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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5:16-18 범사에 감사하라 220918 주일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각자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 생활 중에서 성도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소위 ‘성도의 3대 실천 강목’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둥처럼 중요한 세가지 덕목이라는 말씀입니다.
1)지난 9월 첫째 주일에는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첫째, 내 안에 계신 주님 때문입니다.
-내안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으로 구원받았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으니 항상 기뻐할수 있는 것!!
둘째,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나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며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니 항상 기뻐할수 있습니다.
셋째, 원하는 대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고 채우시니 감사하고 기뻐할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그 목자 되신 주님이 성령으로 내안에 계시고 도우시니 부족함이 없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상황 불문하고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9월 둘째 주일에는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어찌보면 기독교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나요?
첫째, 기도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믿는 다면 우리가 믿는 주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지켜야 합니다
둘째, 기도는 성도됨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하나의 덕목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명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성도의 호흡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도는 죽은 것이고 신앙생활을 이어갈수 없습니다.
셋째, 기도는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성도가 되었다고 해도, 구원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도, 연약하고, 시험과 유혹에 직면하며 살아 갑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는 많은 필요가 있고, 우리 힘만으로 채우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부모님에게, 형제와 동기에게,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고 살아도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모도, 그 어떤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내 인생의 문제, 그 무엇이든지 주님게 구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8절 말씀,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성도들이 각자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 생활 중에서 성도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소위 ‘성도의 3대 실천 강목’중 세 번째 강령으로,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가 이미 두 주간에 걸쳐서 상고하였던 성도의 실천강목 두가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도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범사에 감사하라는 오늘 실천 강목은 더 어렵습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너무 무겁고 멀리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신문과 방송에서 듣고 보는 뉴스는 우리가 무엇을 감사할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지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겨울철 에너지 대란은 일어 난다고 하고...기후변화와 태풍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정권이 새로 출범했으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하는 일마다 말썽이고,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하를 기록중이고, 여야 정치권은 날마다 싸움질에 바쁘고...
어느 한구석도 빤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는 교회에 나와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감사하라고 하실까요?
물론 범사,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인데, 그래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감사한지 세어 볼수는 있고, 그래야 감사가 나오겠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감사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무엇을 먼저 감사하게 되나요?
첫째,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아니라 구원의 은혜지요?
여러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다 짊어지고 지옥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어떤 분은 그러더라고요.
내가 지옥만 없다면 교회를 다녀도 적당히 놀면서 즐기면서 다닐텐데 지옥에 가는게 두려워서 그렇게 못한다고요.
여러분,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지옥은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고 하거나 지옥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종교냐 아니냐, 종교냐, 철학이냐, 도덕이냐를 가르는 잣대가 사후의 세계, 천국과 지옥, 극락과 지옥, 명칭은 어떻게 부르던지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해야, 교리책에 써 있어야 종교로 인정해 주거든요.
마음의 지옥도 있습니다.
잘못한 것 있으며, 나쁜 짓 한게 있으면 마음이 꺼림칙하고 꿈에 나타납니다. 염려가 됩니다. 불안합니다.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지옥입니다.
세상에서는 유치장, 교도소가 또 하나의 지옥입니다.
세상에서 악을 행하여 법을 어긴 사람들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짐승처럼 철장에 가두어 버립니다.
광주 518의 원흉, 전두환씨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석방되어 일찍 나왔지만 그가 감옥에서 나와서 한 말이 “여러분은 절대 감옥에 가지 마세요” 했다는 것 아닙니까?
전두환같은 악독한 살인마도 감옥은 있을 곳이 못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할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대속케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소망을 주셨으니 이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히 일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누가복음 기자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4중으로 강조하여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감사할 이유는 우리를 택하신 은혜입니다.
잘난 것도 없고, 죄악투성이인 우리를 불러서 성도(聖徒)라 칭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도구요, 사신이요, 대사요, 주님의 빛과 소금으로 사용하시는 은혜입니다.
성도(聖徒)라 불러 주신 은혜, 이 은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수 없고 오직 은혜일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여러분의 모습을 기억해 보세요.
여러분이 선택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성도라 부를만한 구석이 있던가요?
어떤 분은 그럴지 모릅니다.
나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착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거라고...
착하면 좋습니다, 착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착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보다 착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게 그겁니다.
일종의 도토리 키재기라 할까요?
착하고 마음씨 좋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고 그들도 여전히 죄인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구원얻게 하셨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악을 알기도 전에 우리를 구원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시139편 16절 말씀에,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에베소서1장 4절 말씀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어찌 알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 택하심을 증거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사실 모든 것이 같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허물뿐인 인생이라는 것, 모두 동일합니다.
차이라고 해도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 약간씩 틀리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였으며, 보이지 않는 천국도 보이는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오늘날과 같은 좋은 시대에 교회에 와서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앉아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요즘같이 생활이 각박함에도 정성된 헌금을 챙기는 것도 택하신 믿음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며 온갖 헌신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택함받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이후 한 걸음씩이라도 믿음으로 전진해 온 것, 어려운 상황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또 믿음을 지켜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바로 택한 자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범사에 우리를 도우시기 은혜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사회적 존재란 서로 의지하고, 서로에게 기대며 사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나가면 친구의 도움을 받고 선배의 도움을 받고 형제의 도움을 받고 남편과 아내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이미 받았고 현재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가 이 땅에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삶을 돕고 계십니다.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41장 10절 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시라는 아름다운 고백이 시편 121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121장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오, 요새이시요, 산성이 되십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죄를 대속하게 하신 그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무엇이 무렵겠습니까?
나를 언제 돕기를 원하시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위기를 만나도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될까요?
하온이 영상
(아직 뒤집기를 하지 못하는 동생 하온이가 뒤집기를 시도하면서 보여주는 모습이 안타까워 도우려고 하는 형과 도와주지 말고 스스로 뒤집기를 하도록 놔 두라는 엄마의 영상-화면은 끝내 홀로 뒤집기를 했는데, 그 와중에 형이 자기가 도울수 없게 되자 갑자기 "하나님, 하온이를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라는 신앙과 고백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 그 기록이 시편의 노래들입니다.
사울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18편 2절 말씀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하였으며,
시편 40편 2절에도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출애굽과 홍해 도강, 그리고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목격하였던 모세는 신명기 32장 10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환난과 위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도우시는 분이었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8장 28절 말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마치 수많은 악기들이 제각각 연주를 하지만 그 각각의 연주들이 모여져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은 모든 하나하나의 일과 사건들을 관장하셔서 결과적으로 유익하게 해 주시더라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이시고, 유지자이십니다.
우리가 호흡하며 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생사여탈권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범사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오직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마당하고도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인류에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습니다.
대개의 인류, 많은 사람들이 걸려 있는 질병입니다.
감사결핍증입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보니까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감사 결핍증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 감사결핍증은 전적인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 인류 처음부터, 그리고 역사적으로 쭉 내려와서 우리 시대에도 대세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감사를 잃어 버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고 인류에게 죄와 죽음을 선물했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는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감사를 잊고 살았고 감사를 잃어버리니 불평과 죄악만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심판이 내려졌고,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이 있었습니다.
400년간이나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을 시키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고, 광야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못하고 아무일도 안해도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로 먹여 살려도 감사는커녕 불평만 일삼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내린 형벌입니다.
그 불행한 역사를 다 꿰고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감사를 잃어버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사는가?
감사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나를 낳고 길르신 부모님, 어려울 대 사로 도우라고 주신 형제 자매들, 함게 더불어 살게된 이웃들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ex)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
하늘 나라에 갓 도착한 어떤 한 영혼이 성베드로의 영접을 받았다.
베드로는 그 영혼에게 하늘 나라를 두루 구경시켰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천사들로 가득 붐비는 거대한 작업실에 들어섰다
성베드로는 첫번째 부서로 가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여기는 접수처라네. 하느님께 기도하는 온갖 청원을 이곳에서 접수한다네."
영혼이 그 접수처를 유심히 바라보니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천사들이 세상 도처 사람들이 보내 온 두툼한 분량의 종이에 적힌 온갖 기도로 청원한 것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곳을 나와 둘이 다시 걷다가 두 번째 부서에 당도했다.
성베드로가 영혼에게 들려 주었다.
"여기는 포장 및 발송처라네. 사람들에게 기도의 응답으로 보내 줄 은총과 축복이 이곳에서 포장되어
지상의 기도 청원 당사자들에게 발송되는 거지."
그 영혼이 보니 이곳 역시 정신 없이 분주했다. 이 부서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응답이 포장되어 지상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끝으로 작업실 가장 후미진 구석에 마지막 부서가 있었고, 둘은 거기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천사가 바브지 않게 일하고 있었다.
"이곳은 확인처라네."
성베드로가 영혼에게 일러 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은 이렇게 한가한 겁니까?"
성베드로가 대답했다.
"서글픈 일이야. 지상의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나서 확인서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거든."
"확인서는 어떻게 보내는 건데요?"
성베드로가 말했다.
"간단하다네,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하면 되는 거지.“
기도의 응답을 받고도, 수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현대 성도들을 지적하는 글인데, 우리가 그러지는 않는지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옥갈 인생이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많은 사람가운데, 우리를 택하여 성도로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때를 따라서 도우십니다.
이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까지 세 번의 주일에 걸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3대 실천 강목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가지 실천 강목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가지 강목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나, 우리 자신을 위한 실천 강목입니다.
내가 항상 기뻐하고, 내가 쉬지 않고 기도하고, 내가 범사에 감사하고 살면, 내가 좋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기뻐하면 내가 항상 즐겁고 유익해서 좋고, 내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니 내가 응답받아서 좋고, 내가 범사에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많아서 좋고, 더 감사한 일들이 생기게 되니 좋고....그래서 모두 내게 좋은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은 분명, 명령이고, 우리가 실천해야 될 말씀이지만 나를 위한 말씀, 나를 복되게 살게 하기 위한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