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당의 막장도발
5.18 광주항쟁을
북한군 개입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 모략으로 국민들을 모욕하는
말도 안되는 미친소리에 그 날이 생각 납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
그리고 아세아자동차 공장에 다녔던
바로 세살 위 형인 범능스님
군대에 있던 맏형..
나는 당시 어려서 정치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온 동네가
술렁이는 소리에 큰길로 나갔는데
큰 트럭에 젊은 청년들이 몽둥이를 손에 들고
트럭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큰길을 돌아
다시 내려갔다.
무슨 큰 난리가 난 것으로 생각되어
당시 친구들과 화순읍 경찰서가 있는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까지 구경을 갔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가를 가득 메웠고,
그 군중들 틈에는 당시 화순 경찰서에
근무하시던 병O이라는 친구 아버지도
사복을 입고 함께 계셨다.
내가 친구 아버지에게
"아버지 위험 허신께 어디 다른데로
피신하셔야지요~ "
그러자 친구 아버님이
"내가 죄가 없는디 머할라고 숨는다냐~"라고
하시면서 여전히 군중들 틈에 함께 계셨다.
나는 군중들 틈에 끼어
광주에서 화순으로 내려오는 셀수없이
많은 트럭을 보고 있는데 그중에 짚차
한대가 있었고
그 짚차에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시민군을
모집하는 사람이 바로 공장에서 일하는
줄로만 알았던 형이 짚차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시민군들이 탔던 짚차
나는 형이 짚차를 타고 시민군을 모집하기 위해
떠나간 뒤에 갑자기 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O호와 이O진이라는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시민군 트럭에 올랐다.
그리고 트럭에 오르자 너댓살 더 나이많은
형 청년들과 함께 몽둥이를 두드리면서
시민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탔던 트럭도 이런 형태의 트럭으로 많은 청년들이 함께 탔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당시 시민군가
전두환이 물러가라 훌라훌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훌라훌라
무릎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사나이다.
이렇게 몽둥이로 트럭을 두드리며
박자에 맞춰 시민군가를 부르며 내가
살던 동네까지 한바퀴 휭 돌고서 광주를
향해 올라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일찍 세상을 떠난 부친 덕에
공사판에 다니며 노가다를 해서
자식들을 먹여살리던 홀어머니 모친은
동네 사람들에게
집이 아들이 트럭타고 광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 거의 실성한 여인처럼
자식을 찿으려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셨다고 하였다.
철없는 아들은 부모심정은 커녕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고 형을 찾으러 올라탄
트럭에서 분위기에 휩싸여 형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신나게 몽둥이를
두드리며 노래부르고 광주를 향해 가는데
화순 너릿재 터널을 넘어가기 전에
광주에서 화순으로 오는 다른 시민군트럭을
만났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우리쪽 트럭 시민군 청년들이 먼저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니 워째서 쌈 안허고 내려온다요~"
"아따 거새끼들이 따발총 갖고 깔겨분디
몽둥이로 어쭈께 싸운다요~ "
"그래라우? 그먼 어쭈께헐라고 근다요?"
"잉~ 여그 화순읍 경찰서 가서 무기고에서
총갖고 와야재라,
긍께 우리는 화순 경찰서로 갈랑께
집이는 쩌그 동면 파출소 가서 총 갖고 오시요~"
그래서 내가 탔던 트럭도 갑자기 가던길을
되돌아 다시 내려왔다.
광주에서 내려온 그 트럭은 곧장 화순 경찰서로 향했고
우리 트럭은 화순읍을 지나 동면파출소로 향했다.
당시 경찰들은 모두 자리를 일부러 비켜주어
경찰서나 파출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전두환이가
투입한 공수부대에게 무참히 학살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경찰들도 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러 모두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다.
첫댓글 내가 기억하는 광주항쟁 2편->
https://m.cafe.daum.net/Jeongtosunmini0B0/JaPY/280?svc=cafeapp
정토선 홈피에 올린 원문을 보면 당시 함께5.18 항쟁을 겪었던 다른분들의 새생한 증언 댓글들도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