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제목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본문 마1:23
지난 11월8일 베트남에 갔을 때부터 성탄 트리가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상과 트리를 나란히 세워둔 곳도 있었습니다. 상술을 위한 장식물로 트리를 세운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술에 퇴색되어가는 성탄절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임마누엘이란 단어 가운데 담겨 있는 성탄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임마누엘은 에덴의 회복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오심은 에덴의 회복입니다. 본래 에덴은 하나님과 인류가 함께 함께 거닐며 친밀한 교통을 나누었던 곳입니다. 에덴은 부족함 없는 나라, 행복이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첫 인류인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반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영적 죽음의 의미였습니다. 죄의 결과 인류는 슬픔, 고통, 절망, 어두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흑암에 있는 인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에덴의 모습을 회복하실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에덴의 회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계시록 21:5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바울 사도도 롬 8:18-25에서 허무한 데 굴복했던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만물을 구속하고 에덴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에덴을 회복하러 오신 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시와 엉겅퀴처럼 엉클어진 우리의 삶을 회복해 주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정이 에덴으로 회복되고, 작은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가정을 에덴으로 천국을 이루시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음식을 나누며, 가족과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곧 에덴을 회복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예수님으로 에덴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은 죄를 제거하심을 의미한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동거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와 함께하려면 죄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임마누엘이라 이름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이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죄를 제거하실 것을 기정사실로 하신 말씀입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십자가를 향하여 일관되게 나아갑니다. 이는 나를 대신하여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죄를 제거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죽으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을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이름을 가진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제거하심을 목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리게 되었고 친밀한 사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의 죄가 제거됨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역사적인 날입니다. 죄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성탄절을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인류를 찾아오심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십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친히 찾아오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방문하신 날입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땅에 오신 날입니다. 창조주시며 만왕의 왕께서 죄인을 찾아오심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성탄절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수년 전 당시 101세 되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하룻밤을 머물다 가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만주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분입니다. 우리 교회 머무시면서 두 강좌를 해주셨습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로부터 존경받는 분이 우리 교회를 찾아와 주시니 자랑할 만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오신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멸시 천대를 받던 자였지만, 자신을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제자 삼아준 일로 인하여 큰 감동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그분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던 일이 곧 하나님의 품이었음을 알고 얼마나 큰 감격을 했을까요? 요한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을 기록하며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성육신의 신비로움은 사람의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는 경이로운 일입니다. 성탄절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친히 찾아와 주심을 깊이 묵상하며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류를 섬기시려고 허리를 굽히시다니 겸손의 극치입니다. 임마누엘의 이름은 겸손 그 자체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배울 교훈은 겸손입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번 대통령의 모습에서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였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마누라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와 국민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도 교만을 꺾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황제들의 횡포, 유대인의 왕 헤롯의 사악함, 빌라도 총독,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도 그러했습니다. 다시 한번 세상 지도자들은 우리의 위로가 되지 못하고 희망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섬기러 오심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주시며 인도자시고 소망이 됩니다. 성탄절을 맞아 더욱 예수님만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겸손을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성탄절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환영하고 축하하면 좋을까요? 기쁨으로 맞으십시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통해 가정이 에덴처럼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제거해 주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더욱 친밀한 교통을 이루심으로 축하하십시요.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 실천하므로 성탄절을 맞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