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은 혁명을 잊는다/ 한분순
나비의 휘파람이
우울을 관통하며,
신비와 포옹 나눠
기쁨에 초대한다
바람은 서정의 질감
투명한 연애 편지
별들을 포식한 뒤,
혁명 잊은 연인들
꽃들만 폭주하듯
반역처럼 으르렁대
립스틱, 미사일 닮아
통속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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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정표년
써지지 않을 때는
생각만 하고 지내고
또 써지지 않을때는
독자로 물러앉는다
그러다
어느 날
찾아와
나의 창을 두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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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광동 사과나무/ 이솔희
평광동 과수원에
오래된 나무 있지
긴 세월 애태우며
수많은 사과 키운
꺼멓게 속이 타도록
인내하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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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춤을 추다-자화상/ 배우식
시가 되지 못한
발버둥은 울음이 된다
저 소리 가시넝쿨로
무성하게 뻗어 올라
목쉰 밤
폭우가 되어 내 안으로 쏟아진다
시가 되지 못한
몸부림은 춤이 된다
저 몸짓 바람으로
펄럭이며 날아올라
지친 밤
폭설이 되어 내 속으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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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둔다/ 이기영
바다를 가진 사람은 섬을 두고 있었다
별밤, 해변에 누워
한 뼘씩 별을 이어 썼던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간직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걸 안다
수평선 걸친 채
집어등을 밝히는 배가 되었어도
닻이 허락하는 바다를 떠 갈 뿐이다.
정박하지 못해 서로에게 외롭다
이른 아침 부둣가 향하고
해당화가 해를 끌어 올리면
물비늘이 만들어 섬마다 이어지는 길,
이야기가 꽃 다스린 바람으로 밀려든다
누구에게 만남을
누구에게 그리움을
섬,
섬은
그때부터 나도 섬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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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입들/ 강신석
입을 열면 마리오게임을 하듯
톡톡, 쏟아지는 말들
혀의 안쪽 어둡고 깊숙한 곳에
사막이 살고 있다
불모의 땅 조슈아의 잎보다
더 뾰족한 혀들이 모여 사는 동굴
건기가 되면 닫힌 문이 열리고
전갈들이 꼬리를 들고 사냥을 나선다
평화롭던 허공,
뿌리를 잃어버린 혀들이 날치처럼 날아 오른다
반사처럼 부서지는 섬광들의 끝
바스락 바스락
마른 잎 부서져 내리는 소리
하나의 입이 사라진다
그 너머로 사라지는 또 하나의 입
입술을 오므린 채 사라진 입들
아, 입이 없는 입들
입술이 마를 땐
꾹꾹 젖은 기도를 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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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학지 속의 한 편
월간문학/ 2024년 6월호/ 664호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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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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