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는 고려사의 <천문지>에 나오는 기록을 현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천문 분석 기술을 이용하여 비교한 역사 천문학 자료를 근거로 고려사의 일식기록에 대한 진위를 분석해 보았다.
역대왕 |
일식현상 발생 |
아시아에서 관측 불가 일식 |
개성에서 관측 불가 일식 |
기록안됨 |
전체 |
태조 |
9 |
9 |
|
|
혜종 |
2 |
2 |
|
|
정종 |
2 |
2 |
|
|
광종 |
8 |
8 |
|
|
성종 |
7 |
7 |
|
|
목종 |
7 |
7 |
|
|
현종 |
1 |
12 |
2 |
2 |
덕종 |
1 |
1 |
|
|
정종 |
1 |
5 |
|
|
문종 |
7 |
19 |
3 |
|
선종 |
1 |
3 |
1 |
|
헌종 |
1 |
1 |
|
|
숙종 |
1 |
3 |
|
|
예종 |
3 |
10 |
|
2 |
인종 |
0 |
6 |
1 |
1 |
의종 |
2 |
13 |
1 |
|
명종 |
1 |
11 |
4 |
|
신종 |
4 |
6 |
1 |
|
희종 |
0 |
2 |
|
|
강종 |
1 |
1 |
|
|
고종 |
3 |
18 |
1 |
2 |
원종 |
3 |
8 |
|
1 |
충렬 |
2 |
18 |
2 |
1 |
충선 |
0 |
1 |
|
|
충숙 |
5 |
9 |
|
1 |
충혜 |
0 |
2 |
|
|
충목 |
1 |
3 |
|
|
충정 |
0 |
1 |
|
1 |
공민 |
0 |
12 |
|
3 |
우 |
0 |
5 |
|
|
공양 |
0 |
2 |
|
|
전체 |
73 |
207 |
16 |
14 |
백분율(%) |
35.2 |
|
7.73 |
6.76 |
운영자가 정리한 고려의 일식기록 ( 출처 고려시대 일식도, p263~270, 안영숙 저,2011 )
사서천문 기록및 의학등의 서적과 기록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은 실제 정치적으로 활용되는것이 적기 때문에 과거 어느 싯점의 자연사적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기상과 관련된 데이터 및 왕조의 위치등을 역으로 추적하여 확인 할 수 있는 도구가 됨에 틀림이 없다.
실제 고려사를 보면 역관(歷官) 과 일관(日官)은 관상감 소속으로 왕실에서도 가장 중심부에서 왕과 국가의 중대사를 조언하고 중요행사의 일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실제 이러한 역할은 은왕조에서 남긴 갑골문에서도 잘 나타나 은왕(殷王) 무정과 관련된 일상사 중 왕자의 출산 및 궁중의 행사 및 전쟁에서 일정을 잡는데에도 역관이 큰 역할을 하였고 고려사의 기록에도 궁중행사 때에 전각 옆에 서있던 왕의 바로 옆에 벼락이 쳐서 그 휴유증으로 왕이 앓자 일관이 파직 당하는 기록이 보인다. 즉 천문이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매우 중요하고 엄중한 사업이었다.
이토록 역관과 일관의 역할은 중대하여서 일식과 월식등의 천문현상을 미리 예견하고 왕과 왕실에 보고하므로서 왕실과 왕의 권위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백성이 느끼도록 하는게 고대로 부터 그 기능이었다.
그런데 고려사 천문기록을 보면서 태조 부터 목종까지 현대 천문학의 역계산으로 35회의 일식이 있을것으로 추정하였으나 고려사에는 기록이 전무함을 볼 수 있다. 이는 현종때 거란과의 전쟁시 거란의 궁궐 분탕으로 인해 왕실사서가 소실되었을것으로 추정되나 실제 고려사 기록에는 왕실서고에서 사서를 지게로 지어 날라 화를 모면한 지채문에 대해서 별도의 <열전> 제신편에 실을 정도로 공이 많은 신하로 인정하는데 고려의 초기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짙은 의구심이 든다. 혹시나 인종때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의 반이 전소되는 와중에 분실 되었을 수 도 있으나 그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고려사 천문기록중 일식기록이 누락되는 현상이 고려왕조 전체에 걸처 발생하고 있다는 현상이며 현대천문학의 기술로 추적한 과거 일식기록 중에 아시아에서는 일식현상이 없음에도 일식으로 기록된 오류가 전체 일식현상의 7.73%을 차지하며, 한반도 기준으로 고려가 존재했을 경우를 가정할때 개성에서 관측이 불가한 일식기록이 6.76%으로 일식과 관련없는 기록이 일식으로 기록된 것이 무려 14.49%로서 고대 천문학과 일관의 중요성을 감안 할때 이해가 될 수 없는 수치인 것이다.
고려대륙설을 주장하는 부류의 의견을 보면 이같은 현상에 대해서
첫째, 고려가 아시아 대륙이 아닌 서역지방에 수도가 존재하는 세계적 대국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운영자의 관점으로 볼 때 어림없는 논리이다. 식분도가 그렇게 주장대로 쉽게 현상을 보여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개성에서 관측불가 일식은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고려의 수도 개성이 현재 한반도 중부에 있었다는 선입견을 두고 그 기준으로 일식 지점을 관찰한 것이다. 이는 개성이 아닌 지점인 하북에서 일식을 관찰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이다.
실제 기록을 보면 일식의 관측 오류는 공민왕 7년 부터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즉 일식 관측을 100% 실현하고 오류 기록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전과 달리 1358년부터 1392년 고려가 망할때 까지 거의 40년간 일식 기록의 오류가 없었다는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운영자가 추정해 볼 때 조선초 고려사를 당시에 존재했던 <고려실록>에 근거하여 작성할 때 당시의 역관이나 일관이 시간을 역으로 계산하여 과거의 일식 기록을 조선의 개성과 한양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을수도 있다는 불순한 생각이 드는것은 왜 일까? 실제 고려사에는 고려의 역법과 천문학이 정밀하게 발달하여 오히려 宋이나 거란, 金나라에 역법을 가르치러 가는 기록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의 천문학 수준이 높았으며 그런 기반위에서 왕실의 천문학적 기록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적음을 의미한다.
고려비사 전공자 한문수 선생의 의견을 빌리면 조선의 기록에 " 고려사가 세종 사후 2년이 지나 단종조에 나왔다. 시시비비가 많으니 보관용만 남기자는 중신(重臣)의 건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제 글.
첫댓글 불순한 생각이 바른 생각.....
역사기록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해석할때 잘못 오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기록은 여하간에 일단 사실로 믿고 해석해 들어가야 만 옳다고 봅니다
삼국사에 대하여 많은 부분이 틀렸다고 하는 국사학자들의 의견(논문)이 많습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살수를 평안도 청천강이라 정하고서 기록을 읽으면 100% 엉터리가 되지요