,
복
많이 받으란다”
작년에,
가르친
앳된 베트남 댁이 이번 겨울방학에 친정을 간다면서
“선생님,
커피
좋아 하세요?”
“응,
좋아하지!”
“이번
베트남에서 올 때 커피 한 봉지 갖다 드릴 게요.”
이게 내게 이주만 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나는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후배 현직교사에게 이런 고리타분하고 고릿적 조언을 한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야.
수처착주(隨處着主)
입처개진
(立處皆眞)이
라고.
아무리
아이들이 속을 썩여도 그 때가 좋을 때야.
참고서
더 열정(熱情
passsion)으로
가르치라고!
그래도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이고,
틈새의
진정성 있는 소명의식(召命意識)으로”
외손녀가 초등3학년이다.
3년간
학부모 노릇을 한 딸아이는 이런 교육현실에 자기 의견을 개진한다.
1학년,
2학년,
3학년
담임을 비교해서 말한다.
그런
현실에서 자그만 해결방법은 교사의 진정성(眞情性)
있는
열정(熱情)이라고…….
그러면
학부모도 알고,
아이들도
안다고.
그나저나 우선 교육제도부터 ‘확’
뜯어
고쳐야 한다.
대학이라는
하나의 정점을 향해 하나의 길만이 치닫는 우리 교육제도를 여러 트랙으로 가는 교육제도로 뜯어 고쳐야 한다.
독일이나
스위스 교육처럼 말이다.
학력(學歷)
위주가
아니라 학력(學力)이
위주인 교육으로 말이다.
마구잡이로
대학생을 자판기에서 뽑아내듯 뽑아내지 말고,
수공업으로
만들어지는 직능·직업교육
제도를 시급히 개혁하여야 한다.
구태어
너도 나도 대학을 안 가도 되는 교육제도로.
스위스처럼
대학졸업 후 첫 급여나 고등학교 졸업,
취업
후 4년
후의 급여가 같아야 할 것이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남성 이발소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용·이용기술을
배워 지금은 자그마하지만 창업한 어엿한 종신 사장이다.
그는
정년퇴직이 없단다.
그는
삼포(三抛,)
오포(五抛)가
아니다.
벌써
아파트 한 채 마련했단다.
그러면서
인성이 얼마나 밝은지 단골이 많다.
그저 돈이 되는 줄 따라 가는 것이 자기 인생인가?
세계
재벌 중에 다른 나라는 자수성가형이 많지만 한국은 한 명도 없고 전부 상속형이라는 우리 현실에 시사(示唆)하는
점이 많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라는
서양 격언을 우리는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