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기일
아버님 기일 축문 (2019.8.27.)
이제 한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가을로 들어섰습니다. 오늘은 아버님 기일을 맞이하여 아버님 어머님을 함께 오시게 하여 제사를 올립니다.
축문은 장손 형순이의 양해를 구하여 아들 구복이가 지어 올립니다.
이 자리에는 큰형수, 둘째 형 내외, 동생 내외, 사촌 내외, 그리고 작년 12월에 결혼한 조카 건영이 내외, 아버님의 증손자 국진이가 참석했습니다.
오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누님, 뉘동생에게 전화를 통해서 근간의 소식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둘째 누님은 아버지 임종 때의 상황을 상세히 말씀해주셨고,
막내 여동생은 성인학교인 고등학교 과정을 금년에 마치므로 참석하지 못하나 내년부터는 참석하겠다고 하며, 세 분의 자녀 손자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저의 7남매와 그 자손들이 큰 탈 없이 무고하게 지낸 것은 부모님의 영령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으로 생각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님께서는 69년 전인 1950년에 40세의 나이로 돌아가셔 저희들에게 큰 슬픔을 남기시었고 어머님은 2000년 12월 돌아가실 때까지 50년을 홀로 사시면서
어린 저희들을 키워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저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주신 가장 큰 은공을 주셨고, 저희들을 키우시느냐고
온갖 고생을 하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부모님께 효도를 제대로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자식들을 키워보고 나이가 이제 70 이상이 되고 보니 부모님의 은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조금은 알겠습니다.
지금은 국가에서 사회복지가 확충되어 모든 사람의 건강이 살펴지고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기에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일제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오셨고,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6.25사변을 당하여 북한군이 고향마을까지 쳐들어 왔다가 이를 격퇴하는
전쟁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일본과는 이웃나라로 잘 지내야할 터인데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다시 제국시대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하여
일본과 심각한 국제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일본과 당당히 맞서는 국가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북한은 지금까지 김일성의 3대 세습제 하에서 인민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인간지옥입니다. 북한을 탈출해 온 사람이 3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인민을 살리는 데에는 노력하지 않고 오직 전쟁무기인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함에 온 힘을 쏟아 남한을 겁주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국가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나라는 저의 나라가 유일합니다.
개인의 생활에 국가의 존재는 큰 연못과 같고
큰 울타리와 같기에 국가적 상황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국가가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력이 발전하면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생활도 그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1909년 조선왕조 말기에 테어나셔 17세에 시집을 오셔서 42세에 아버지를 사별하고 홀로 2000년 12월에 돌아가실 때까지 50년간을 사셨습니다.
저희가 어머님께 낳고 길러주신 은공을 갚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지금은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데 일생동안 비행기를 타고
하늘 속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시게 하여드리지 못한 것이 저희들에게 남은 큰 한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가 단장하여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화재후 산소의 단장에 장손 형순이와 건영이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차린 음식은 소략하지만 장질부가 정성껏 준비하였으니 많이 흠향하여 주시옵고 내년에 뵐 때까지 지금처럼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음력 7월 27일 양력 8월 27일 아들, 손자, 증손자 올림
첫댓글 유세차보다 훨쒼 정감어리게 가슴에 와닿고 지극한 호천망극과 불성영모를 느끼게 하여 줍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축문을 읽으면서 선생님과 가족의 화목한 모습, 지극한 효심을 느낍니다.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샌각에 잠시 젖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